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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지 Mar 11. 2019

부치는 편지

계절과 계절 사이의 모호한 날씨를 만끽하는 것 길가의 꽃을 함부로 지나치지 못하는 것 유난히 파란 하늘과 또 유난히 자욱한 하늘의 변덕에 내 마음도 이랬다 저랬다 펴보는 것 바람이 불 때에는 구름의 농밀을 휘저으며 눈을 감아보는 것 그리운 사람들 하나 둘 거기에 빠트려두는 것 긴 팔에 짧은 바지 슬리퍼 차림으로 산책로를 걸으며 이 음악 저 음악 닥치는대로 듣는 것 뛰노는 아이들을 한참 바라보는 것 멀리멀리 걸어가는 노인들을 뒤쫓아 걷는 것 저문 밤에 맥주를 까 마시는 것과 같은 나의 희와 애.
언제까지고 이 정도의 행복을 끼고 살아갈 줄 알았다. 인간애에 대한 것은 언제까지고 희망이자 갈망이었으므로. 어쩌면 행복이 무엇인지 진실로 잊어버렸거나 영영 모르는 채로. 내 사랑, 다 죽은 것들이 덕분에 순간마다 살겠다고 헐떡여.
표정을 읽는 게 참 즐거워. 내가 알아먹을 수 있는 표정의 가짓수가 늘어간다는 게 참말 기뻐. 당신 미세한 떨림을 다른 이들보다 먼저 읽을 수 읽게 되는 것, 함께 나눌 수 있는 감정이 늘어가는 것이 오늘따라 뜨거워. 어디서든 아무렇게나 누워 한낮의 볕을 함께 가지는 삶 밤이면 안아주는 삶 눈썹털을 세다 잠이 드는 삶. 모조리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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