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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태현 Nov 05. 2018

서울에 사는 평강공주

소백산자락길6 : 온달평강 로맨스길

  일주일 사이 산들은 갈색 톤이 짙어졌다. 메마르고 칙칙해진 느낌이었지만 고드너미재 단풍은 절정 그대로였다. 먼 길 달려온 내게 주는 보상 같았다. 한 해가 가는 길목에서 놓치기 싫은 일들이 있다는 것은 정말 좋은 증상이다. 마음만 있지 실행에 옮기지 못하면 무슨 소용이겠는가. 마음을 움직여 새벽같이 일어나 고속도로를 달려온 것이니, 스스로 위로하건데 아직은 내가 젊다는 것이다. 소파에서 뒹굴지 않고 부지런히 움직일 거리를 만드는 것도 그렇고 소확행을 만들어가는 것 역시나 내 젊음의 보약 같은 것이리라.     

  지난주에 걸었던 영주 부석사 쪽과 단양 쪽은 확연히 달랐다. 단양 시외버스터미널에서 고드너미재까지 택시를 타고 오면서 그 많던 사과나무 한 그루를 보지 못했다. 아마도 토질과 기후 때문이겠지만 밭농사도 그리 넉넉한 것 같지 않았다. 사과를 달게 먹고 나서 입안을 깨끗이 헹구어 버린 기분이랄까. 그러나 길을 시작하며 다시 입안에서 단맛이 감도는 것을 느꼈다. 온달평강 로맨스길이라지 않은가. 길을 걷다보면 나도 모르게 설렘이 일어 다시 사랑이 움트는 길 말이다. 연인의 손을 다정하게 잡지 않고서는 배길 수 없는 그런 풍광들이 분명 어딘가에 숨어 있으리라. 길이란 무덤덤한 이를 갑작스레 로맨티스트로 만드는 마법을 가졌다는 것을 그동안 얼마나 많이 보아왔던가.    

  봄 숲길이 사람을 들뜨게 한다면 가을 숲길은 사람을 품어준다. 배낭 하나 메고 바스락거리는 가랑잎을 밟고 걸어가면서 누가 자신의 인생을 떠올리지 않겠는가. 지난 일을 되돌아보고 지금을 떠올려보며 내일을 그려보는 것이다. 길은 물리적 공간이지만 혼자 있는 길에서의 시간은 영혼의 터가 되는 것이다. 홀연히 나타난 노랗게 물든 삼나무 숲을 지나가다 나도 덩달아 노랗게 물들고, 들국화 몇 송이를 몸이 먼저 반겨서 달려가는 것이니 이것이 꾸밈없는 즐거움이자 소소한 행복이다. 오솔길이 아닌 널찍한 임도라도 상관없는 일이다. 굽이굽이 산자락을 돌아가면 그만이고 가끔씩 짙푸른 하늘을 올려다보면 되는 일이다. 길은 있으되 그 길은 목적지까지 가는 길이 아니라 내 마음의 길로 바뀌는 것이다.   

  방터 쉼터에서 목을 축일 겸해서 사과 한 알을 꺼냈다. 지난번 부석사에서 사온 사과였다. 반으로 쪼개 아내와 사이좋게 나누어 먹으려다 낭패를 봤다. 얼마나 단단한지 도저히 내 악력으로는 쪼갤 수가 없었다. 벤치 모서리에다 쳐도 짓물러지기만 할 뿐 쪼개지지 않았다. 결국은 아내와 한 입씩 베어 먹었다.    

 

  당신 한 입 

  나 한 입 

  다른 자리가 아니라 

  당신 이빨자국 있는 그 자리부터 

  나 한 입

  당신 한 입    


  단단한 과육에서 단물이 뚝뚝 떨어졌다. 문득 젊은 날에 읽었던 ‘서울에 사는 평강공주’라는 시가 떠올랐다.     

  동짓달에도 치자 꽃이 피는 신방에서 신혼 일기를 쓴다 없는 것이 많아 더욱 따뜻한 아랫목은 평강 공주의 꽃밭 색색의 꽃씨를 모으던 흰 봉투 한 무더기 산동네의 맵찬 바람에 떨며 흩날리지만 봉할 수 없는 내용들이 밤이면 비에 젖어 울지만 이제 나는 산동네의 인정에 곱게 물든 한 그루 대추나무 밤마다 서로의 허물을 해진 사랑을 꿰맨다
 …… 가끔…… 전기가…… 나가도…… 좋았다…… 우리는……


  새벽녘 우리 낮은 창문가엔 달빛이 언 채로 걸려 있거나 별 두서넛이 다투어 빛나고 있었다 전등의 촉수를 더 낮추어도 좋았을 우리의 사랑방에서 꽃씨 봉지랑 청색 도포랑 한 땀 한 땀 땀 흘려 깁고 있지만 우리 사랑 살아서 앞마당 대추나무에 뜨겁게 열리지만 장안의 앉은뱅이저울은 꿈쩍도 않는다 오직 혼수며 가문이며 비단 금침만 뒤우뚱거릴 뿐 공주의 애틋한 사랑은 서울의 산 일번지에 떠도는 옛날이야기 그대 사랑할 온달이 없으므로 더더욱

                                                                                    - 박라연, 「서울에 사는 평강 공주」    

  고백하자면 나는 평강공주 같은 여자를 만나고 싶었다. 나의 허물을 꿰매주고 나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여자. 나를 위해 색색의 꽃씨 봉투를 만들고 산동네의 맵찬 바람도 막아주는 그런 여자를 만나 아름다운 사랑을 하고 싶었다. 그 사랑이 결실을 맺기를, 그리고 나는 성공한 온달이 되어 어깨에 힘을 주고 세상을 활보하고 싶었다. 나는 가진 게 아무 것도 없으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서 나를 사랑해줄 사람을 찾고 있었다. 젊은 날 나는 사랑을 찾아 헤맨 것이 아니라 설화 속에 있는 평강공주를 찾아 헤맨 것이 분명하다. 그러니 첫사랑도 떠나가고 내 곁에 여자들이 더는 머물지 못한 것이 아니겠는가.       

  온달산성에 서 있는 아내를 앵글에 담는 순간 그녀가 나의 평강공주라는 걸 진심으로 깨달았다. 달빛이 언 채로 걸려있는 창가에서 나의 귀가를 손꼽아 기다리던 시간들. 촉수가 낮은 단칸방에서 알록달록 꽃씨 같은 아이들 셋을 키우던 시절. 때로는 종이봉투를 붙이고 때로는 대자리를 엮으며 바보 온달을 위해 홀로 감추고 살았던 고단함들. 그러고도 모자라 무덤까지 가지고 가야할 커다란 슬픔을 얻었으니. 바보 온달이 아니었다면 아내의 삶은 더 행복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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