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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 Jan 14. 2017

COLDPLAY in London

머리 속엔 꿈이, 하늘엔 별로 수놓인 그 밤.

6월엔 콜드플레이의 콘서트가 있었다. 그것도 유럽투어, 영국에서도 여러 도시에서 투어를 도는데 내 어찌 그 공연을 안 갈 수가 있나, 가야지. 심지어 앨범 발매 이후 공연이라면 더욱 더. 이렇게 말하자니 내가 콜드플레이의 굉장한 팬이라도 되는 것 같지만, 그런 것보다도 좋은 음악, 좋은 공연이라는 게 검증된 밴드라면 기꺼이 가서 보겠다는 의미가 더 크다. 음악도, 공연도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것이라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나처럼 잘 모르면서도 덮어놓고 무작정 가보겠다고 하는 사람들에게도 누릴 수 있는 기회가 동일하게 제공되니 말이다.


콜드플레이 새 앨범이 발매된 이후 진행된 유럽 투어 중 마지막 일정인 런던 콘서트는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렸다. 콜드플레이의 단독 공연 이후에는 글라스톤베리페스티벌 헤드라이너의 일정이 결정되어 있었다. 콘서트 티켓을 산 이후 글라스톤베리행을 결정했던 나는 이 공연을 한 번 더 보느냐 마느냐를 잠시 고민했었지만 콘서트와 페스티벌은 당연히 다른 무대를 기대하므로, 그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같은 셋 리스트여도 분명 다르리라는 것은 공연 자체가 그 때 당시에 진행되는 단 하나의 경험치이기 때문이다. 현장성이라는 것은 그 날, 그 때 당시의 공기, 장소, 그리고 모인 관객이 다르고 공연을 하는 사람도 다를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주어지는 매일의 새로운 시나리오와도 같다고도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2016년 6월 19일,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그 새로운 이야기가 쓰여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난 런던에서 열리는 콘서트의 마지막 날에 공연장을 찾았다. 이름만 들어도...라며 2014년 로열 알버트홀에서 앨범 발매 쇼케이스 겸 콘서트를 했을 때 처음으로 콜드플레이 콘서트를 봤던 그 날 이후 2년만에 다시 런던이었다. 왠지 모르게 기분이 묘한 건 왜였을까. 갑자기 그 짧은 파편들이 모여 그물을 만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 넌 또 돌아와 여기에 있네. 그리고 또 여긴 공연장. 소름끼치지 않니....?'


이전에 멋모르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취미가 일이 되었으면 좋겠어'라는 게 어찌저찌 실제 일이 되고, 일이 되어보니 더 이상 취미일 수 없게 되고, 일을 그만두니 다시 일같이 취미가 된 공연이라는 곳에 덫처럼, 그물에 걸려 파닥거리는 지느러미 대신 뭍에서 걸을 수 있는 내 다리를 구걸해야 하는 내 자신의 삶이 나중엔 물거품이 될 것 같다는 망상까지 가기엔 아직 공연은 시작도 안 했다는 게... (인어공주컴플렉스라도 있는 거니, 나.)



콘서트 티켓을 현장에서 찾고, 게이트를 찾아 티켓을 확인해 들어간 입구에서는 LED팔찌를 나누어주고 있었다. 받아들어가보니 오프닝 밴드가 공연을 이미 시작한 상태였다. 자리를 찾아 착석해 무대를 내려다보니 스탠딩존의 반 정도가 들어간 듯 해 보였다. 밴드 공연을 보게 되면 매번 좌석과 스탠딩 중에 고민하게 되는데, 편한 건 좌석이 좋지만 무대를 가까이 느끼기엔 스탠딩 만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무조건 다 스탠딩으로 봐야 하는 페스티벌이 아니면 2시간 이상이 되는 공연은 아무래도 좌석을 선호하게 된다. 그 편이 편하다. (....힘드니까)


