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가 악영향을 끼치는 경우
연애의 과학에서는 용서가 반복적인 잘못을 막는 효과가 있다는 연구를 소개한 바 있습니다. (참고:'연인의 잘못을 용서해야 하는 이유') 이 편이 발행된 후 많은 분이 '이런 경우에도 용서해야 하나요?' 라는 질문을 해주시더라고요. 모든 상황에서 무조건 용서해야 하는 건 아니라는 걸 알려드리고 싶었어요. 용서 해주는 것은 분명 반복적인 잘못을 막는 효과가 있지만, 어떤 경우에는 용서를 하는 사람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주기도 하거든요. 어떤 경우일까요?
노스웨스턴 대학의 루치스 교수는 상대방을 용서했을 때 자존감이 어떻게 변하는지 궁금했어요. 루치스 교수는 실험을 위해 72쌍의 신혼 부부를 모집하고 무려 5년 동안 지속적으로 관찰했습니다. 루치스 교수는 이들을 대상으로 실험 기간 동안 정기적인 설문조사를 했어요.
상대방이 저지른 잘못을 용서했는지를 묻고, 현재 자신의 자존감은 어떤 상태인지도 물어보았죠. 5년후, 결과를 살펴보던 루치스 교수는 깜짝 놀랐어요. 용서를 잘 해주는 사람일수록 특정 상황에서 자존감이 더 낮다는 걸 발견했거든요.
루치스 교수는 용서를 해주는 사람의 자존감이 배우자의 태도에 따라 큰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배우자가 용서해준 사람을 잘 배려한 경우에는 자존감이 크게 변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약간 상승하는 추세를 보였죠. 문제는 배우자가 배려심이 부족한 경우였어요.
배우자가 용서한 사람을 잘 배려해주지 않은 경우, 사람들은 5년 뒤 자존감이 무려 30%나 깎였어요. 자신은 상대방을 좋은 의도로 용서했는데, 상대방이 배려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으면 얼마나 낙담이 되겠어요.
실험을 진행한 루치스 교수는 이 현상에 대해 이렇게 설명합니다.
용서를 받아들이는 상대방의 태도는 자존감에 영향을 끼칩니다. 용서 받은 상대방이 배려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면, 용서한 사람은 상대방이 자신을 존중하지 않고 무시한다고 느끼게 돼요.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용서하는 사람은 용서의 기준에 대한 확신이 줄어들면서 자신의 가치관이 흔들리고 자존감도 낮아지게 됩니다.
반면, 용서 받은 상대방이 배려하는 태도를 보인다면, 관계에서 안정감을 느끼고 스스로 가치 있는 사람으로 여기게 되죠. 또한 자신의 선택에 대한 확신을 얻기 때문에 자존감도 향상되고요.
용서는 두 사람이 어떤 관계를 유지해왔는지가 많은 영향을 미칩니다. 상대방이 나를 배려하지 않는 느낌이 든다면, 무조건 용서하기보다는 똑 부러지게 서로의 문제를 직시하고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게 먼저예요. (참고: 연인의 나쁜 행동을 바꾸고 싶다면?)
가장 좋은 것은 서로 '더 용서해주고', '더 배려해주는' 관계를 이루는 것입니다. 한 사람만 노력해서는 이룰 수 없는 결과겠죠?
참고문헌
Luchies, L. B., Finkel, E. J., McNulty, J. K., & Kumashiro, M. (2010). The doormat effect: when forgiving erodes self-respect and self-concept clarity.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98(5), 734.
어려운 연애, 조금 더 쉽게. 연애의 과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