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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미숙 Jun 20. 2019

자신감에 대하여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과 함께

"새는 투쟁하여 알에서 나온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
신성과 마성, 남성과 여성, 인성과 수성, 선과 악을 다 갖추고 있는 신비로운 신 아브락삭스. 압락사스란 원래 그리스, 오리엔트의 영지주의에서 신의 비밀의 이름을 뜻했다.


어릴 때 홍역처럼 읽어야 했던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은 그냥 그 자체로 내 마음속에 저장되어 있는 책이다. 무언가 한계를 경험할 때 앞이 좀 안 보일 때 나는 데미안의 이 글을 곱씹고 또 곱씹었었다. 결국 그냥 되는 건 없고 그 깨뜨리는 고통을 감내하지 않고는 성장할 수 없고 그 성장이야 말로 살아남음의 가장 큰 증좌이고 또 지속되게 하는 기준이라 생각했다. 


신기하게도 나이가 어릴 때 더 깊고 더 명료하고 더 간결하며 나 자신 그대로의 오롯함으로 철학적 사고를 통한 살짝 회의주의자였던 나, 그 후로도 니체니 카뮈니 밀란 쿤데라니, 그리고 고흐니 베토벤이니 이상이니 전혜린이니 머 그런 분들의 불같은 영혼들을 흠모하며 자진해서 아웃사이더를 도 맡았던 거 같다.


그건, 외부의 어떤 흔들림이나 비난이나 참견들에 별로 흔들리지 않는 벽과 같은 철벽의 모습으로 그 시절 인기 캐릭터인 비자발 도도녀로 안갯속 같은 젊은 날의 청춘을 보내었던 기억이 있다.



내 속에 있는 듯 늘 그래 왔던 감성들을 지금 돌이켜 보면 참 때 묻지 않은 순수 자체로서 청명했던 기억이 어렴풋하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같은 듯 다르고 다른 듯 같다.


긴 직장생활과 사회생활 그리고 살아남아야 하는 과정에서 깎이고 섞이고 내려놓음으로 어느 정도의 유연함은 장착한 처세로 사실 고난에 그리 일희일비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첨예헸던 그 시절의 감성이 더 나 답고 더 청아한 게 아니었나 생각하게 된다.


있는 그대로의 내 입장에서 바라본 나의 모습들은 그러했는데 실상 타인이 보는 나는 무서움 없이 무모한 자신감 가득이 부담스러운 유일 캐릭터였던 거 같다.


백도 돈도 권력도 없는 주제에 머가 그리 당당하고 자신만만한 건지 두려우면서도 기꺼워했던 사람들이 많았던 기억이다. 어떤 때는 나의 거름 걸이가 일자라서 오리궁둥이 걸음인 게 보기 싫다며 비난했던 여고시절 아니 여중시절인가 어찌 되었든 학창 시절의 친구의 말이 아직도 내 기억 속에 선명히 남을 정도로 사람들은 나를 낯설어했고 나는 나대로 사람들이 낯설었던 거 같다. 한편으론 그러했지만 난 그걸 그리 도 개의하지 않았던 거 같았다. 물론 친한 친구들이나 선후배가 있었지만 적정 거리 이상을 마음 내왕한 적은 없었고 결국 누구에게도 내 속 내를 보여 줄 필요 없는 완벽한 철벽녀가 되었던 기억이. 


신비주의 콘셉트가 아니었지만 비밀의 사람이 되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 어디서든 볼 수 있던 나의 존재는 여자 홍길동이라는 별명을 연속 달고 다닐 정도였으니, 


그런 아싸의 기억과 자신감의 상관관계는? 아싸 라는 게 타인에게서 정해지면 스트레스에 상처가 될 수도 있지만 자신이 정하게 되면 고독이고 매력이 되는 부분도 없지 않아 있었고 난 굳이 애쓰지 않아도 늘 당당하고 자신만만하고 잘난 척 백퍼 하는 사람으로 보였던 거 같다. 


