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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매한아름 Feb 20. 2022

부부가 한 침대에서 자야 하는 이유

시시콜콜한 대화의 힘

 아이들이 태어난 이후로 남편과 한 침대에 잔 적이 거의 없었다. 아침 일찍 출근해야 하는 남편을 위해 잠자리만큼은 배려해주고 싶었다. 그러다 이제 아이들에게서 수면 독립을 하고 싶어서 매일 아이들을 재워놓고는 남편이 있는 침대로 도망(?) 왔다. 물론, 수면 독립은 일단 실패했다. 하지만 남편과 오랜만에 한 침대에 누워 자는 경험(?)을 하면서 '이래서 부부는 한 침대에서 자야 하나보다' 생각하게 되었다.


 아이를 출산한 뒤, 우리는 둘이 앉아서 서로에게 집중하며 대화하는 시간이 거의 없었다. 한 집에 살면서도 그게 어려울 수가 있다. 그게 육아 현실이다. 아이가 어릴 때는 자꾸 울고 보채니까 계속 돌봐줘야 하고 집안에 할 일이 많다 보니 그렇고, 아이가 좀 크고 또 둘이 되고 나니 집안에서 보내는 생활 대부분이 '역할 분담'이다. 내가 이걸 하면 너는 저걸 하고, 내가 육아하는 동안 너는 좀 쉬고, 이런 식으로 계속 바통 터치를 하다 보니 둘이 무언가를 할 수가 없다.

 그러다 보니 둘이서 하는 대화라고는 지나가다 툭툭 내뱉는 질문이나 탄성, 추임새 정도. 중요한 얘기는 남편 출근하고 생각날 때마다 서로 카톡으로 주고받는 지경이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딱히 불편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대화를 깊이 있게 안 한다고 해서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는 건 아니다. 또 앉아서 같이 웃고 떠들 때도 있고, 간단한 대화는 하니까.


 그런데 그런 시간이 조금 길어지면, 서로에 대한 오해가 쌓여서 골이 깊어질 때가 있다. 상대방의 마음이나 생각을 내 기준과 경험에 빗대어 마음대로 단정 짓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자기가 마신 컵을 식탁에 그냥 올려놓으면 '이걸 또 나보고 치우라고 당연하다는 듯이 여기 올려놓네.' 하고 짐작한다. 상대방은 그냥 헹구는 걸 깜빡했을 수도 있고, 아무 생각 없이 나온 습관일 수도 있는데 나는 그걸 굳이 나를 향한 마음에 연결시켜서 스스로 상처를 쏘아 받아버린다.

 상대방이 좀 짜증스러운 말투를 내뱉었을 때 '왜 또 짜증이야?'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런 말투 자체를 '나를 향한 공격'으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사실 그 상대방은 오늘 어떤 어려운 일이 있었을 수도 있고, 다른 일 때문에 그런 말투가 나갔을 수도 있지. 하지만 당장 내가 육체적으로 힘들다 보니 상대방의 입장에서 이해하려는 마음의 여유도 없다.

 그런 소소한 오해가 겹치고 이어지다 보면 골이 깊어져서 언제든 빵! 하고 터져버릴 준비가 되어있는... 폭탄 같은 상태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우리가 함께 잠자리에 들던 그 한 달가량의 시간 동안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사이가 좋았다. 특별한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대단히 깊은 대화를 나눈 것도 아니지만, 적어도 서로에 대한 오해로 골이 깊어지는 일은 없었다.

 아이들을 재우고 밤 11시가 넘어 내가 침대로 오면 남편은 침대가 좁아졌다며 투덜거린다. 나는 이불 좀 내놓으라고 투닥투닥. 불을 끄고 나면 누워서 정말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한다. 아이들 이야기도 하고, 부모님이나 가족 이야기도 하다가, 회사에서 있었던 일, 오늘 누군가에게 들었던 이야기, 심지어.. 대통령은 도대체 누굴 뽑을 것인지, 우리는 어디로 이사를 가야 할지, 사형 제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일본은 왜 물가가 안 오르는지 등등.. 정말 주제도 없고 맥락도 없는 이야기들을 하다가 결국... '우리는 정말 대화가 안돼!'라는 결론을 내면서도 계속 이야기한다. 대화의 깊이를 가늠할 것도 없다. 정말 의식의 흐름대로 이 얘기 저 얘기하다가 새벽 1시가 다 되어서야 '큰일 났다!'며 이제 둘 다 입 다물기로 약속을 하고서야 이야기를 끊고 잠에 든다. -물론 매일 이런 건 아니다-


 부부 사이에 대화가 중요하다는 건 누구나 안다. 하지만 '우리 이야기 좀 하자' 하고 앉혀놓으면 그걸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긴장하게 된다. '이 사람이 무슨 얘기를 하려고 이러나' 덜컥 겁이 날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침대에 누워서 그냥 시시콜콜하게 나눈 이야기에 무슨 생산성이 있으며 무슨 알맹이가 있으랴마는 그 시간이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연결시켜준 것은 분명하다.


 아이가 태어난 초반, 거기다 금방 둘째가 생기면서 우리의 육아와 일상은 고단했다. 지금도 별로 달라지지는 않았다. 그런 고단한 일상 끝에 어떤 날은 혼자만의 자유로운 시간이 고플 때도 있지만, 누군가의 따스한 손길이나 말 한마디가 더욱 고플 때도 있다.

 이래서 부부는 한 침대를 써야 한다고 하는구나... 싶은 시간이었다.

 첫째 아이가 엄마 없는 잠자리를 너무 불안해하고 새벽마다 깨고 힘들어해서 잠자리 독립은 한동안 물 건너갔지만, 다시 돌아갈게. 기다려. 우리 같이 자자. (남편은 자기 공간이 사라진다며 싫어할지도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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