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전, 엄마의 충고
내가 결혼하기 전, 엄마가 나에게 이야기해주셨다.
“남자는 본능적으로 이기적이란다.”
엄마의 말은 ‘그러니 기대하지 말아라’ 는 조언이었다.
결혼, 남자친구가 남편이 되었을 때 이전과는 다르게 변한 모습에 실망할까봐 하신 말씀이다. 예전처럼 다정하지 않다고 해서, 나를 잘 도와주지 않는다고 해서, 자기만 생각하는 모습이 보인다고 해서 ‘날 이제 사랑하지 않나?’ 하고 배신감 느끼지 말고, ‘원래 그런거지..’하고 받아들이라는 뜻이다.
순간순간 엄마 말씀을 이해하면서 살아간다.
외출을 준비할 때, 남편은 자기 혼자 준비할 시간을 계산하고 준비한다. 나는 나와 아이들까지 3명분을 준비한다. 내가 생리통에 허리 아파해도, 내가 밤마다 아이들 때문에 잠을 못자도, 내가 설거지 하다 힘들어서 낑낑거려도, 나 혼자 집안일을 다 하고 있어도 먼저 ‘좀 쉬어, 오늘은 내가 할게’라는 말을 한 적이 없었다. 먼저 걱정해주거나 마음 아파하거나 하지 않는다. 내가 아프거나 힘든건 잘 보이지 않는가보다. 하지만 자기가 아프거나 피곤하거나 짜증나거나 하면 엄청 표현한다. 내가 알아주지 않으면 또 서운해하는 것 같다.
아들 육아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찾아볼 때, 여자 아이들과의 가장 큰 차이 중 하나가 ‘공감 능력’임을 본 적이 있다. 일종의 실험이었는데, 아이랑 엄마가 둘이 있다가 엄마가 다쳐서 아파 울고 있을 때 아들과 딸의 반응 차이를 살펴보았다. 딸들은 같이 울거나 엄마를 걱정하는데, 아들들은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는건지 민망해서 그러는 건지 여튼 더 까불거나 멍하거나 둘 중 하나였다.
나도 (다른 여자 친구들에 비해)공감 능력이 풍부한 편은 아니지만 내 기준에서 남편을 보면 공감 능력이 없어도 너무 없다. 그래서 그걸 사랑과 직결해서 생각하면 상처 받을 수밖에 없다. ‘사랑이 식었구나’, ‘연애 때는 안 그랬는데’, ‘이제 날 사랑하지 않는구나’ 이렇게 생각하면 혼자 계속 상처 받는다.
‘그냥, 원래 그런 사람이구나’ 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내가 상처 받지 않으려면.
그런데, 남들이 보기에 진짜 대단하다 싶을 정도로 다정하고 가정적인 남자들도 많다. 방송에서도 많이 보이고, 주변에서도 종종 볼 수 있다. (물론, 겉으로 드러나는 것과 진짜 일상에서의 모습은 다를 수 있겠지만.)
내 개인적인 생각에, 그런 사람은 크게 두 가지 부류일 것 같다.
첫번째는, 천성적으로 공감 능력이 풍부한 사람.
두번째는, 진짜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사람.
창세기에 나오는 아담과 하와의 모습을 보면, 하와는 좀 어리석다. 유혹에 쉽게 흔들리고, 또 뭐든 남편에게 쉽게 전달(전염)시킨다. 그런데 아담은, 자기가 금지된 사과를 먹어놓고 하나님한테 핑계를 댄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저 여자가 내게 그 사과를 줬다고. 하나님도 원망하고, 하와 핑계를 대는 것이다. 그러고서 자기는 결백하다고 한다. 좀 치사하고, 이기적이다. 하와가 하나님한테 벌 받을까봐 걱정하거나, 하와를 지켜준다거나, 자신의 잘못을 진심으로 반성한다거나 하는 모습은 1도 볼 수 없다.
우리가 드라마에서 보는 남자 주인공들은 다정하다. 츤데레 남자주인공들도 결국은 다정하다. 물론 사랑에 빠져서 미쳐있을 때(?)는 누구나 다정하겠지만, 열정이 조금 식은 관계에서는 드라마에서의 남자주인공 같은 모습은 볼 수 없다. 내 여자를 걱정하고, 내 아내를 지켜주기 위해서 전전긍긍하고, 겸손하게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는 그런 멋진 모습은 애초에 기대해선 안된다.
처음에 상처 받을만한 일들이 많았다. 나는 하루종일 남편만 기다렸는데, 집에 오자마자 게임하러 방에 쏙 들어갈때. 내가 너무 힘들어서 뭔가를 부탁했을 때 뚱…할 때. 내가 아프거나 힘든 상황임을 뻔히 알면서도 한번도 먼저 ‘내가 할게’라는 말을 한 적이 없어서.
사람은 고쳐쓰는게 아니라…는 말이 있다. 그 말에 대해 나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고 생각한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성장하고자 애쓰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나의 잘못을 인정하고 조금이라도 고치려고 노력하다보면 조금씩 조금씩 성장한다.
아마 남편도 점점 배워가고 있는것 같다. 내가 어떤 것이 서운한지 종종 이야기 하고, 오빠가 이렇게 해주면 정말 감동일거라는 얘기도 종종 했는데. 나름대로 그 얘기들을 적용해서 고쳐간다. 지금은 그런 작은 것 하나하나에 감동하고 감사하며 살아간다.
내가 오늘 허리가 너무 아프다고 하니 “그럼 내가 오늘 설거지 할게”. (이렇게 얘기하면 또 고마워서 내가 기쁜 마음으로 설거지 하지!)
아이들이랑 잠깐 같이 있는 시간에는 아이들에게 집중해달라고 하니 “알겠어. 게임 자제할게”.
모든건 스스로의 의지에 따라 다르더라. 남편이 스스로 “자, 이제 애들이랑 좀 놀아볼까~” 하고 마음을 먹으면 그땐 아주 온 열정을 다해 놀아준다. (그 열정이 또 저질 체력 때문에 오래 가지 않는 점이 아쉽지만) “자, 오늘은 지혜에게 자유를 좀 줄까~” 하고 큰 마음을 먹고 나에게 자유 시간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모든 의욕이 없고 피곤한 상태, 일명 ‘무의지’상태에서는 본능 그 자체로 돌아간다. 자기가 하고 싶은대로, 자기만 생각하는 모습 그대로 돌아간다.
살면 살수록 느낀다. ‘행복한 가정’에 대한 의지가 있는 남자와 결혼을 해야겠구나. 연애 때의 그 뜨거운 사랑만으로 평생을 살아가기엔 힘들겠구나 하고. 그래도 나는 ‘행복한 가정’을 꿈꾸는 남자와 살고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토닥토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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