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의 결핍이 채워지는 순간
다섯번째 결혼 기념일이다.
결혼하고 내가 얘기했었다.
“오빠, 우리는 결혼기념일이랑 생일때 꼭 손편지는 쓰기로 하자!”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기억이 안난다.)
반짝이는 선물을 좀 사달라고 하지 않고, 왜 편지를 써달라고 한걸까 나는?
이번 편지는 열흘이나 지나서 받았다.
“오빠, 나한테 줄 거 없어?”
독촉해서 받은 편지 한통.
아, 선물도 하나 없는데 편지 한 통도 이렇게 독촉해서 받아야하나.
우리의 편지 전달 방법.
별 말 없이 화장대나 서랍 어디 넣어둔다. ‘언젠가 발견하겠지’ 하면서…
오늘도 속옷 찾다가 ‘왜 옷이 흐트러져 있지?’ 하면서 보니 작은 편지 봉투가 있다.
예전엔 급하게 어디서 A4용지 구해서 적고 그러더니, 이번엔 편지지를 예쁜걸로 구했네.
근데 무슨 메모지 같이 작은 크기의 편지지가 여러장이다?
‘장수 채우기 힘들어서. 잔머리 쓴거 같은데’ 하는 생각이 살짝 들기도 하는데…
표현에 서툰 남편이 편지지를 골라 사고, 할 말을 쥐어짜면서 펜을 들고 앉아있는 모습을 상상하니 …
귀엽기도 하고 찡하기도 하다.
편지 내용은 거의 ‘고해성사’ 수준이다.
미안한게 많았나보다.
말로 표현하는 법을 잘 모르는 사람도 글을 쓰다 보면 속에 있는 이야기를 하게 되나보다.
미안하다, 고맙다, 좋다, 맛있다, 이런 말을 들어본 적이 거의 없었는데,
편지에 이렇게 빼곡히 미안한 마음을 담았다.
편지 한 장에 그 동안의 결핍이 흘러 넘치도록 채워지는 느낌이다.
부부 사이에 대화가 얼마나 중요한지.
하지만 아이가 태어나고 나면 육아하기에도 벅차서, 둘이 마주 앉아 이야기 할 시간도 체력도 없다.
서로 진심을 터놓을만큼 깊은 대화를 하려면 서로에게만 집중하는 시간과 분위기가 필요한데 말이다.
가끔이라도 아이들을 맡아줄 부모님이나 가족이 가까이 사는게 아니라면 그런 이벤트도 정말 갖기 어렵다.
휴가 때 친정에 갔을 때 가끔 아이들을 부모님께 맡겨두고 남편과 둘이 카페를 갔다.
그 때, 정말 오랜만에 남편의 속마음 같은 걸 들을 수 있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구나…’
평소에는 전혀 알 수 없었던, 마음 속 생각들.
일년에 한 두번 나누는 우리의 편지.
나는 ‘반짝거리는’ 선물을 참 좋아하지만, 그것보다 이젠 편지가 더 좋다.
그의 마음을 알 수 있는, 그의 사랑을 확인하게 되는.
우리 10년 뒤, 20년 뒤에는 편지에 뭐라고 쓰게 될까.
10년 뒤, 20년 뒤에 지금의 이 편지들을 보면 어떤 기분이 들까.
차곡차곡 잘 모아놓아야겠다.
(예전 편지들을 다 어디다 뒀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