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무/오기, 『손자병법』/ 『오자병법』, 전통문화연구회, 2016
가뜩이나 먹고 살기 어려운 불황의 시대인데, 시국마저 최악입니다. '단군 이래 최초'란 표현은 아마 이런데 쓰라고 생긴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국정 막장드라마의 민낯이 연일 드러나고 있습니다. 평소 시사나 정치 관련하여 큰 관심이 없던 지인이나 주변 사람들도 누구나 한 마디씩 하면서 혀를 찰 정도지요. 국민 다수는 놀라움과 분노를 금치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이 나라 정부를, 그리고 나라를 믿었던 국민들에게 그 수장인 대통령과 주변인들이 보여준 꼴사나운 만행과 추잡한 작태는 이제 수습이 불가능한 정국을 만들고 말았습니다.
저 역시도 헛웃음이 나왔습니다. 일선에서 근무하고 있는 공무원들의 조직적이고 시스템화된 일처리를 보면서, 국가의 정책과 의사를 결정하는 시스템 역시 그러할 것이라 유추했던 것이 보기좋게 빗나갔기 때문입니다. 이 정권이 강력한 인공로봇 팔다리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머리에 386컴퓨터를 내장한 인조인간이었다는 사실은 허탈함과 동시에 그 동안의 세월에 대한 공포감마저 줍니다. 그런데 박근혜 씨가 12월 중순 한중일 정상회담에 참석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하더군요. 식물정권의 허수아비 대통령이라는 현실을 잊은채 외교와 군사 관련 국정을 진행하려는 박근혜 씨를 두고, 광장에 모인 100만 시민들이 '제발 아무 것도 하지 마라'고 명령하는 것이 무리는 아닌 것이지요. 아마 세살 아이에게 날카로운 비수를 쥐어준 느낌일 겁니다.
외교와 군사라는 외치外治문제가 나왔기에 오늘은 손무孫武가 지었다고 알려진 『손자병법』과 오기吳起가 저술한 것으로 전해지는 『오자병법』, 두 권의 고전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판본은 사단법인 전통문화연구회에서 출간(성백효 譯)했고, 두 책이 합본된 것으로 선택했습니다. 약간의 해설은 붙었지만, 너무 지나친 주석이나 주관적인 해설이 원전의 참맛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우리 각자가 읽어보고 그 의미를 음미하고 해석해 보자는 의도이기 때문입니다. 외교와 군사문제는 국가의 안보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데 있어 핵심적인 부분입니다. 이 두가지는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유기적으로 엮여 있는 문제이기에 『손자병법과』과 『오자병법』, 두 병법서 역시 단순히 군사를 배치하고 전쟁을 치르는 기술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치內治의 문제까지도 다루고 있습니다.
물론 병법서이기 때문에 군대를 편성하고 배치하고 전투를 치루는 방법에 관한 분량이 많은 게 두 병법서입니다. 하지만 책의 순서를 보게되면 저자가 무엇을 가장 중시했는지 알 수 있는데, 두 책 모두 공통적으로 (전쟁 이전에) '나라를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가'로부터 시작하고 있습니다.
『손자병법』의 제1편은 治計(국방 계획)로서 싸우기 전에 미리 자신의 나라를 살펴서 승산을 따져보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섯가지 조건을 충분히 따져보며 숙고하여 판단하라고 하였는데, 그 다섯가지는 도道, 천시天時, 지리地利, 장수將帥, 법령法令입니다. 그 중 3가지의 의미를 헤아려 보겠습니다. 도道는 백성과 병사들로 하여금 윗사람과 뜻을 같이 하여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고 함께함을 의미합니다. 장수將帥는 윗사람인 지휘관이 지혜와 신의와 인자함과 용맹함, 엄격함을 갖추고 아래사람을 다스리고 있는지 여부를 말합니다. 법령法令은 엄격한 규율이 지켜지는 아래서 각자가 스스로의 역할을 충실히 맡아서 행하고 있는가를 말합니다.
즉,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천시天時, 지리地利같은 변수를 제외한다면 앞서 언급한 3가지 조건들은 평소 나라가 어떻게 운영됐는지에 의해 이미 결판나 있는 상수와 같습니다. 평소부터 백성들이 스스로 나라를 사랑하게끔, 예를 들어 곤궁한 이를 챙기고 과도한 세금이나 노역을 착취하지 않으며, 상과 벌이 명확하여 합당하다고 느끼게끔 통치했다면 손무가 말한 도道의 조건은 자연스럽게 갖춰진 것이지요. 갑자기 선심 좀 쓴다고 멀어진 민심을 가져올 수는 없을테니까 말입니다. 장수將帥나 법령法令의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평소 고위관료와 장성들이 일반 시민들과 부하 병사들을 대함에 있어 '뻭'같은 소리가 나오지 않도록 공정하거나, 수사기관이나 법정에서 납득할 수 있는 수사와 판결을 받았다면 그 사회나 조직은 기강이 바로 서게 됩니다. 자연스럽게 두 조건도 해결되겠지요.
여기까지 따져보고서야 손무는 작전과 진형, 지형, 용병, 주둔, 전투 등에 대해서 논하기 시작합니다. 즉, 외치의 전제는 스스로의 나라를 따져보았을 때 이미 합격을 할만한 수준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에 관해서는 『오자병법』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오자병법』은 상당부분 소실되어 전해지지 못했지만 그 1편은 분명히 도국圖國(나라를 다스림을 도모함)으로 시작합니다. 역시 나라가 제대로 다스려져야 비로소 군사와 외교 같은 외치를 말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한 대목을 함께 살펴보도록 하시지요.
