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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 Jan 03. 2020

아날로그와의 재회: 귀하지만 쓸모없는 것에 대하여

카메라 편력기 혹은 골동품 수집, 아니면 예쁜 쓰레기.

새해가 되었으니 묵은 것을 벗고 청산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하다가 문득 방 한 켠에서 (썩고)있는 필름 생각이 났다.


아, 올해는 모두 다년간의 기간동안 다 삭아버렸대도, 현상해도 모두 하얗게 나오더라도 한 번 맡겨나보자. 필름을 꺼내보다보니, 갖고 있던 카메라에 여전히 몇년간 물려있을 필름도 있겠거니 싶어 구석에 고이 모셔(혹은 쳐박아)둔 카메라를 꺼내보았다.


근 15년 정도가 되었다. 미쳐서 카메라를 샀다가 팔았다가, 새벽에 해외 경매 사이트를 들락거리고, 클래식 카메라의 역사를 밤새 인터넷을 뒤지며 찾던 그 때의 그 대학생은, 지금은 쓰레기더미가 된 못 쓰는 카메라들만 잔뜩 안고 있었다.


이미 다 찍었지만 현상 맡기지 않았던 이제는 더 이상 생산되지도 않는 127규격의 필름이 사용하지도 않은 채로 한 롤 한켠에 남겨져 있었고, 중형 필름이 물려진 카메라 한 대도 사진 한 방 찍히지 않은 채로 밖으로 나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도 벌써 몇 년 동안을. ‘1’이라는 숫자가 보이는 채로, 처량하게.


망가졌는지 정말 작동되는지 몰라서 필름을 넣어두었던 카메라에서 되감아 꺼낸 필름이 생각보다도 더 좋은 필름일 땐, 약간의 당혹스러움과 내 그 때의 어리석은 희망에 절망스러운 탄성이 절로 나왔다.


엄마의 카메라

카메라더미 속에서 어린 시절 나를 찍어주던 엄마의 카메라도 여전히 있었다. 내 어린 시절의 장난감, 저 카메라는 더 이상 작동되지 않겠지. 그래서 지금은 쓸 수 있는 카메라는 도대체 뭘까. 내 지난 시절에 그리 집착하던 카메라들이 지금은 내 옆에 하나도 남지 않았지만, 과연 이걸 내가 나중에 다 처분할 수 있을까. 그러지 못할 나중에도 결국 이 물건들을 고이 품에 품고 있을 것을 생각하니 조금은 씁쓸해졌다.



미래라고 여겼던 숫자의 새해가 오고, 이제는 필름카메라를 쓰는 사람은 극히 적어졌지만 그래도 이 아날로그 취미는 내게도 변하지도 않고 여전히 지키고 싶은 고집스러운 것이기도 하다. 이전에 열의를 가지고 쏟은 정성과 시간만큼 현재에도 여전히 소중한 것으로 남아있고, 그 과거와 현재가 의미없이 손가락 사이의 모래처럼 흩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래도 이 아쉬움과 동시에, 참 쓸모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건 지금의 이 생각이 얼마나 오래 갈지 의심스러워서인 건지, 이제는 그런 의지가 없기 때문일지. 새해지만, 참 희망차지 못한 이야기다.



그래도 괜찮다.

필름을 맡기기로 했으니까.

그럼 또 다시 쓸모없던 무언가를 꺼내고 싶어질지도 모른다. 그럼 그게 다시 내게 귀해질 수도 있겠지.

그리고 그런 기대는 안 하기로 한다. 그게 좋다.


내 게으름만큼 쌓인 필름이 이전의 기억을 오늘로 소환해줄지, 아니면 하얗게 사라지게 해줄지가 이제는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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