입장 시 웸블리 스타디움 전경
티켓과 LED팔찌


로열 알버트 홀, 그리고 웸블리 스타디움 두 군데 모두 영국에서는 가장 의미가 큰 공연장인데다가 그 두 공연장에서 모두 콜드플레이 콘서트를 볼 수 있다는 건 정말 행운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로 치면 예술의 전당, 체조경기장 혹은 고척돔 정도에서 번갈아 공연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아티스트, 정도라고 할 수 있을 것 같긴 하지만 아무래도 그 의미가 좀 다르긴 하다. 아직 한국엔 로열 알버트홀만큼 장르 편향적이지 않은 모든 장르의 예술을 수용할만큼의 공연장은 존재하지 않는다.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은 일정 부분 대중성을 확보하려 노력했으나 그만큼의 공연장에서 오는 아우라를 따라가기엔 미흡한 듯 하고, 예술의 전당은 클래식 특화와 고급화에 집중되어 있다보니 대중적인 컨텐츠를 공연하기 부담스러운 곳임은 분명하다. (대중성이 조금이라도 가미된 아티스트가 음악당 콘서트홀에서 공연할 때 그 누구도 일어나 박수치는 게 불편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게 휑하고, 뒤에서 쳐다보는 시선이 뒷머리를 뚫을 수도 있거든) 물론 뮤지컬, 무용 등의 공연은 음악당이 아닌 다른 홀에서 진행되긴 하지만 각 필요에 맞는 공연장에서 각 공연이 진행되므로 한 대극장에서 여러 장르를 함께 수용하는 것과는 다른 운영방식이라는 생각이다. 그냥 이건 별 쓸모없는 잡 생각이지만, 어디든 계층의 차별적인 것이 존재하더라도, 영국에서만큼 그런 부분에 대해서 그리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건 공연을 보는 것 자체가 소비가 가능한 계층만을 위한 건 아니기 때문에 공연에 오는 사람이 정말 다양하고, 그게 그래서 장르 편향적이지 않게 공연장에서도 컨텐츠를 받아들일 수 있는 이유가 아닐까. 그래서 거기서부터 갈라서려 하지 않는다는 태도가 문화에서의 계층화를 만들지 않는 오래된 포용의 문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너도 나도, 그냥 이 예술이라는 것 앞에서 다 같은 관객일 뿐. 그냥 내가 여왕님의 박스석에 여왕님이랑 같이 앉아있는 것만 아니라면, 춤을 추더라도 큰 일은 나지 않을 테니까. (실제 로열 알버트홀 내의 Queen's box에서는 춤이 금지라고 한다. 이전 넬슨 만델라 방문 당시 넬슨 만델라 부녀가 공연 중 춤을 추기 시작해 엘리자베스 여왕이 그들이 민망하지 않게 하기 위해 몸을 앞뒤로 흔들어주었다는 전설이 있다고 한...다... 픕)


공연은 9시께가 되어서 시작되었다. 야외와 다름없는 경기장에서 유럽의 여름에 하는 공연이니, 어둑어둑한 시간에 시작하려면 그 시간이 적절할 수 밖에 없어보였다. 오프닝 밴드가 공연을 진행하고 콜드플레이의 본격적인 공연이 시작되기도 전 내 옆에 앉은 남여는 계속 술을 마시더니만 취기가 많이 오른 모양이다. 이미 얼굴이 붉어지고 목소리와 웃음소리가 점점 커진다.


드디어 시작!


공연을 시작하기 전 조용해진 무대에서는 오페라의 아리아가 흘러나왔다. 음악이 끝난 뒤, 유럽 투어의 마지막 도시였던 런던까지 오기까지 거쳐왔던 각 도시에서의 팬들의 영상으로 오프닝을 시작했고, 나레이션을 끝으로 콜드플레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A Head Full of Dreams'의 연주와 폭죽으로 콜드플레이의 콘서트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열광하는 관객의 모습을 보며 떠오른 생각은 역시, 집이 최고지. 라는 생각. 전 세계에서 환영받더라도, 나에게 익숙한 흙내음과 내 자리, 날 반겨주는 사람이 있는 곳이 가장 좋기 마련인 건 이들이나 누구나 다를 게 없는 모양이다. 그 마지막 공연이, 런던이니 말이다.


공연이 시작됨과 동시에 입장 시에 받은 팔찌에서 제 각각의 색을 가진 빛이 뿜어져나왔다. 관객들은 팔찌를 찬 팔을 위로 들어 흔들며 환호했다. 새 앨범에 수록된 곡을 차례로 부르며 분위기가 고조되어 갔다. 'Yellow'를 부를 때는 팔찌의 색이 모두 노란색 불빛이 들어와 경기장 내부를 모두 노란색으로 물들였다. 앨범의 무지개색처럼 형형색색의 불빛이 아레나 전체를 무지개로 물들이고 있었다.

