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민에게 출퇴근 스트레스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지금은 사무실이 여의도에 있어 그나마 나은 편인데, 삼성동으로 다닐 때는 최소 3시간을 도로 위에서 보내야 했다. 갈 때 1시간 30분, 올 때 1시간 30분(2시간 가까이 걸릴 때도 있었다). 여의도는 갈 때 1시간, 올 때 1시간 30분 정도다. 30분~1시간 정도 단축된 것이기는 하지만 체감하는 만족도는 컸다. 지금도 서울에 사는 동료들은 '어머, 출퇴근 시간이 길어 힘들겠어요'라고 하지만 나는 더 안 좋은 상황도 겪어봤던 터라 나름대로 만족하며 다니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나에게 차가 생겼다. 차로 출퇴근하는 남편이 비 오는 날 출근을 하다 미끄러져 접촉사고를 냈다. 나는 이 참에 차를 바꾸자고 했다. 연초부터 차를 사기 위해 나 혼자 조금씩 저금을 하고 있었고, 어느새 1천만 원 정도가 모였다. 여기에 부부 공동 저축 1천만 원, 그리고 남편의 퇴직금을 보태어 새로 나온 그랜저를 샀다. 금요일에 사고가 나고 바로 당일에 계약을 해 그다음 주 수요일에 차를 받았다. 이미 출고된 차량을 계약한 거여서 대기 없이 바로 받을 수 있었다.
내 차를 사겠다고 야심 차게 모으기 시작한 돈이었지만 아직 초보인 내가 그랜저를 몰기엔 부담스럽고, 남편이 타던 아반떼를 내가 타겠다고 했다. 15만 킬로 이상 탄 오래된 차였지만 나름대로 깨끗하게 관리한 터라 지금도 현역으로 탈만했다. 남편이 장기 해외 출장을 갈 때마다 내가 간간이 몰았던 차라 익숙하기도 했다. 그래도 이제 진짜 '내 차'라고 생각하니 기분이 남달랐다. 정식으로 차키를 인수하고, 상세한 조작법도 교육을 받고, 같이 자동차등록소에 가서 명의 이전도 했다. 남편으로부터 도로 연수도 몇 번 받았다. 그동안은 내가 운전할 때 조수석에셔 조언하는 것을 잔소리로 치부하고 잘 안 들으려 했었는데, 이제 진짜 실전이다 싶으니 귀담아듣고 모범적인 운전자가 되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새 차를 뽑은 남편보다 헌 차를 물려받은 내가 훨씬 더 들뜨고 기뻐했다. 남편이야 좋은 차로 갈아탄 거지만, 나는 없던 차가 생긴 거니까! 밤마다 쿠팡으로 차량용품을 검색하고 하나씩 차를 채워가며 내 공간으로 만들어갔다. 차가 생긴다는 것은 나만의 공간이 생김과 동시에 휴대 가능한 엄청나게 큰 가방이 생긴 느낌이기도 했다. 선크림이랑 핸드크림도 갖다 놓고, 이제 텀블러도 들고 다니고, 운전용 신발도 사서 두었다.
그렇게 차를 가지고 운전하는 첫날. 호기롭게 주차장을 나섰지만 손이 덜덜 떨렸다. 집 근처 길은 눈에 익어서 다닐만했지만 이걸 타고 도저히 여의도까지 갈 엄두가 안 났다. 그곳은 운전자들의 전쟁터였다. 그 수많은 차, 눈치싸움, 끼어들기를 견뎌낼 자신이 없어 결국 집에서 8km 정도 떨어진 동사무소 같은 곳에 주차를 하고 (주차비가 가장 저렴한 곳) 버스를 타고 회사에 갔다. 그다음 날에도였다. 오늘은 꼭 여의도까지 가보자! 다짐했지만 주차할 곳이 마땅치 않기도 하고, 두려움이 떨쳐지지 않아 또 동사무소에 두고 버스로 출근. 이럴 거면 왜 차를 가지고 나왔나 싶지만 내 나름대로는 적응하는 기간이라고 생각하며 조급하지 않으려고 했다. 나에게도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하니까.
