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기록
계절 앓이 치고는 조금 이른 것 같은 몸살이 왔다.
코로나인 줄 알고 몇 번을 테스트해봤지만 음성이고. 그럴 만도 했다. 주에 한 번씩 꽤 거나하게 술을 마셨고, 식단을 하지 않으니 자연스레 정크푸드가 일상이 된 게 제법 되었으니.
하필 이 귀한 주말에 뻗어버렸다. 약속을 잔뜩 잡아놓은 8월 말의 귀한 주말에. 약을 먹고, 배를 채우고, 또다시 까무러치고. 사흘 내리 끙끙 앓았다. 그래도 그 모진 이별 후 석 달이 넘는 지금까지 감기 한 번을 안 하고 버티다가, 이제야 조금 긴장이 풀린 건가 되려 안도하는 마음도 들었다. 일요일인 오늘은 아프기 전보다 훨씬 상쾌한 컨디션으로, 오래 미뤄둔 집안일들을 해낼 수 있었다.
걱정을 해 주는 벗들과, 무엇보다 요즘 내 마음 가장 큰 즐거움이 되어주는 J의 안부로 아픈 주말 외롭지 않게 보냈다. 아프지만 않았으면 J와 심야영화를 보고 밤새 술을 마실 작정이었는데. J는 못내 아쉬워했지만, 내 회복이 먼저라며 흔쾌히 약속을 미뤄주었다.
일상 구석구석, 그 사람의 생각을 하지 않은 순간을 손에 꼽을 만큼, 최근까지도 내 시간, 내 세상은 그 사람의 위성처럼 돌아갔다. 지금쯤이면 뭘 하겠구나, 지금쯤이면 어디에 있겠구나, 이 날은 뭘 하겠구나, 그런 생각들로 가득 찬 날들이었다. 그러다 J라는 귀엽고 저돌적인 인물이 내 일상 속으로 불쑥 발을 디밀고 들어왔다. J는 내게 묻는다.
누나 뭐 먹었어?
누나 뭐해?
누나 좀 어때?
누나 보고 싶어.
내가 뭘 하는지 쉼 없이 물어보는 J덕에,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내가 뭘 하고 있는지 인지를 하고, 그에게 답을 한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어떤 상태인지 궁금해하는 이는, 내가 나에게 집중할 수 있게 해 주는구나.
나는 그런 질문들을 받으며, 자연스레 그 사람의 행성에서 떨어져 나와 스스로 내 우주 안에서 내 속도로, 제 빛을 내며 돌기 시작한다.
처서를 이틀 앞둔 일요일 밤, 한낮의 뜨거운 빛은 흔적도 없이, 귀뚜라미 소리가 가득한 가을바람이 분다. 나는 또 한 걸음 지난 사랑, 지난 이별과 멀어졌음을 느낀다. J의 도움이 컸지만, 굳이 당장 다른 사람, 다른 사랑이 아니어도, 나 한 사람이어도 제법 괜찮겠다 싶은 시기가, 드디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