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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 Nov 01. 2020

2016 아비뇽 페스티벌_70주년

아비뇽, 그 뜨겁던 여름.

스위스의 알싸한 바람을 뒤로 하고 기차를 여러 번 갈아타면서 도착한 아비뇽은 꽤 더웠다. 도착하자마자 훅 끼쳐오는 더운 공기가, 남부에 왔다는 사실을 반증하고 있었다. 더운 공기에 괜스레 지치는 느낌이었다.



한 달의 기간동안 진행되었던 페스티벌의 끝자락이라 그런 것인지, 길에는 그리 사람이 많지 않았다. 길에 있는 벽마다 빼곡히 붙은 포스터에서 떨어져나온 종이의 한 쪽면이 이리저리 바람에 펄럭거렸다.


아비뇽은 IN과 OFF의 두 가지 개념으로 나누어 수많은 공연을 한 달의 기간동안 아비뇽의 전역에서 개최한다. IN은 공식 초청작의 개념이라면, OFF는 자유로운 형태로 작품을 각 공연장에서 올린다. 당연하게도 OFF 참가작들이 훨씬 가지 수가 많으며, 각 공연장에서도 매일 시간대를 쪼개어 오전부터 밤까지 여러 편의 공연을 진행한다. 생각보다도 훨씬 일찍인 아침 9시부터도 공연을 하는 곳들도 있고, 밤 늦은 시간까지도 공연하는 곳들이 즐비하다.


친언니와 아비뇽에서부터 남부프랑스를 여행하기로 해서 조금은 만남의 장소로는 어울릴 법하지 않은 아비뇽에서 만나기로 했다. 나에 비해서는 여행을 잘 다니지 않는 언니는 내가 유럽에 있으니 오랜만에 먼 여행을 해보자고 생각했던 걸까, 유럽 여행이라고는 산티아고 순례길이 전부였던 언니는 인천에서 파리, 파리에서 아비뇽으로 TGV를 타고 오고 있었고, 나는 언니보다 먼저 묵을 곳에 도착해 짐을 풀었다. 아비뇽 성벽 안 쪽과는 약간의 거리가 있는 숙소였지만, 두 어깨에 무거운 배낭만 아니라면 걷더라도 그리 멀지 않은 거리였다. 숙소에 도착할 때까지 내내 짓눌렸던 어깨와 발걸음은 가볍게 하고, 바깥으로 나가 축제의 시가지로 나섰다. 언니도 금방 아비뇽에 도착했고, 꽤 오랜만에 보는 우리는 여느 때나 별로 다르지 않았지만 괜히 반가웠더랬다.


오자마자 언니는 파리에서 만난 카페의 바리스타 이야기를 했다. 힙스터 스타일에 문신이 많은, 한쪽 손이 없는 ‘디게 멋있는’ 아이의. 본인도 손이 없는 걸 발견하고서는 놀랐지만 그게 별로 놀랍지 않았단다. 한손으로 커피를 만드는 게 하나도 부자연스럽지 않았기 때문이었다는 거다. “일하는 데에 하나도 문제가 없더라구.” 그럼에도 보통 사람을 상대하는 일에 한쪽 팔이 없는 사람을 잘 쓰진 않는다. 나도 전에 런던의 한 가게에서 신발을 구경하러 가서 신발을 신어보려는데, 내게 박스를 가져다준 흑인 친구도 한쪽 손이 없었던 기억이 있었다. 나도 순간 놀랐지만 그게 특별히 거부감을 주지 않았고, 일을 하는 데에도 특별히 불편해보이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 친구도 멋있었지. 어떻게 보면 그 ‘다름’에 대해서 거부감이라는 것을 굳이 가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놀라울 만큼 아무렇지 않아진다. 나도 몇 초 되지도 않는 순간에 금방 상대가 나와 다르다는 것 자체가 그저 사실로 인식될 수 있다는 것을 그 순간 느꼈으니까.
차별이라는 것 또한 스스로 만드는 ‘틀’일 뿐이라는 생각을 했다. 우린 달라도 서로 싫어하지 않아요, 라는 말 자체도 그것을 인식함으로써 신경쓰지 않기 위해 애쓰고 있다는 것에 대한 반증이 될 때도 있으니까.


언니는 유럽에서는 당연할 7시에 문을 닫는 옷가게에 새삼 충격을 받아 했지만, 7시에 퇴근하는 여느 사람과 다를 바 없는 옷가게의 점원도 그 시간에는 퇴근을 해야지라며 애써 납득하는 모습이었다. 새로운 곳의 새로운 문화, 다르게 일하는 사람들, 그리고 사람들을 받아들이는 방식 또한 다를 이 프랑스에서 익숙하듯 생경하듯, 우리는 그들을 이해하고 있는 것 같았다.



거리에서는 사람들이 공연을 홍보하고 있었다. 길거리에서 오케스트라와 드라마를 접목한 무언극같은 공연을 홍보하고 있는 것을 보았고, 악기를 가지고 나와 버스킹을 하고 있었다. 결국 아비뇽에서 처음으로 보게 된 공연은 그 공연이 되었다. 현악기는 사람의 귀를 잡아끄는 게 있는데, 그 날이 특히 그랬다. 언니도 나도 길에서 울리던 바이올린 소리에 더욱 관심이 갔다. 악기로 구성된 코미디 공연을 다 보고 나니 금세 밤이다. 공연을 하는 사람 중에는 한국계 연주자도 있었다. 촌스럽게도 그게 반갑기도 했다.



어둑해진 아비뇽 길거리를 더 걷다보니, 사람들이 모여 밤을 보내고 있는 음식점과 바들이 모여있는 거리를 만났다. 우리도 그 사이에 자리를 잡고 앉아 식사와 와인 한잔을 곁들였다. 한낮에 36도씩 올라 뜨겁던 아비뇽도, 저녁이 되니 선선해져 있었다. 노천에 수없이 놓인 테이블에 식사가 채워지고, 우리는 오랜만에 대화를 하면서 투닥거리기도, 웃기도 했다. 그냥 우리가 있는 이 곳이 좋았다. 뜨겁기도, 선선하기도, 치열하기도, 여유롭기도 한 이 아비뇽이.



그 날 저녁, 새삼 이 곳에 잘 왔다고 생각했다.


이틀을 더 아비뇽에 머무르면서 아비뇽의 굽이굽이 좁은 길들과 상점이 익숙해지기 시작할 때쯤, OFF작품들이 빼곡히 적힌 프로그램에서 무슨 공연을 볼지도 골라보고, IN작품 중에 현대 무용 공연도 하나 보고 나니, 아비뇽의 일정도 그 사이 끝나가고 있었다. IN공연에서 보았던 일그러져있는 정상이 아닌 모습을 본 딴 무용수의 몸짓을 카메라와 무대를 통해 보고 나니, 그 일상을 제삼자의 시선으로 보았을 때의 불편한 마음과 더불어 ‘누구도 정상은 아닐’ 이 삶이 더욱 어려워지는 느낌이었지만, 그럼에도 이 동네에서 이 시간을 누릴 수 있다면, 그것으로도 꽤나 괜찮은 것이겠지라고 위안해보게 되었다.



해바라기가 피는 아비뇽에서,

이 뜨거운 여름을 지낼 수 있음에.

그리고 그 시간을 함께 할 사람이 있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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