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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원 Jul 16. 2024

임신 후기

출산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아직 임신 중이지만 이제 막바지에 왔으니 후기라는 걸 써도 괜찮겠지 싶다. 계획 임신을 했음에도 돌이켜 보면 임신 전에는 임신이라는 것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랐구나 싶다. 10개월 동안 아기를 품고 있는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임신 기간이 정확히 40주라는 걸 알고 있었는지도 잘 모르겠고, 몸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도 전혀 알지 못했다. 그저 어렴풋이 5개월쯤 되면 배가 나오고, 아기가 좀 크면 발차기를 하고, 임신을 하면 입덧을 해서 음식을 잘 먹지 못한다는 것 정도만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렇다고 임신 전에 이 모든 과정들을 미리 공부하고 준비가 필요하다는 뜻은 아니다. 닥치면 그 시기에 맞게 모든 일을 하게 되어있으니 그걸로도 충분하다.


임신을 하면 한주 한주가 퀘스트를 깨는 느낌이다. 시험관 시술을 통해 임신을 했기에 비교적 빠른 시기에 임신 사실을 알 수 있었는데, 그게 임신 3주 차였다. 3주 차에 피검사를 통해 임신 호르몬 수치가 확인되면 그다음 주에는 피검사 수치가 어느 정도 이상 올라야 하고, 그다음 주에는 초음파로 아기집이 확인되어야 하고, 그다음 주에는 아기가 심장이 정상적으로 뛰는 것을 확인해야 한다. 임신만 하면 끝인 줄 알았는데 매주 통과해야 할 관문들이 있다. 1차 기형아 검사, 2차 기형아 검사, 신경관 결손 검사, 정밀 초음파 검사, 임신성 당뇨 검사, 태동 검사, 막달 검사 등 검사에서 '이상 없음'이 확인되어야 비로소 안심할 수 있다. 다행히도 나는 임신 기간에 문제가 될만한 큰 이벤트는 없었다.


37주차 만삭 임산부

가장 큰 사건이라고 한다면 쌍둥이 소실(Vanishing Twin)이 있었다. 임신 초기에 일어난 일이라 나도 잊고 있을 때가 많지만 그런 일이 있었다. 쌍둥이 소실은 두 개의 배아가 착상되었지만 그중 하나의 배아가 성장을 멈추고 유산되는 것을 말한다. 임신 5주 차쯤에 쌍둥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충격) 두 번째 발견한 태아는 성장이 더뎌 예후가 좋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임신 8주차경에는 두 태아의 심장소리를 모두 확인했지만, 9주 차에는 결국 한 태아가 성장을 멈추었다. 이렇게 글로만 보면 아이를 잃은 슬픈 상황이지만 당시 나는 무덤덤했던 것 같다. 초기부터 의사가 예후가 좋지 않을 것이라고 했기에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있었고, 나중에 상처받을까 두려워 감정이입을 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저 한 명의 태아라도 무사하면 되었다는 마음이었다.


쌍둥이 소실에 큰 감흥이 없었던 건 일반적인 단태아 유산과는 달리 내 몸에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다. 보통 태아가 유산되면 하혈을 하면서 자연적으로 유산이 되거나, 몸에서 자연적으로 빠져나오지 못하는 경우 수술을 통해 보내주게 된다. 어느 쪽이든 산모의 몸과 마음에 상처가 나는 일이다. 그러나 쌍둥이 중 한 명이 소실되는 경우에는 자연스럽게 모체의 자궁에 흡수되어 흔적을 찾아볼 수 없게 된다. 나로서는 초음파상으로만 봤던 아기가 자궁에서 자연스럽게 소실되었다고 하니 그런가 보다, 하고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밖에 임신 기간에 겪었던 신체적인 변화 및 어려움이라고 한다면 혈류량 증가로 인한 이명 및 귀 먹먹함, 다리 저림 및 감각 이상, 낙상 2회 정도가 있겠다. 만삭임에도 배가 많이 나오지 않은 편이고, 임신 전과 비교해 체중이 7kg 정도밖에 늘지 않아 비교적 신체 변화가 적은 편이었다. 다행이다. 신체 변화가 클수록 임신으로 인한 부작용(?)이 생길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신체적인 불편이 크지 않았던 덕분에 임신 초기 한 달간 휴직을 했던 것을 제외하면 근무도 정상적으로 했다. 대중교통으로 왕복 3시간 통근도 했고, 어떤 날은 야근도 했다. 물론 재택근무도 병행했다. 37주 차인 현재도 재택근무 중이고, 38주인 다음 주부터 공식적인 출산휴가와 함께 아기를 낳으러 갈 예정이다.


