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이 밝았다. 누군가에게는 오랜 시간 억눌려 왔던 봉인이 풀려, 혈기가 폭발하는 그 날이... 술집에서 말이다.
스무살이 되던 해, 나 역시 왠지 모를 흥분에 휩싸여 친구들과 함께 그 광기의 향연 속으로 당!당!하게 민증을 들이밀며 술집에 입성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그 기억은.. 기대했던 것보다 끝이 좋진 않았다.
당시 딱 우리 또래, 20 초반으로 보이던 술집 알바생은 쉴새없이 밀려드는 갓 스물들의 인해전술을 온몸으로 막아내느라 분주했다. 그러던 와중, 한 테이블에서 술잔인가 병인가 깨지는 소리가 났고, 그 불쌍한 알바생은 급하게 달려가 깨진 조각을 치웠다. 그런데 치우던 중 알바생이 인상을 찌푸렸는지, 그것을 갖고 해당 테이블의 한 주객이 알바생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뭐야, 당신 지금 인상 썼어?"
"손님이 이거 하나 깼다고 지금 인상쓰는거야?"
주객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언어 하나 하나가 폭력이 되어 알바생의 전신을 찌르는... 감정노동의 민낯을 경험하고는, 한 동안 아르바이트에 대한 두려움에 휩싸여 지냈더랬다.
사실 이런 상황은 그렇게 희귀한 것은 아니다. 알바생에게는 물론이고, 일반 노동자에게도 근무 중 다리를 꼬았다거나, 목소리가 낮거나, 표정이 별로 좋지 않으면 뭇매를 맞기 마련이다. 이처럼, 보통 우리는 다른 이에게 항상 웃고 자기 감정을 억제하는 '감정노동자'가 된다.
미국의 감정사회학자인 앨리 러셀 혹실드(Alie Russell Hochschild)는 1983년에 '감정노동'이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제시했다. 혹실드에 따르면, 감정노동은 "개인이 자신의 기분을 다스려 조직에서 요구하는 적합한 표정이나 신체 표현을 외부로 드러내는 것"을 뜻한다. 혹실드는 자신의 피로감과 짜증을 감추고 인간적인 미소를 짓는 것 자체를 하나의 '노동'으로 봤다.
노동자들에게 웃는 얼굴과 상냥한 태도를 강요하면 할 수록, 인간으로서의 우리는 몰락한다. 자본에 휘둘려 자신의 감정을 참고 살아야 하는 것은 사회인 누구라도 비슷하다. 또한 높은 강도의 노동에 시달리면서도 생계 때문에 직장을 그만둘 수 없는 현실도 비슷하다.
우리는 인간의 감정을 상품화시켜 노동자 개개인의 정체성을 무너뜨리는, '자본의 권력'을 서로에게 행사하고 있다. 갑질도 갑질이지만, '다양한 감정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늘 웃어야 하는 상품'으로 다루는 것이다.
감정 억압에 노동 착취까지 당하는 것은 결국 우리 모두의 문제다. '모두의 문제'라는 것은 사회 구조에 원인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구조적 문제의 해결을 위해 다같이 연대해도 시간이 모자란데, 이들의 표정과 말투와 행동에 딴지를 거는 것은 자기 얼굴에 침 뱉기다.
자, 오늘부터는 식당에서 일하시는 분들, 직장 동료들, 버스 기사님 등등 우리가 만나는 노동자들에게 먼저 이렇게 얘기해보자.
안녕하세요! 항상 수고 많으십니다. 감사합니다!
오늘은 이에 덧붙여서,
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