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개질로 가방 뜨기
올해 초 한 달간 휴직을 했었다. 한겨울이라 바깥을 돌아다니기도 마땅치 않아 대부분의 시간을 집안에서 보냈는데, 무척이나 무료하고 지루했다. 넷플릭스도 몰아서 엄청 보고, 전자책도 여러 권 사서 읽고 아무리 뒹굴거려 봐도 시간이 가지 않았다. 일할 때는 출근해서 어영부영하다 보면 점심 먹을 시간, 점심 먹고 커피 마시고 사무실에 돌아와 또 휘몰아치듯 일을 하고 나면 퇴근할 시간이었는데 집에서는 시간이 아주 느리게 흐르는 것 같았다. 그러던 중 집 앞에 풀잎문화센터라는 평생교육기관을 발견했는데 뜨개질, 자수, 공예 등을 배울 수 있는 곳이었다. 독학으로 수세미를 떠보려고 실과 바늘 세트를 구입했지만 도저히 내 머리로는 이해가 안 돼서 포기했었는데, 집 앞에서 배워보면 좋을 것 같아 뜨개질 강좌를 등록했다.
그리고 첫 수업. 선생님이 있으니 순조롭게 배울 수 있을 거라는 기대와는 달리 생각보다 쉽지가 않았다. 선생님의 손은 너무 빨리 움직였고, 이 실과 실이 엮여서 어떻게 이런 모양이 되는 건지 원리가 이해되지 않으니 의아하기만 했다. 선생님도 처음에는 인내심을 가지고 알려주셨지만 내가 계속 같은 부분에서 막히고 잘 못하자 답답해하셨다 (ㅠㅠ) 선생님에게 "저 원래 이런 사람은 아닌데요.." (그럼 원래 어떤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라는 해괴한 변명 아닌 변명을 하며 이해를 구했다. 첫 수업을 마치고 집에 와서 자책을 하며 환불을 할까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래, 분명히 인간 중에는 뜨개질이라는 걸 할 수 없는 개체도 있을 거야. 그게 바로 내가 아닐까 하면서.
두 번째 수업을 가기 전날 밤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한참을 고민하다 결국 갔다. 나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줘보기로 했다. 두 번째에도 헤매기는 했지만 그래도 한번 해본 거라고 처음보다는 수월했다. 그렇게 두 번째 수업 때 컵받침을 만들었고, 다음번에 무엇을 만들고 싶은지 생각해 오라고 해서 하얀 모티브 가방을 떠보기로 했다. 모티브 가방이란 네모난 패치를 여러 개 뜬 다음 이어 붙이는 방식으로 만드는 가방이다. 그리 어려워 보이지 않아서 하겠다고 했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모티브를 22개나 만들어야 하는 것! 내 속도로는 모티브 하나를 만드는데 2시간 정도 걸려서, 22개를 완성하려면 조각 만드는데만 물리적인 시간이 44시간. 내가 이 가방 뜨기를 시작한 지 3개월이 넘었건만 아직도 하고 있다. 그래도 이제 어느 정도 손에 익었고, 도안 보는 법도 조금은 알게 되어서 이전보다는 수월하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효율성 면에서 보자면 뜨개질은 형편없는 작업이다. 몇 만 원이만 내면 비슷하게 생긴 가방을 손쉽게 살 수 있는데 40시간이나 들여 가방을 만든다니! 그럼에도 극한의 효율 추구와 정보 과잉의 시대에 이렇게 손으로, 반복적으로 비효율적인 일을 한다는 게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뜨개질을 할 때는 손 두 개가 묶여 있기 때문에 핸드폰을 볼 수 없는 것은 물론, 나 같은 초보는 시선도 실에 고정해야 해서 자막이 있는 영상을 보기도 쉽지 않다. 한국어로 된 영상도 템포가 빠르고 편집점이 많은 유튜브 영상들은 소화하는 게 쉽지 않아서 실시간 라이브 방송을 보거나 라디오를 들을 때가 많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건 KBS 클래식 FM을 들으면서 뜨개질을 하는 일이다. 라디오를 듣다 보면 인생은 그래도 아직 살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 하루를 열심히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 가족과 함께하는 하루를 소중히 하는 사람들의 사연이 내 마음도 따뜻하게 만든다.
나의 첫 뜨개 가방도 이제 막바지 작업에 돌입했다. 모티브 뜨는 것은 완료했고, 연결하는 작업만 남았다. 예쁘게 완성해 들고 다닐 생각에 설렌다. 이번 작품이 끝나면 아기 드레스와 인형도 만들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