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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y Aug 10. 2022

인생, 예술

국제갤러리 윤혜정 디렉터의 이야기

#인생예술


예술 작품 앞에서 느끼는 감정은 오롯이 개인적이고 내밀하다. 실제 발생하는 상황과 사건을 묘사하는 것보다 훨씬 어렵기도 한데, 순간적이고 비가시적인 찰나의 경험이기 때문일 것이다.  순간의 감정을 그토록 풍부하게 느끼는 것도 놀라운데, 그는 심지어  감정들을 놀랍도록 적확하고, 다채로운 문장으로 빚어낸다. 2  <나의 사적인 예술가들> 읽으며, 윤혜정 디렉터의 문장에  번이고 감탄했던 적이 있다. 심지어 노트를 따로 만들어 표현들을 정리하고 필사하기도. 그의 문장을 읽어 나가다 문득 윤혜정이라는 사람이 몹시 궁금했었다. 문장이란 사유로부터 탄생하고, 사유는, 그의 삶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니.


그렇게 오매불망 기다린 윤혜정 디렉터의 에세이집이 나왔다. 그의 문장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인터뷰집인 전작 특성상 예술가들을 필두로 한 문장이었다면, 이번 책은 예술을 지근거리에 두고 살아온 윤혜정이라는 사람을 중심으로, 예술이 배경처럼 스며들어 있다. 다만 책을 다 읽고 덮으며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그의 삶과 예술을 각각의 독립적인 개체로 두고 설명할 수는 없겠다는 것, 어떤 하나의 풍경에서 줌인/줌아웃을 수시로 해 상대적으로 특정 부분이 세세하게 보이는 순간이 있을지언정, 그의 삶과 예술은 하나가 된 존재라는 것. 윤혜정이 예술이라는 매개체로 글을 빚어내고, 그의 삶 곳곳에 녹진하게 스며든 예술이 그의 인생을 빚어내고 있었다. 놀랍도록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이 모든 것이 가능하게 했던 건 무엇보다 윤혜정이 예술을 대하는 태도에 있을 것이다. 코로나 시기를 지나오며 한국 미술시장은 전례 없는 호황을 맞았고, 미술품을 재테크의 도구로 인식하는 이들을 주변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작가는 분명 누구보다도 자신이 걸어온 길과 경험을 잘 이용(?)할 수 있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예술을 예술로 바라보고, 사유하고, 이런 자신의 태도를 나누고 알리려 노력한다. 그의 태도에서 예술을 대하는 그의 품격이 느껴진다. 사랑은 사랑을 알아보는 법이니, 예술 역시도 그의 시선과 사유 안에서 더할 나위 없이 활짝 만개한다.

 

이 책을 읽는 시기가 마침 장-미셀 오토니엘의 덕수궁 전시 마지막 주와 겹쳤다. 윤혜정의 문장과 SNS 피드를 도배한 전시 작품 사진들을 함께 보며, 문장으로 형용할 수 없는 ‘가득 참’을 느꼈다. 몰랐던 것을 알게 된 기쁨. 동시에 그냥 ‘좋다’, ‘예쁘다’ 생각하고 지나칠 어떤 사진 앞에서 한참을 머물렀다는 것, 그렇게 머무른 시간 동안 작품과 작가와 윤혜정의 문장과, 무엇보다 내 삶의 어떤 것들을 떠올렸다는 것. 그 순간은 마치 흑백 영화만 보던 이가 사실 세상은 총천연색 컬러로 가득 찬 세상이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과 비견되는 경험이었다.


작가는 책의 프롤로그에서 ‘독자와 관람객의 손에 들린 작은 손전등’이 되고 싶다 했다. 그가 망설이면서도 용기를 내 세상에 내보인 이 책은 감히 예상하건대 그 목적을 넘치게 달성할 것 같다.


 

“기본보다는 기교가 주목받고, 겸양보다는 당당한 자기 홍보 능력이 박수를 받고, 자신감과 자만심, 자존감과 자의식의 흐린 경계에서 줄타기를 하고, 순수함이나 순진함이 더 이상 자랑이 아닌 작금의 세상에서 나도 문득문득 가해자 혹은 피해자로 그렇게 살고 있을 것이다.”

 

“배우인 그에게 본질은 ‘연기하다’ 일 것이다. 나는 어느 경지에 오른 진짜 고수들의 공통점, 그저 군더더기 없이 본질에 충실한 자에게만 주어지는 흉내 낼 수 없는 산뜻한 ‘가벼움’을 다시금 목격한다.”

 

“삶이란 높은 탑을 쌓는 게 아니라 미완성의 그림을 그리는 것이고, 특정 세대가 아니라 바로 나로 구성된 우리가 만드는 것이다. 대부분의 삶은 별로 중대하지 않거나, 지겹도록 반복되거나, 너무 우연해서 기억조차 못할 정도로 전형적인 일상의 순간들로 직조되어 있을 뿐 아니라, 이 소소한 면면에 힘입어 앞으로 나아간다. 명분과 이론이 제아무리 웅장하고 원대해도 일상의 루틴을 견뎌내지 못하면 빛을 잃기 마련이고, 혁명을 위한 혁명은 실패하지 않기가 더 어렵다. 스스로를 신화로 격상시키지 않은 채 일상과 접속하고, 크고 작은 가능성과 저항, 변화의 경로를 탐색하는 것, 바로 나직한 자기 목소리로 ‘작은 이야기’를 해 온 자들의 몫이다.”


*을유문화사 책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윤혜정 #을유문화사 #K가사랑한문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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