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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지 Sep 14. 2017

2016. 9. 26

이제 나는 어느 이를 위해서도 문장만은 남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언젠가 누군가 내게서 당신 능선을 핥고 있는 시를 쓰게 하신다면 당신께서는 부디 내 사랑을 허락할 수 있는 마음가짐이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아주 처음부터 환상 속의 미소나 사려 깊은 유혹을 보이지 말며, 구석구석 움직이는 입모양에 감동하는 눈을 해서는 안됩니다.


당신은 그저 제가 꺼내들려는 흰 종이와 한 자루 펜의 위험을 불쾌히 여기시면 됩니다.


함부로 아름답게 나타나지 마십시오. 쓰는 것을 지켜보지 마십시오. 나는 어딘가는 텅 빈 나약한 사람입니다.


채워지려거든 아이의 소리로 울어주십시오. 당신은 나와 함께 자유로워질지도 모르겠습니다. 만약 우리 사이 달무리 가까운 고요가 흐르는 날에는, 나에게 당신 숨의 가닥들은 영원이자 예찬의 고통이며 인간애에 대한 갈망이자 희망이며, 사랑입니다. 다 겹쳐지지 않는 눈썹털을 세다 잠이 드는 그것은 바른대로 사랑이며 나는 오래 깊이 당신을 앓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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