그런 면도 있고 아주 여린 면도 있지만 사람 들어 굳이 이면을 보려 하지도 않고 보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어찌 되었든 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언제나 흔들림 없는 자신감의 화신이 되어 있었다.




그러다 문득 돌아본 나 자신의 자신감은? 시간이 갈수록 작아지고 있는 듯하다. 그렇다면 그 남들이 다 인정하는 자신감 캐릭터는 과연 실인가? 허인 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나의 근거 없는 자신감의 근거는,


어린 시절 어른들의 근거 없고 시도 때도 없는 과한 인정 칭찬에서 기인함을 알게 된다. 타고난 기질적인 부분 30%라면 자라면서 환경에서 학습되는 자신감에 대한 경험과 확신이 70% 정 된 거 같다.


그렇게 타고남과 학습의 사이에서 성장하면서 자신감은 덕목이기보다 성향으로 자리 잡아 보는 사람 누구든 어쩌면 그리 자신감이 넘치세요?라는 말을 듣게 한다.


자신감이라는 단어를 네이버에 검색하면 여러 카테고리가 나오는 제일 우선해서 있는 것이 태권도 용어이다.


자신감 [Self-confidence]

자신감이란 어떠한 것을 할 수 있다거나 경기에서 이길 수 있다 혹은 경기를 잘할 수 있다는 등에 대한 자신의 느낌이다. 자신감의 정도는 현재의 경기 수준에 대한 가장 좋은 예측 수단으로 승패 가능 여부에 대하여 자기 자신이 가지는 느낌이나 심상을 말하는 것이다. 또한 자신감은 어떤 결과(우승 트로피, 챔피언, 자기만족)를 이루는 데에 요구되는 행위(운동 수행)를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는 확신이라고 말할 수 있다. 자신감은 개인들이 지니고 있는 기능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개개인들이 기능을 가지고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판단을 뜻한다(Felta, 1988).


일반적으로 태권도를 수련하면 수련의 효과로서 첫째로 자신감을 얻게 된다고 알려져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자신감 [Self-confidence] (태권도 용어 정보 사전, 2011. 3. 1., 이경명)


마지막 문장이 걸작이다. ㅎ 어떤 면에선 원리를 잘 이야기해 놓은 거 같기도 하고 


결국 자신감은 타고나는 거보다 훈련하고 수련한 결과물이 더 맞다. 그러니 내가 타고난 기질적 자신감이 진짜 자신감이 되기 위해선 아브락사스의 알을 깨고 나오는 정도의 수련이 담보되어야 하는 건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라는 걸 알 수 있다.


결국 내가 나이 들어 늘 고민하고 있던 내 이미지의 괴리는 그렇게 보이는 이미지의 자신감 수치에 연관이 있음을 알 거 같다. 그런 모습이 보기에 좋고 긍정적인 부분이 더 많았던 건 사실이지만 한편으로는 부담이 되고 경계가 되게 해서 장기적으론 내게 부정적 영향을 미쳤던 게 아니었을까?


결국 끊임없이 주어졌던 어른들의 꽃 칭찬과 인정은 내 존재 자체에 대한 찬사였으니 이제 남은 인생 동안 나의 자신감은 혼자가 아니라 겸손과 수용이란 것과 콜라보하는 4차 산업혁명에 잘 맞추는 현명한 무엇이 되었으면 좋겠다. 


당당하되 깊이 있고 뿌리 깊되 편안한 세상 어디에도 없는 나 만의 캐릭터로 살아 남기 위해 조만간 데미안을 다시 한번 만나 보아야겠다.



자신감을 떠올리니 자기 효능감도 떠올라 링크.

https://brunch.co.kr/@michelle1270/11


#자신감 #잘난 척은 아니에요 #자기 효능감 #데미안 아브락사스 #헤르만 헤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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