임신을 하고 많은 것이 편안해졌다. 느리게 걷고 천천히 행동한다. 살면서 지금처럼 내 몸을 아끼고 사랑하고 배려했던 적은 없었다. 좋은 음식을 먹으려 애쓰고, 철분제 비타민D 유산균을 매일 챙겨 먹고, 무리하지 않고, 나쁜 일로부터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가끔 불안에 사로잡혀 무서운 상황들을 검색해 보고 잠 못 이루는 밤들이 있기도 했지만, 대체로는 행복하고 편안했다. 지금까지 상상했던 임신은 살이 찌고, 우울하고, 몸이 불편하고 나를 희생해야 하는 일이었는데, 기대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일들이 펼쳐졌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배려해 주었고, 분에 넘치는 축하를 받았다. 아기를 맞을 준비를 하며 몸과 마음을 가다듬고, 남편과 아이와 함께할 미래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아기방을 꾸미는 일이 이렇게 행복한 일일 줄 몰랐다. 미디어에서 봤던 아이를 기다리는 행복한 부부의 모습은 꾸며진 모습이 아니었다. 정말로 그랬다. 저녁을 먹고 산책을 하며 남편에게 살면서 이렇게 행복했던 적이 없는 것 같다는 말을 자주 했다.


이렇게 꽃선물도 할줄 아는 나의 사랑


모성애가 생겼느냐고 하면 그런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것 같다. 임신을 하고부터 매일 임신 앱에 태교 일기를 쓰고 있다. 아기에게 보내는 편지 같은 건 아니고 그냥 내 일상을 적는 일기다. 오늘 뭘 먹었고, 회사에서 무슨 일이 있었고, 아기 관련해서는 어떤 일이 있었는지 짧게 적는 거다. 이 일기를 쓰면서 10년, 혹은 20년 후에 이 일기를 읽을 나의 딸을 모습을 상상한다. 삶이 지치고 힘들고 세상이 나를 배신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 엄마가 나를 품고 있던 시절 얼마나 행복하게 지냈는지, 내가 얼마나 사랑받은 존재인지를 알게 된다면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일기를 쓴다. 내 딸이 삶이 고단하고 힘들지만 이렇게 기쁨과 사랑 속에 태어난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고 세상을 살아갈 힘을 얻기를 바란다. 이 생각을 할 때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을 글썽거리게 되는데, 주책맞다 싶으면서도 매번 그렇다.


아이를 생각하며 눈물을 펑펑 흘렸던 적도 있었다. 남편과 도쿄 여행을 갔을 때였다. 남편과 나는 10년 전 연애 시절 도쿄 여행을 간 적이 있었다. 이번에 임신을 하고 어디로 여행을 갈까 고민하다 다시 도쿄에 가기로 했다. 여행이 막바지에 이르러 집에 돌아오기 전날 밤 저녁을 먹으며 우리 둘만의 해외여행은 당분간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8년의 연애, 5년의 결혼생활, 그리고 우리 사이에 생긴 아이라는 존재. 이제 우리의 곁에는 언제든 그 아이가 함께할 것이다. 그래서 약속을 했다. 우리 아기가 만 20살이 되는 2044년이 되면, 우리 둘이 해외여행을 다시 오자고. 그때까지 잘 지내보자고. 그러자 아직 겪지도 않은 20년의 세월이 머릿속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듯했다. 아기를 낳고, 어린이집에 가고, 학교에 보내고, 사춘기를 겪고, 성인이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기쁨과 희망과 절망과 분노가 있을지, 감히 상상하기도 어려운 그 수많은 일들을 겪고 나서 비로소 20년의 시간이 흘러 남편과 함께할 그 여행의 지점에 내가 와 있었다. 그런 상상을 하자 뭔가 감정이 벅차올라 눈물이 펑펑 났다. 내 인생에 새로운 페이지가 열리고 있구나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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