The Scientist


'Magic'을 부를 때는 이전 앨범 쇼케이스에서 들었을 때와도 정말 다른 느낌이었다. 콘서트에서는 원곡을 듣기만 했을 때와 다르게 현장에서 가수가 직접 연주를 하고, 노래를 부르는 그 순간이 매우 또 다르게 들리는 이상하지만 기분 좋은 생경함이 있는데, 이번에도 공연 내내 그런 기분이었던 것 같다. 그 중에 제일 좋은 것을 꼽자면, 앨범 버전과 다른 라이브용 편곡을 거친 곡이 연주될 때다. 그럴 때는 그 느낌이 배가되기도 하지만 거기서만 느낄 수 있는 '콘'부심같은 것까지 생기기도 한다. 그게 이번 공연에서는 'Fix you'였는데, 음악이 낮게 깔리고 불빛이 전체적으로 들어오면서 원곡과 너무나 다른 느낌의 편곡으로 갑자기 크리스 마틴이 노래를 시작했다. 그 순간에는 아레나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숨을 죽이고 집중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천천히 읊조리듯이 이어나가는 멜로디 이후에는 다시 원곡의 느낌으로 돌아갔지만, 나는 그 도입부를 잊을 수가 없다.



콘서트 중반 이후가 되어 콜드플레이는 데이빗 보위를 추모하며 그의 곡 'Heroes'를 불렀고, 관객들 또한 이제는 더 이상 빛나지 않을 별의 죽음을 함께 그의 노래를 부르며 추모했다. 팝 음악사에 길이 남을 데이빗 보위, 현존하는 최고의 영국 밴드 중 하나인 콜드플레이, 그리고 현재는 보이지 않지만 이 무대를 꿈꿀 스타가 될 또 누군가. 그 순간 팝 음악의 역사가 눈 앞에 보이는 것 같은 환상을 본 것만 같았다.


떼창의 전설이 된 노래 'Viva la Vida'가 연주되자 모든 관객은 일어나 한 마음으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한 노래의 전주가 이렇게까지 설렐 일인가, 이 곡은 시작만 하면 마음이 벅차는 느낌이 드는데 심지어 여긴 웸블리 스타디움인데다가 빽빽하게 사람이 가득 차서는 모두 목놓아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 '떼창 유전자'라는 것은 날 때부터 갖고 있는 것이라기보다는 살면서 발현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A Sky Full of Stars


공연의 막바지에 갈수록 더 커지는 함성소리와 떼창, 어두워진 하늘에 빛나는 불빛이 아름다웠다. 'A Sky Full of Stars'의 전주가 나오는 순간에는 눈 앞에 쏟아진 별들이 춤을 추는 것만 같았다.


마지막 곡인 'Up&Up'을 부른 후, 런던에서 펼쳐진 콜드플레이의 콘서트는 막을 내렸다. 관객들은 아쉬움에 손을 흔들며 그들의 인사에 답하면서 떠나는 그들을 배웅했다. 무대 뒷 편으로 떠난 그들의 연주는 끝났지만, 그 음악은 떠나지 않고 남아 귓가를 맴돌았다.



실로 엄청난 인파였다. 눈으로 볼 때보다 공연장을 떠날 때 체감하는 사람의 수는 더욱 더 많았다. 공연이 끝났지만 아쉬운 마음의 사람들은 나가는 길에 사람으로 가득해 꽉 막힌 도로에서 여전히 노래를 불렀다. 이대로 집에 가는 게 가능한 건지 궁금할 정도로 튜브를 향해 가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줄을 이었다.


난 지하철 대신 기차를 탔다. 그 편이 좀 더 가능성이 높아보였다. 비가 한참 와 축축한 땅이 공연장 안에서 잠시 잊었던 현실로 복귀시키는 데에 한 몫했다. 기차를 타는 동안, 역에서 내려서까지도 같은 길을 왔던 사람들 모두 왠지 모르게 조금 더 친절한 것 같기도 하고 입꼬리가 조금씩 올라가 있는 것 같았던 느낌이 들었던 건 내 억지 감상은 아니었을 것이다.



역에서 내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또 억수같이 비가 쏟아졌다. 지나가던 사람이 굳이 빗길에서 날 불러 신발이 예쁘다고 칭찬을 해줬다. 귀에서는 빗소리와 함께 계속 'Hymn for the Weekend'의 코러스가 맴돌았다. 집에 도착해 공연장에서 내내 반짝이던 팔찌를 꺼내보니 더 이상 불빛이 들어오지 않는다. 다시 일상으로, 다음 페스티벌 일정을 위한 계획도 짐도 싸야 한다. 복잡해진 머릿 속에 둥둥 떠있던 모래가루같은 생각들을 가라앉히고자 잠시 멈추어 보려 하지만, 그리 잘 되지 않는다. 창 밖의 비가 계속 창문을 때리는 소리가 크게 난다. 그 간 많이 보지 못했던 런던의 폭우다. 잠을 청하려 어두운 방에서 눈을 감고 빗소리를 듣고 있자니, 다시 내 눈 앞에 반짝이는 별 같은 불빛들이 나타나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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