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호호 - 윤가은 감독
#호호호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점 무엇인가를 맘껏 좋아하는 것도 능력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떤 대상의 좋은 점을 쉬이 찾아내고 이를 즐길 수 있는 건 활짝 열린 마음 상태가 아니고서야 그럴 수 없는 것이고, 마음을 열어둔다는 게 대관절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최근 내 주변은 살면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심각하고 복잡한 일들 투성이다. 물론 이 사건들을 잘 해결하는 것이 내가 받고 누린 사랑에 대한 책임이므로 기꺼운 마음으로 짊어지고는 있으나, 자비와 정의 중 정의를 택해야만 하는 상황은 대부분 어떤 모종의 죄책감을 필연적으로 동반하기에, 그 부분이 제법 낯설고 무겁다. 그래서 마음이 자꾸 움츠러든다. 이겨내고 말고를 차치하고, 마음이 딱딱해질까봐서.
의심과 혐오가 주류의 세태가 된 이런 시절, 의심과 계산 없이, 특히 작고 여린 것들에게 마음껏 마음을 열고 힘껏 사랑하는 윤가은 감독의 일상은, 읽기만 해도 스르르 무장해제되는 햇볕 같은 것이었다. 제목부터 웃는 소리의 책. 좋아하는 게 많아 호불호가 아닌 호호호만이 존재한다는 청량하고 밝은 이의 문장은, 최근 내 무거운 일상에 제법 큰 힘이 되었다. 일이 결코 해결되진 않을지언정, 무거운 짐 지고 걸어가는 길, 잠시 앉아 쉬며 마시는 시원한 물과, 상쾌한 바람맞는 것만으로도 다시 일어나 걸을 힘을 얻듯. 세상과 사람을 구하는 건 역시 작고 여린 따뜻한 것들이구나. 윤가은 감독의 결이 고스란히 담겼을 그의 작품을 어서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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