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빡센 하루

by 미셸 오


지방에 사는 내가 서울의 큰 병원을 하루 만에 갔다 오기란 정말 힘든 일이다.

작년에 비행기를 예약해 두었는데 시간이 흘러 벌써 1년. 어제가 바로 병원 재진날이었다.

어제 새벽 5시에 일어나 씻고 택시를 타고 공항까지 30분. 마침 부산의 APEC 행사로 인해 보안검색 시간이 아~주 오래 걸렸다. 주민등록증 주소확인. 휴대폰 배터리도 미리 테이프를 붙여야 했고 사람들은 신발까지 벗고 꼼꼼히 검색을 받았다. 그래서 오전 일찍부터 공항 출발장은 사람들의 줄로 끝이 없었다. 게다가 많은 비행기들로 인해 우리가 탈 비행기도 30분 연착되었다. 김해 공항에서 아침으로 김밥과 우동을 먹은 후 비행기를 타고 김포공항에 도착했다.

이제부터는 그야말로 빛의 속도로 지하철을 타야 한다. 강남의 병원까지 고속철도로 40여분 간 뒤 다시 다른 지하철로 환승해야 한다. 환승하는 시간이 제법 오래 걸리기 때문에 우리는 경보처럼 걷거나 뛰거나 하면서 지하철을 탔다.


병원 예약시간은 오후 1시 30분인데 우리가 한눈팔지 않고 열심히 달린 덕분에 우린 12시에 병원에 도착했다. 작년엔 길눈이 어두워 지하철을 환승하는 대신 택시를 탔었는데 지하철을 환승하는 것이 훨씬 더 가깝고 시간이 덜 걸린다는 사실을 어제서야 깨닫게 되었다.

택시를 타기 위해 지상으로 오르락내리락하고 택시를 잡아타고 또 택시 안에서 차가 밀려 늦어지고 했던 것이 고생을 사서 한 거였단 사실을.

이번에 병원에 3회째 가는 건데 작년까지. 택시 기사들은 모두 병원 앞이 아니라 늘 병원에서 먼 곳에 내려주었다. 그래서 횡단보도를 두 개나 건넜어야 했는데 환승지하철을 타고 지상이 오르니 바로 병원 문 앞이 아닌가?

지하철에서 많은 사람들에 부대끼고 많이 걸었던-아닌 뛰었던- 우린 점심도 거절하고 병원 소파에 앉아

점심시간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점심시간임에도 직원들이 남아서 안과 검진을 해주었기 때문에 의사 면담전 필수코스인 검진이 빨리 마쳐서 비행기 시간까지는 시간이 충분할 것 같아 우선 마음이 놓였다. 환자들이 워낙 많아 그런지 점심시간도 직원들이 돌아가면서 업무를 하는 것 같다. 이제 의사만 만나면 된다. 예약 시간은 1시 30분이다.

우리는 잠시 소강상태에 들어간 병원 구석 소파에서 꾸벅꾸벅 졸았다. 그런데 벽에 걸린 텔레비전에서 끊임없이 쏟아지는 광고 때문에 편히 앉아있기가 힘들다. 소파 옆 텔레비전은 같은 내용을 1시간 30분 동안 열 번도 넘게 반복했다. 안과 병원이라서 다들 무서운 안과적 질병에 관한 것들 위주이다. 녹내장. 망막박리.... 등등. 나중엔 딸은 아예 그 화면을 등지고 앉았고 나는 듣지 않으려 애를 썼다. 실내엔 향을 뿌려서 코가 그 냄새에 둔감해질 무렵 머리가 지끈거린다. 역시 인공적인 향은 내게 안 맞다. 깜빡 졸았다.


드디어 1시 30분. 의사와의 면담은 10분 만에 끝났다. 다행히 딸의 시력이 작년보다 나아졌다고 한다.

그 한 마디에 오랜 시간 걸려왔던 힘듦이 싹 날아가 버린다. 정신 에너지가 충만해진 우리는 왔던 걸음에 날개가 달린 듯 빠른 걸음으로 왔던 길을 하나 둘 복기한다. 지하차도는 1층에서 4층까지 있었지만 우린 헷갈리지 않고 -아니 좀 헷갈리긴 했다-잘 찾아다녔다. 고속철도를 환승할 때 내가 좀 늦게 걷는 바람에 첫 열자를 놓치고 말았다. 지하 3층 에스컬레이터에서 막 발을 떼는 순간 떠나는 지하철의 소음이 들렸다.

" 지하철이 방금 떠났어. 엄마가 좀만 더 빨리 걸었으면 탔을 거야. 그러니까 빨리 걸어야 된다고."

