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평한' 가사 분담에 실패하는 이유
나는 프리랜서 피아노 강사이자 주부이자 두 아이의 엄마이자 한 사람의 아내다.
요즘 두 아이를 모두 어린이집에 보내게 되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좀 더 할 수 있게 되었다. 돈 버는 일도, 돈 안 되는 취미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생긴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물론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도 해야만 한다. 정말 친해지기 어려운 정리와 청소, 그리고 온갖 집안일도 해야만 한다.
살짝 억울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나는 돈도 남편만큼 벌고, 남편 퇴근(매일 야근) 전까지 육아도 다 하는데, 집안일도 왜 내가 다 해야 하는 거지? 하는 억울한 마음.
가사 분담은 언제나 숙제 같은 일.
물론 내 수입이 늘어날수록 남편은 눈치껏 육아에 좀 더 힘을 쓴다거나, 가끔 설거지나 청소를 한다거나.. 조금씩 변화가 있기는 하지만 어쨌든 '공평'에 아주 많~~ 이 못 미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집안일을 그에게 철저히 분담하지 않는 이유는... 그가 불쌍해서다.
나는 나의 남편처럼 살 자신이 없다.
매일 아침 일찍 출근해서 밤늦게 퇴근한다.
딱히 술을 마시러 나가거나, 취미 생활이 있다거나, 친구들을 만나러 나가는 것도 아니다.
그나마 일 안 하는 주말이면 온종일 가족과 함께 보낸다.
유일한 낙은 아이들 낮잠 시간에 같이 낮잠 자는 것.
휴일도 쥐꼬리만 하고, 연차를 내기엔 일이 늘 밀려있어 맘 놓고 쉴 수가 없다.
어쩌다 휴가 한 번 가면... 해외에 있을 때조차 계속 전화가 온다.
심지어 출산 휴가 때도 2주 내내 노트북을 끼고 살았다.
혼자만의 시간이란 쥐뿔도 없다.
그런데 이런 삶을 평생 살 예정이다. (큰 격변이 없다면 그럴 사람이다.)
셔터 맨(내가 학원 원장 하면 자기가 셔터나 내리고 올려주겠다는)이 꿈이라지만
자기 일 없이 집에서만 집안일에 육아를 하며 살.... 사람이 아니다.
한 달만 아무 걱정 없이 쉬어보는 게 소원이라고 한다.
너무 소박한 꿈 아닌가. 그게 너무 불쌍하다. 평생 마음껏 쉴 수 있는 시간 없이, 내 의지와 상관없이 누군가의 요구와 책임에 의해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회사생활이라곤 쥐뿔 안 해본 나로서는
내 시간을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틈이 조금이라도 있어야만 숨을 쉴 수 있는데...
그는 얼마나 답답할까.
매일 피곤에 찌든 얼굴, 팅팅 부은 얼굴로...
그래도 짜증 한 번 내지 않고 아이들과 나에게 다정하게 대해주는 모습이 안쓰럽다.
만약 남편이 좀 덜 가정적이었다면... 가정보다 친구를 좋아하고, 집에 있기보다 밖에 나가는 걸 더 좋아하는 사람이었다면 나는 바득바득 이를 갈며 정확한 가사 분담을 요구했을 것이다.
불쌍해서 봐주게 된다.
그래서 맨날 생색낸다.
아침 한 번 차려주면서도 생색, 설거지 한 번 하면서도 생색..
'내가 진짜 오빠 봐주는 줄 알아. 나한테 진짜 잘해야 해. 나 같은 마누라 없다.' 이러면서..
여전히 잔소리하고, 생색 내기로 가득하지만...
오늘도 불쌍해서 봐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