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혜원 Jan 25. 2024

결혼 후 연봉을 2배 올릴 수 있었던 건

경제적 부채의식, 아이에 대한 결핍

결혼 전 나는 결핍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리 많은 돈을 벌지는 않았지만 중견기업에 다니면서 매월 혼자 먹고 살만큼 적당한 월급을 받았다. 오피스텔 월세를 내고 고양이를 키우며 휴가 때는 친구들과 해외여행을 다녔다. 저축도 없지만, 빚도 없었다. 노후준비는 관심밖이었지만 누구에게도 폐끼치 않고 부모님으로부터 경제적으로 완전히 독립한 1인가구로 살고 있었다. 내 삶에 무척 만족했다. 미래는 잘 모르겠지만,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잘 지내고 있었다. 그러다, 하나여도 좋지만 이 사람이라면 둘이어도 행복하겠다는 생각에 결혼을 하게 되었다.


운 좋게도 시부모님께서는 아들 내외에게 경제적 지원을 해줄 수 있는 여건이 되었다. 근사한 아파트에서 신혼 생활을 시작한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 때의 지원이 없었더라면 집 걱정에 시달리며 힘든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무척 감사한 일이었다. 그분들이 30여 년간 피땀 흘리며 경제생활을 하신 결과물로, 우리는 집 걱정 없이 지낼 수 있었다. 그러나 감사한 것과는 별개로 내 마음에는 부채의식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우리 집에서는 경제적인 지원을 해줄 수 있는 형편이 안 되었기 때문이다. 이 문제로 어느 누구도 원망의 말을 한 적은 없었지만 내 마음속에는 늘 빚이 있었다. 남편의 부모님께서 우리가 결혼할 때 지원해 주신 금액을 우리가(혹은 내가) 열심히 돈을 벌어서 꼭 갚아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것은 내 열등감에 비롯된, 말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돈을 열심히 벌어야겠다고 생각한 건. 그동안은 나 혼자 돈을 벌어 나 하나 먹여 살리고, 엄마 아빠와 여행도 다니고 가끔 용돈도 드리는 것으로 충분했다. 결혼을 하니 상황이 달라졌다. 아무도 나에게 무어라 하지 않았지만 부부간 힘의 균형이 살짝 기울어져 있음을 느꼈다. 남편은 무척 다정하고 좋은 사람이고, 시부모님께서도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분이시지만 그것과는 별개의 이야기다. '타인'에게 아쉬운 이야기 하는 것을 끔찍이 여기는 나는 이 상황을 바꾸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여기서 타인은 가족도 예외는 아니었다. 나는 우리 부모님께도 무언가를 부탁하는 일을 어려워했다. 무슨 일이든 내 힘으로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 또는 오기에 가득 차 있었다. 적절한 도움이 필요한 때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 용기가 없었던 것 같아 돌이켜 보면 당시의 내가 안타깝게 느껴지기도 한다.


결혼을 하면 커리어가 망가지지 않을까 걱정했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결혼이라는 퀘스트를 달성하고 나니 오히려 내 삶은 심플해졌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제거되었고, 규칙적이고 안정적인 생활을 기반으로 일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둘이 같이 벌어 공동으로 가계를 관리하니 수입과 지출 내역도 가시화되고, 불필요한 부분은 통제할 수 있게 되면서 돈도 제법 모여갔다. 두 번의 이직을 거치면서 내 연봉은 결혼 당시보다 2배나 올랐다. 결혼 후 5년간 스스로 만족할 만한 커리어가 쌓여갔다. 자연스럽게 마음속의 열등감도 옅어지기 시작했다. 비록 초기 자산 형성에는 기여하지 못했지만 지속적인 현금흐름을 제공하는 '쓸모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사람의 가치를 경제적인 효용으로 평가해서는 안 될 일이다. 그러나 현실 세계에서 경제적인 문제는 사람간의 관계에 영향을 준다. 이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결혼 후 커리어를 잘 쌓아나가고 연봉도 올릴 수 있었던 결정적인 배경은 아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도중에 아이가 생겼다면 이직을 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지금만큼 일에 집착하지 않았을 것이다. 두 번의 이직을 결정할 때마다 가장 고민했던 건 역시 아이 문제였다. 중견기업에서 스타트업으로 이직을 고민할 당시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두고 불안정한 회사로 가는 것에 대한 고민이 컸다. 원래 다니던 회사는 육아휴직 등 기혼자에 대한 지원이 아주 잘 되어있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제 생길지 모르는 아이 때문에 커리어를 바꿀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수 없다는 생각에서 이직을 결정했다. 두 번째 이직은 컨설팅업계로 업/직종을 변경하는 일이었는데, 일과 삶의 균형이 깨질 것이 너무나도 분명한 상황이었기에 남편을 설득하느라 애를 많이 썼다. 이직하자마자 임신하면 어쩌지? 아이를 낳고도 힘든 근무 환경을 견딜 수 있을까? 고민은 했지만 결론은 결국 같았다. 두 차례의 이직을 감행할 때마다 믿고 지지해 준 남편에게 정말 고마웠다.


한편으로는 아이가 없기에 커리어 하이를 찍어야 한다는 강박도 있었다. 30대 중반을 넘어서면 주변의 결혼한 친구들은 자녀라는 인생에서 가장 큰 선물을 얻게 된다. 자녀라는 건 그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인생의 모든 것을 걸만한 가치가 있는 존재처럼 보였다. 내게는 그런 존재가 없었다. 그러니 다른 무언가가 절실히 필요했던 것 같다. 우리 부부에게 아직 아이가 없는 건, 일하고 돈 버는 일에 더 집중했기 때문이라는 근거를 만들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결핍을 채우기 위해 일에 몰두하고, 자격증을 따기 위해 독서실에 다니고, 속된 말로 성공한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했었다. 그랬다.


나는 임신을 했고, 반년 뒤면 육아휴직에 들어갈 것이다. 이후 일상생활과 일에 대한 생각이 어떻게 변할지는 잘 모르겠다. 지금 생각으로는 내 인생에서 더 중요한 아이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보내지 않을까 싶다. 지난 13년간 회사 일은 할 만큼 했다. 아이에게 필요한 최선을 다한 뒤 다시 일의 세계로 뛰어들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