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이천 쌀문화축제
2011년 9월
하륵과 하늬 태어난지 8개월째
가족의 첫외출이다
병원외에는 한번도 가족이 함께하는 외출은 없었다
두아이를 방안에서만 키우는 일도 무척 힘들고 고단했다
첫외출의 가장 중요한 준비물은 우유젓병 기저귀와 유모차등과
더불어 카메라였다
땟거리를 장만하기위한 목적을 겸해서 나가는 외출인셈이다.
스마트폰영화제 덕분에 그 방법으로도 땟거리를 구할 수 있겠다 자신감이 한 점 생긴 덕이다
이번에는 이천 쌀문화축제, 3일동안의 축제기간을 담아 편집해서 내는" UCC" 다
상금은 대상 3백만원
축제는 3일을 하는 것이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날은 하루뿐이다
그것도 8개월 된 아이들이 즐겁게 버틸수 있는 시간뿐이다
겨우 기어다니는 애들 데리고 두 번씩이나 오고가고 두시간이나 걸리는 이천까지 나올 돈도사실 없었다
아이 한명씩을 각기 아기띠로 얼굴을 마주보며 안고서
카메라로 서로를 찍을 수 있도록 움직일수 있는 몸의 범위를 체크하고 연습하는 것이
먼저였다
점점 다가오는 겨울의 추위를 어떻게든 헤쳐나가야한다.
겨울의 멧돼지들은 먹을 게 없어 칡뿌리를 캐먹고 산다.
지금 우리에게 돈은 겨울 멧돼지가 발이 아니라 코로
언 땅을 파내어 먹는 칡같이 아쉽고 간절하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이건 우리도 코로 언땅을 파는 행위다 .
2004년부터 11년동안 아내와 나는 떠돌이처럼
방방곡곡을 다녔다
5톤 트럭을 타고 다니며 그 속에서 자고 먹었다
연기도 변변찮은 할머니 할아버지 아이들을 찾아 다니며
이 마을 저 마을에서 영화를 찍어 5톤 트럭의 옆면에 스크린을 붙이고 야외트럭극장을 만들었다
사람들은 그것을 하찮은 영화라고 수군 거렸다
아무리 봐도 나의 눈에는 다시 없는 생활미학을 가진 예술이었고
인위적이고 작의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살아있는 민초들의 새로운 경지의 예술 로만 보였다
나는 점점 라만다의 풍차를 괴물로 보고 공격을 해대는 미친 돈키호테가 되어가고
아내는 상대적으로 현실감각을 유지한 산초판사를 닮았다
아이들이 태어나고 난뒤로는 풍차의 날개에 낚아채여 들판에 내동댕이쳐진
영락없는 돈키호테 꼴이었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버틸 재간이 없다
삶속에서는 언제나 밥과 사랑이
원한과 치욕보다 먼저다 -김훈
이제 언 땅속에 칡이라도 캐야할 처지였다
다행히 하늘이 도왔다
우리가 만든 UCC는 이천 쌀문화축제의 ucc 대상으로
원하던 상금300만원을 받았다(그 다음해부터 상금은 줄었다)
덧보태 아내의 축제 후기글은 최우수상을 받아 이천 쌀 20kg 두포대를 더 보탰다
이번 겨울은 따뜻하게 넘길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번에도 평생 작품을 하면서 치열한 삶을 살았던 돈키호테가 목사와 이발사에 이끌려 집으로 돌아와야하는 그런 숨은 좌절감과 함께 오는 기쁨이었다
사실 영화한다는 사람이 ucc로 상을 받는다는 걸 동네방네 떠들고 다니기에는
좀 그런법이다 .
수십년동안 투기자본이 어떻고 민초의 영화가 어떻고 하며
돈키호테같은 행동과 막말이 이곳 저곳에서 버젖히 기억하고 있는데 ..
반쯤은 슬픈 상도 있는 법이다
우리 가족의 온전한 기쁨은 언제 올것인가 ?
나도 해내었다! 라고 소리칠 만한 성취... 그런 환호 언제 해 보고 살 수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