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력의 시작,자존감
I love myself.
그 날은 방학 중 소집일이었다. 방학전 등교일처럼 학교에 가서 들어 선 교실은 평소와 달랐다. 남자아이들 무리가 칠판 앞에서 웅성이고 있었다 삼삼오오 무리진 여학생들은 일제히 나한테 시선이 모였고 일순 조용히 공간을 가로질러 칠판앞에 선 내 눈엔 믿을 수 없는 글들이 빼곡히 쓰여있었다.
"네가 뭐 그리 잘났어" "왜 너만 이쁨받아" "아부하지마"등등 지금은 잘 기억나지않지만 내용의 요지는 내가 너무 잘난체를 마니하고 담임선생님 한테 아부한다는 또는 왜 나만 좋아하는 이유가 머냐 네가 어찌한거냐는 것의 여러 내용들이 여기저기 남겨져 있었다 즉 혼자 쓴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였다
초등학교 6학년때의 일이었다 그때 내가 그 장면을 마주했을때 처음 무슨말을 했는지 기억나진 않지만 난 그닥 크게 당황하거나 하기보다 "누가 이랬냐" "지금 나한테 말로해라" "내가 뭔 잘난척을 했단거냐" 등등을 이야기했던거 같고 여재 아이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나를 빙 둘러싸고 "네가 뭐가 그리 잘났노(부산사투리ㅎ)"등의 이야기를 쏟아내었다
원래 어린시절 특히 국민학교때는 남자아이들은 늘 여자아이들보다 발육이 살짝 늦다보니 놀라운 장면을 목격하고는 "와 가시나들 억수로 무섭네"로 안개만 피우고 구석에 몰려서 우리 여자아이들을 예의주시만 하고 있었다
이지매 또는 왕따였다. 다행히 지금의 학폭처럼 단체 폭력은 없었다 더불어 평소에 내가 왕따를 당하는 아이도 아니었고 실상 우린 여자아이들끼리 친하게 어울려 다니곤 했었고 난 6학년때도 학급임원이었기 때문에 사실 그런일이 참 생각지못한 일이긴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전혀 울지않았고 그 아이들과 거의 맞서서 왜 이러는지 이유를 대라고 맞짱을 떴고 그 단체행동은 유야무야 되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한 명의 친구가 선동을 했었고 그 연유는 연세있는 담임선생님이 공개적으로 나를 편애하는 사항들이 아이들입장에선 매우 싫었는데 선생님께 이야기하지 못하니 그 원흉인 나를 공격하자는 거였다고!!!
지금 생각해보면 담임선생님의 편애가 심했다는 생각이 들긴하다 예를들어 여름방학이 끝나고 개학을 했는데 자습시간에 아이들이 다 있는 교실에서 나를 불러내서 여행지에서 사왔다며 목걸이를 내 목에 걸어주었던거같다 그리곤 선생님의 어깨를 주무르게 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이들은 그 모습이 무척 충격적이었던거 같다 결국 선생님이 그 분위기를 조장한거나 마찬가지라 생각된다
어찌되었든 결국 그 아이들과는 한 두달 뒤엔 중학교로 가게되면서 큰 이슈없이 흐지부지 되었지만 그 현장에선 당당히 맞섰던 난 아무도 모르게 큰 마음의 상처를 얻었던거 같다
그렇게 나의 어린시절은 마무리되었고 그 뒤부터 나는 누구도 믿지 못하는 늘 누군가와 넘지못하게하는 선을 그어두고 아무도 들여놓지 않으려했다 본능과 무의식의 방어기제로!
그 이후의 중고등학교를 넘어 대학시절과 기타등등의 시간에서 난 아무도 믿지않고 늘 최소한의 나의 공간을 두는 머랄까 자진해서 아싸가 되어 있었고 그 또한 나의 기질과 일치하는 부분이 있어 불편함이 없다 생각했다
하지만 반백년의 시간이 지나고 코칭을 하고 명리를 하며 자기성찰의 시기를 지나고 나니 그 때 충분히 아파하고 슬퍼하고 그 관계를 어떻게든 직면했어야 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나마 타고난 기질과 자존감으로 그런데로 잘 지나쳐왔지만 다시 바라본 나의 그 시절의 경험은 늘 누군가와의 관계에서 넘을 수 없는 큰 벽이 되어있었고 높은 줄 알았던 실제 수치로도 그리 낮지않은 나의 자존감은 시간이 지날수록 불안한 흔들림으로 나를 힘들게 한다
이제 쉰의 나이를 지나 갱년기를 맞으며 알게 된 것이 그 시절 그 기억들을 제대로 대면하고 해소했어야 함이다 더불어 그 순간에서부터 나의 자존감은 말랑말랑해지기보다 더욱 단단히 나를 받혀주는 것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혼자서는 아무리 발바둥쳐도 넘을 수 없는 그 것들이 어린시절 친척어르신들이나 주변어르신들의 맹목적인 인정과 칭찬에서 비롯된 자존감이었다는 걸 깨닫게 되면서 결국 난 앞으로 나의 그 자존감으로 성장된 관계력이야말로 고통스런 기억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비법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