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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매한아름 Jul 29. 2022

남편의 핸드폰을 집어 던져버리고 싶을 때

 처음 아이를 낳고 육아를 시작할 때, 집에는 신생아 돌봄 도우미 이모님도 계셨고 내 여동생도 같이 살고 있었다. 도우미 이모님이 가시고, 동생도 출근하면서 육아가 온전히 내 몫이 되었다. 너무나 다른 삶에, 너무나 많아진 집안일에, 너무나 당황스러운 순간순간의 연속이었다.

 저녁이 되면 남편도 오고 동생도 집에 오는데, 퇴근 후 그들도 쉬고 싶었으리라. 그래도 동생은 조카가 예쁘다고, 언니가 힘들다고 여러모로 도와줬다. 남편도 자기 나름대로 아기 목욕도 시키고 육아를 ‘도와준답’시고 이런 저런 시도를 했었다. 하지만 주양육자인 나 다음의 양육자는 아빠가 아닌 동생이었다.

 남편은 ‘아이와 소통이 안되니’ 아이를 어떻게 봐야할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아이를 예뻐하긴 하지만 어떻게 예뻐해줘야할지 뭘 어떻게 해야할지 잘 모르겠다고.


 아이를 낳기 전, 남편한테 이렇게 얘기했었다.

“아이는 내가 케어할게, 오빠는 나를 케어해줘”

 그런데, 남편은 나도 아이도 케어해주지 않는 것 같았다.


 남편이 아침 일찍 출근을 하니 보통 내가 혼자 아이를 데리고 잤었는데, 아이가 새벽에 늘 깨서 놀다 자는 바람에 나는 매일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한번은 남편한테 부탁했다. ‘내일 쉬는 날이니까 딱 한번만! 딱 한번만 애기 데리고 좀 자줘’

 그랬더니, 알겠다고는 하는데 그 얘기를 한 이후로 계속 짜증과 예민함이 분출되는 것이었다. 하기 싫다는 거구나.. 그 순간 너무 상처가 되었다. 딱 하루, 딱 한 번인데.. 그게 그렇게 못할 일인가. 나를 위해 한번 쯤은 희생해줄 수 있지 않나. 진짜 너무해.. 그 때 그 서운한 마음이 지금까지 두고두고 생각 난다. 아마 남편도 초보 아빠로서 많이 겁이 났었던 모양이다. 지금은 어느 정도 이해가 되기도 하지만 그래도 서운해.

 밤마다 잠도 제대로 못자고, 일은 쌓여있고, 퇴근이란 없는 육아 일상 속에 살다보니 아이를 처음 키우던 1년 동안은 나도 많이 예민했었던 것 같다.


 내가 제일 부글부글 끓어오를 때는 바로, ‘나는 일하고 있는데 남편이 드러누워서 핸드폰 하고 있을 때’ 였다.

내가 설거지 하는 동안 자기가 아이를 본다고 하지만, 아이가 아직 말도 못하고 그냥 굴러다니기만 하니까 사실 자기가 할 일은 없다고 생각했겠지. 근데 아이는 옆에 두고 옆에 드러누워서 핸드폰 하고 있는 모습이 어쩜 이렇게 밉상스러운지. 힘들게 설거지 하고 서있는 나는 안 보이는가. 누군가 일하고 있으면 눈치껏 자기도 뭐든 해야하는거 아닌가.

 매일매일 남편의 핸드폰을 집어 던져 박살을 내고 싶었다.


 5년이나 지났다.

 지금은 이 집에 육아를 도와줄 다른 이는 없다. 오로지 나와 남편 뿐. 이제 아이들이 커서 말이 통하고 아빠랑 같이 놀고 싶어하기 때문에 ‘소통이 안된다’는 핑계는 댈 수 없다. 남편도 많이 성장해서 내가 설거지하거나 씻고 잘 준비 하는 동안은 아이들과 놀아준다. 퇴근이 워낙 늦어 기껏해야 한시간 정도 놀아줄 수 있다. 때로는 ‘와 진짜 아빠는 놀아주는 스케일이 다르구나’ 싶을 정도로 감동하기도 했다. 남편 나름대로 많이 노력하고 있었다는걸 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남편이 (아마도 리니지)게임을 핸드폰으로 하기 시작했다. 원래는 태블릿으로만 했는데 이제 핸드폰으로도 하네?.. 유일하게 스트레스를 푸는 도구라고 하니 게임 하는 것 자체를 막은 적은 없다. 그것도 자기 나름의 사생활이고 취미생활이니까.

 그런데 태블릿을 할때는 방에 자동으로 돌려놓기도 하고 하더니, 핸드폰으로 게임을 하니 계속 핸드폰만 들여다보고 있는 것이다. 마음이 핸드폰 게임에 가있으니 애들이 말을 걸어도 대답은 하는데 눈은 핸드폰에 가있고, 놀아주면서도 순간순간 핸드폰을 확인한다.

 심지어 어제는 1시간 내내 쇼파에 앉아 핸드폰만 들여다보고 있는 것이다.

!!!! 또 저 핸드폰을 집어 던져버리고 싶었다.

 게임으로 시간을 허비하는 것도 한심해보이고, 아이들이 슬금슬금 눈치보면서 엄마만 찾는 상황도 짜증나고, 그냥 꼴보기 싫어져서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아마 표정에서 어느 정도 티가 났겠지.

 조용히 한마디 했다. “방에 들어가서 해요”. 그냥 들어가기 민망한지 계속 앉아있길래 또 얘기했다. “방에 들어가서 해요”

 슬금슬금 남편이 방으로 들어간다.

 차라리 눈에 안 보이니 평화롭다.


 남편도 휴가를 앞두고 엄청 출근하기도 싫고, 덥고 피곤함이 쌓이니까 이제 한계치에 달했나보다. 차분히 생각하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에게 엄마는 없으면 안되는 존재이지만, 아빠는 이렇게 안 보여도 괜찮은 존재가 될 수 있겠구나…’

‘아빠가 아이들과 사춘기 시절까지도 친하게 잘 지내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겠구나’

‘아빠가 아이들에게 필요없는 존재가 되면 안되는데’


 다음날 카톡으로 이야기 했다. 거실에 나와서 계속 핸드폰 들여다보면서 게임하는거 안했으면 좋겠다고. 남편은 감사하게도 별말 없이 바로 수긍해주었다. 자제하겠다고.

 어제와는 전혀 다른 텐션으로 아이들과 열심히 놀아주는 아빠의 모습. 이렇게 노력하는 모습을 보면 또 너무 고맙다. (어제까지만 해도 꼴보기 싫었는데, 오늘은 또 사랑스럽네)

 

 남편의 핸드폰을 뺏어 집어들어 던져 깨뜨려버리고 싶은 순간에 진짜 그렇게 행동해버렸다면 어떻게 됐을까? 아니, 소리라도 질러서 내 분노를 표출했다면 우리는 어떻게 됐을까?

 말을 내뱉고 행동으로 옮길 때, 우리는 거르고 거르고 걸러야 한다. 부부만큼 조심스러운 관계는 없으므로. 아이들 앞에서는 더더욱 조심스러우므로.

 

 앞으로도 그런 순간들이 종종 오겠지만, 부디 인내와 지혜로 그런 감정과 상황들을 잘 이겨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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