무후(주-오기吳起를 등용한 중국 전국시대 위魏나라 문후의 아들. 하지만 참언을 듣고 오기를 불신하여 오기는 초나라로 간다)가 말하였다.
"진영을 반드시 안정되게 하고 반드시 견고하게 지키고 싸움에서 반드시 승리하는 방도를 듣기 원하노라."
오기가 대답하였다.
"지금 당장 볼 수도 있는데, 어찌 다만 듣는 것뿐이겠습니까. 임금이 어진 자를 윗자리에 있게 하고 못나고 어리석은 자를 아랫자리에 있게 하면, 진영이 이미 안정된 것입니다. 백성들이 농지와 가택을 편안히 여기고 책임자를 친밀히 사랑하면, 이미 견고하게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백성들이 모두 우리 임금을 옳게 여기고 이웃 나라를 그르다고 여기면, 싸움에 이미 승리한 것입니다."
- 오기 지음, 성백효 옮김, 『오자병법』, (사)전통문화연구회, 2016, 81p.
즉, 당시의 외교와 군사의 문제를 두고 왕이 오기에게 승리할 수 있는 방도를 묻자 오기는 "너님이 일단 나라를 평안하게 다스려서 민심을 얻고 관리를 능력에 따라 쓴다면 백성들이 알아서 따르니까 이미 이긴 거나 다름 없다"고 말한 겁니다. 나라가 안정되고 백성들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무슨 외교며 군사를 논할 것이라는 말과 같습니다. 『오자병법』 역시 이 문제 이후 적에 대한 판단과 군사훈련, 장수, 전술 등의 이야기를 전개해 나갑니다.
이것은 단순히 고대의 이야기이거나, 책 속에만 존재하는 이론적인 내용이 아닙니다.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을 설명한 것입니다. 현재의 국정농단 파행이 벌어지기 전까지 우리 사회가 직면한 시사문제들을 생각해 보시면 됩니다. THAAD(고고도미사일방위체계)를 한반도에 배치할 것이냐, 그것을 들여오면 어디에 둘거냐를 두고 논쟁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기어코 미국의 대통령에 당선된 도널드 트럼프는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을 더 높여야 한다고 발언하고 다니던 시점이었지요. 중국은 좌시하지 않겠다는 태도였고, 현재는 한류의 확산을 정책적으로 제한한다는 보도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북한은 핵실험을 계속하며 국제사회를 긴장시키고 있었고, 일본은 자국의 안보를 위해 한국과 군사정보교류를 요구하던 판입니다. 군사와 외교 분야에서 좌시할 수 없는 문제들이 계속 발생하고 있었고, 우리에게는 전략적이고 신속한 판단이 요구됐던 것이지요.
전략이나 전술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손무나 오기가 말한 제1편 '내치의 문제'를 다루는 현 정권의 대응은 이해하기 어려운 것 투성이었습니다. 국정감사에 나온 국방부 장관은 THAAD(고고도미사일방위체계)문제나 KFX사업(대한민국 차세대 전투기 사업)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보였고, 성주군민은 일방적인 정부의 태도에 결사적으로 저항했습니다. 막대한 예산이 소요될 전투기 도입 사업에서도 돈은 돈대로 쓰면서 약속 받은 기술이전 등은 전혀 확보하지 못한 정황이 드러나는 등 문제가 드러나자 국민들의 의혹의 눈초리만 심해졌습니다. 이미 국민들은 이런 정책을 집행하는 정권과 그 실세들에 대한 신뢰를 잃은지 오래였고, 부당한 거래가 있을 거란 심증을 굳히게 됐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영令이 설 것이며, 국민들에게 법집행의 공정함을 납득시킬 수 있을까요?
이처럼 병법의 제1편도 해내지 못한 주제에 전략이나 전술, 작전을 논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입니다. 애꿎은 희생과 막대한 손실만 생길 뿐입니다. 심지어 외국도 인정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APEC정상회의에 황교안 국무총리가 (식물)대통령을 대행해 참석했지만 의전만 받고 돌아왔을 뿐, 한반도 정세와 관련해 외국 정상들과 대화하여 의미있는 성과를 가져오지 못한 것만 봐도 그렇습니다. 이런 마당에 한중일 정상회의에 참석하겠다는 박근혜 씨는 무슨 성과를 이뤄낼 수 있을까요? 그것보다 먼저 내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불합리한 의사결정구조를 개선하고 부적절한 인사를 개편해야 합니다. 이를 기초로 국민들이 정부를 신뢰하고 믿을 수 있도록 따뜻하면서도 공정한 정책을 만들고 집행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사회적으로도 특권과 반칙이 통하지 않도록 제도를 강화하고 캠페인 등으로 분위기를 쇄신한다면 손자가 말한 법령의 문제는 쉽게 해결될 것입니다. 수 천년 전 지어진 두 병법서는 오늘의 우리에게 이런 조언을 하고 있습니다.
정체불명의 도적들이 권력을 호가호위하며 나라를 좀먹었음에도 불구하고, 3년 반이 넘도록 나라가 망하지 않은 것은 우리나라의 기초가 아직 튼튼하다는 반증이라고 봅니다. 앞서 로봇팔다리를 갖춘 인조인간에 비유한 바가 있지요. 문제는 그 팔과 다리를 효과적으로 쓸 수 있는 두뇌, 즉 소프트웨어가 너무 구식이라는데 있습니다. 개발독재시절을 향수하거나 미신 따위를 신봉하는 386컴퓨터 수준으로는 고도화된 현대의 문제를 제대로 처리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국민들이 소프트웨어 교체를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너무나 온당하고 합리적인 요구입니다. 그리고 '민심은 천심'이라는 말처럼, 끝내 관철되고 말테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