" 아.. 그래."

"근데 15분 지남 또 온다."

딸은 휴대폰에서 지하철이 도착하는 시간을 실시간 검색하고 있다. 역시 세대차이를 느낀다. 내 손에 든 휴대폰으로 그걸 검색하지 않는 나는 뭐지? 아마도 딸이 옆에 있어 신경 쓰지 않았을 것이다.

정확히 15분 후 고속전철이 우리 앞에 바람을 가르며 달려왔고 우린 재빠르게 탑승. 자리를 확보했다.

객석에서 바라본 모 항공기 앞부분-뭔가 선글라스를 낀 사람같다.

작년엔, 전철로 김포에서 목적지까지 1시간 걸리는 거리를 가는데 딸은 느릿느릿 탑승하는 바람에 줄곧 서서 갔다. 김포에서 출발하는 지하철의 자리는 텅텅 비어 있기 때문에 좀만 빠르게 움직이면 얼마든지 앉아서 갈 수 있었다.

"아 좀 빨리 타지~"

내가 속상해서 말하자

"왜~? 서서 가는 게 편하다고." 라면서 내 말을 묵살하던 이 놈의 가스나가 이번엔 몸을 재빨리 놀렸더란 거다. 나중엔 사람들 사이에서 자리쟁탈전 하는 것이 너무 스트레스라나 뭐라나. 아무튼 이번엔 좀 빠르게 몸을 움직인 덕에 둘 다 편안히 -때론 잠을 잘 수도 있고- 김포공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제 공항에 도착한 그 순간부터는 우리들의 자유 시간을 만끽할 시간이다. 이 시간을 충만히 채워야만 한다.

우린 고픈 배를 채우기 위해 4층 식당가로 갔다. 원래 우린 공항을 좋아한다. 공항 가득 흘러넘치는 활기찬 기운들과 설렘들에 더하여 한국어. 중국어. 일본어로 나오는 탑승안내 방송은 마음이 더 두둥실 뜨게 하기에.

식당가를 지나며 우리는 의견이 갈린다. 딸은 면이나 육류. 난 밥이다.

노을이 지는 공항-이제 막 출발하여는 비행기

"우리 따로 먹자." 나는 경쾌하게 제안했다

"좋아~!" 딸도 반색한다.

그렇게 하여 나는 돌솥밥집으로 딸은 짜장면 집으로. 따로 먹으니 의외로 속이 편하다.

서로 식단이 맞지 않아 누군가 한 명은 맛없는 음식을 마주해야 해서 서로 불편했는데 다음부터는 이렇게 하는 걸로 하자. 이제 각자 밥을 챙겨 먹은 후 커피 한잔. 그리고 유명하다는 사과파이를 사서 포장한다.

내가 먹은 솥밥 식당과 왼쪽에 새로 만들어진 무빙워크

검색을 통과 후 우리의 비행기 탑승구는 4번. 한참을 걸었다. 나중에 보니 뒤편에 무빙워크가 새로 생겼음을 알게 되었다. 이런~ 안내라도 좀 해주지..발바닥이 아프게 걸었구만.. 그렇게 객석에 앉아 기다리는 시간들. 공항의 비행기들을 지켜보는 시간. 공항에는 해가 지는 노을을 배경으로 수많은 비행기들이 내리고 오르고 한다.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는 비행기를 바라보면 늘 설렘이 있다.

어딘가로 떠나는 자들의 낯선 곳에서의 호기심과 동경으로 가득 찬 공항과 비행기들. 이 비행기를 기다리는 시간이 그런 여행자의 처지였더라면 우린 덜 피곤했을까?

"우리 내년에 꼭 교토에 가자"

나는 옆의 딸에게 다짐처럼 이야기한다. 얼마든지 충분이 여행을 갈 수 있었는데.. 왜 가지 못했지? 이렇게 마음으로 다짐하고 말로 약속해야 갈 것 같다.


그런데 탑승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탑승 게이트가 4번에서 10번으로 바뀌고 또 비행기가 연착이란다. 이때부터는 지쳐간다. 공항엔 이미 어둠이 내렸다. 우린 예정 시간보다 1시간 늦게 비행기를 탔다. 비행기를 탄 그 순간, 하루의 피곤이 급격히 몰아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행기 안에서 내려다본 불빛 찬란한 문명의 도시는 신비롭게 반짝거린다.

비행기에서 바라본 문명의 도시


집에 도착하니 저녁 9시다.

우리는 세수도 대충 하고 곯아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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