그렇게 3일 차. 드디어 차를 가지고 여의도까지 갔다. 경기 서부권에서 여의도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은 유료도로인 신월지하차도를 이용하는 것이다. 신월 IC까지 진입하는 길에 차가 매우 많아 복잡하고 끼어들기도 잘해야 한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가니 생각보다는 어렵지 않았다. 주차는 한강에 있는 여의도 3 주차장에 했다. 사무실은 여의도 2 주차장이 더 가까웠지만, 거기는 주차공간이 많지 않아서다. 무사히 여의도 3 주차장에 차를 대고 기쁨의 인증샷을 찍고 사무실로 향했다. 긴장감이 좀 있기는 했지만 지하철+버스로 출퇴근할 때에 비해 신체적, 정신적 피로도는 훨씬 적었다. 이렇게 덥고 습한 여름에 만원 지하철을 타고 1시간 이상 출퇴근 한다는 건 정말이지 힘든 일이다.
대중교통으로 출퇴근을 하다 여의도 등 서울 중심부로 출퇴근을 고민 중인 사람이 있다면 아래와 같은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중요한 건 주차장이다.
도심에 있는 회사 대부분은 일정 직급 이상의 직원에게만 주차공간을 제공한다. 나 역시 주차공간을 제공받지 못하기에 사무실 인근에 있는 공영주차장이나 민영주차장을 이용해야 했다. 여의도의 경우 월주차 비용은 최소 20만 원부터다. 일주차는 공영주차장인 한강 주차장이 하루 15,000원이다. 이 정도면 여의도에서는 가장 싼 편이다. 월주차를 물어보니 안 받는다고 한다. 한강 주차장에서 사무실까지는 걸어서 10~15분 정도다. 나무도 많고 길도 좋은 편이라 걸을 만 하지만 무더운 날엔 힘들다. 그래도 이거라도 안 걸으면 너무 안 걷겠다 싶어서 좋게 생각하려 하고 있다.
차로 다니면 더 빠를까?
그렇지도 않다. 아침에 아주 일찍 나온다면 출근시간이야 많이 단축되겠지만 퇴근시간엔 꼼짝없이 막힌다. 시간을 단축시키고 싶다면 사무실에 버티고 있다가 8시 넘어야 나와야 하는데 그러고 싶진 않다. 출근할 때는 대중교통으로 가도 1시간, 차로 가도 1시간. 퇴근할 때는 대중교통으로 가면 1시간 30분, 차로 가면 1시간 + 5~10분. 시간을 드라마틱하게 단축할 목적으로 차를 가지고 다닌다면 적합하지 않다. 다만 대중교통을 타고 다니면서 받는 환승, 대기, 복잡함 등의 스트레스가 없는 점이 정말 좋다! 나만의 공간에서 혼자 운전에 집중하면서 바깥 구경도 하고.
포기해야 할 것은 주머니 사정이다.
정말이지 돈만 놓고 보자면 무.조.건. 대중교통을 타고 다니는 것이 이득이다. 이건 차를 사기 전에도 여러 번 시뮬레이션을 돌려 보았는데 계산을 때려 보니 매일 택시를 타고 출퇴근하는 것이 차량을 유지하는 것보다 저렴했다. 돈으로만 보면 그렇다. 돈을 모으고 싶다면,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다면 자차로 출퇴근하는 것은 완전히 비추다. 내 경우 중고차를 이어받아 차량 할부금이 없음에도 주유비, 주차비, 톨비까지 생각하면 꽤 많은 돈이 깨진다. 아직 2주 정도밖엔 안 되어서 정확하게 얼마나 비용이 나올지 알 수 없는 상태이나 확실한 건 정말 많은 돈이 든다는 거. 하루 기준으로 주차비(15,000원)와 톨비(5,200원)만 해도 하루에 2만 원이 넘는다. 20일 출근하면 한 달에 40만 원이다. 보험료도 1년에 90만원이 넘는다. 여기에 주유비, 차량유지비, 보험료, 자동차세까지 생각하면...
어른이 된 것 같은 느낌이다.
그럼에도 아직까지는 설레는 마음으로 차를 가지고 다니고 있다. 내가 원하는 곳 어디든 갈 수 있다는 느낌이 좋다. 그동안은 카카오택시 VIP회원답게 매일 택시를 타고 다녔지만 이제는 지하주차장에 가면 내 차로 갈 수 있다. 담배 냄새 없고, 과속 없고, 내 속도에 맞게 운전하고 어디든 갈 수 있어서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