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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원 May 21. 2024

비효율적인 일을 하는 즐거움

뜨개질로 가방 뜨기

처음 컵받침을 만들면서.


올해 초 한 달간 휴직을 했었다. 한겨울이라 바깥을 돌아다니기도 마땅치 않아 대부분의 시간을 집안에서 보냈는데, 무척이나 무료하고 지루했다. 넷플릭스도 몰아서 엄청 보고, 전자책도 여러 권 사서 읽고 아무리 뒹굴거려 봐도 시간이 가지 않았다. 일할 때는 출근해서 어영부영하다 보면 점심 먹을 시간, 점심 먹고 커피 마시고 사무실에 돌아와 또 휘몰아치듯 일을 하고 나면 퇴근할 시간이었는데 집에서는 시간이 아주 느리게 흐르는 것 같았다. 그러던 중 집 앞에 풀잎문화센터라는 평생교육기관을 발견했는데 뜨개질, 자수, 공예 등을 배울 수 있는 곳이었다. 독학으로 수세미를 떠보려고 실과 바늘 세트를 구입했지만 도저히 내 머리로는 이해가 안 돼서 포기했었는데, 집 앞에서 배워보면 좋을 것 같아 뜨개질 강좌를 등록했다.


그리고 첫 수업. 선생님이 있으니 순조롭게 배울 수 있을 거라는 기대와는 달리 생각보다 쉽지가 않았다. 선생님의 손은 너무 빨리 움직였고, 이 실과 실이 엮여서 어떻게 이런 모양이 되는 건지 원리가 이해되지 않으니 의아하기만 했다. 선생님도 처음에는 인내심을 가지고 알려주셨지만 내가 계속 같은 부분에서 막히고 잘 못하자 답답해하셨다 (ㅠㅠ) 선생님에게 "저 원래 이런 사람은 아닌데요.." (그럼 원래 어떤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라는 해괴한 변명 아닌 변명을 하며 이해를 구했다. 첫 수업을 마치고 집에 와서 자책을 하며 환불을 할까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래, 분명히 인간 중에는 뜨개질이라는 걸 할 수 없는 개체도 있을 거야. 그게 바로 내가 아닐까 하면서.

실을 가지고 다니며 집밖에서도 떴다.


두 번째 수업을 가기 전날 밤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한참을 고민하다 결국 갔다. 나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줘보기로 했다. 두 번째에도 헤매기는 했지만 그래도 한번 해본 거라고 처음보다는 수월했다. 그렇게 두 번째 수업 때 컵받침을 만들었고, 다음번에 무엇을 만들고 싶은지 생각해 오라고 해서 하얀 모티브 가방을 떠보기로 했다. 모티브 가방이란 네모난 패치를 여러 개 뜬 다음 이어 붙이는 방식으로 만드는 가방이다. 그리 어려워 보이지 않아서 하겠다고 했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모티브를 22개나 만들어야 하는 것! 내 속도로는 모티브 하나를 만드는데 2시간 정도 걸려서, 22개를 완성하려면 조각 만드는데만 물리적인 시간이 44시간. 내가 이 가방 뜨기를 시작한 지 3개월이 넘었건만 아직도 하고 있다. 그래도 이제 어느 정도 손에 익었고, 도안 보는 법도 조금은 알게 되어서 이전보다는 수월하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효율성 면에서 보자면 뜨개질은 형편없는 작업이다. 몇 만 원이만 내면 비슷하게 생긴 가방을 손쉽게 살 수 있는데 40시간이나 들여 가방을 만든다니! 그럼에도 극한의 효율 추구와 정보 과잉의 시대에 이렇게 손으로, 반복적으로 비효율적인 일을 한다는 게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뜨개질을 할 때는 손 두 개가 묶여 있기 때문에 핸드폰을 볼 수 없는 것은 물론, 나 같은 초보는 시선도 실에 고정해야 해서 자막이 있는 영상을 보기도 쉽지 않다. 한국어로 된 영상도 템포가 빠르고 편집점이 많은 유튜브 영상들은 소화하는 게 쉽지 않아서 실시간 라이브 방송을 보거나 라디오를 들을 때가 많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건 KBS 클래식 FM을 들으면서 뜨개질을 하는 일이다. 라디오를 듣다 보면 인생은 그래도 아직 살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 하루를 열심히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 가족과 함께하는 하루를 소중히 하는 사람들의 사연이 내 마음도 따뜻하게 만든다.


나의 첫 뜨개 가방도 이제 막바지 작업에 돌입했다. 모티브 뜨는 것은 완료했고, 연결하는 작업만 남았다. 예쁘게 완성해 들고 다닐 생각에 설렌다. 이번 작품이 끝나면 아기 드레스와 인형도 만들어 봐야겠다.


완성된 모티브를 스팀 다리미로 펴서 네모낳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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