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루야마 겐지 지음,『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바다출판사,2013
정유년丁酉年 새해가 밝았습니다. 먼저 다사다난했던 2016년을 무사히 보내신 독자님들께 수고하셨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주변을 봤을 때 누구하나 편안히 지낸 분이 없었기에 노고가 많으셨으리라 생각합니다. 2017년에는 더 나아질 거란 희망의 말씀을 전하면서 오늘의 책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2016년, 그 전의 2015년, 그리고 2014년. 또 그 이전까지 회상해 봅시다. 내가 그리고 결정한 삶을 살아오셨는지요? 아니면 어딘지도 모르는 길을 파도에 떠밀리듯 살아오셨는지요? 지난 시간을 반추 해봤을 때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이 드셨다면 2017년 오늘은 새로운 다짐을 해봤으면 합니다. 우연이나 남의 의사에 내 삶을 내맡기는 부자유不自由를 넘어 진짜 내인생을 살아가는 자유인의 첫 날로써 말입니다.
마루야마 겐지丸山健二의 『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는 오늘 같은 날 소개해 드리기 좋은 책입니다. 지친 독자님들을 위한 힐링이나 멘토링 관련 서적을 소개할까 하다가 제목부터 거친 『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를 선택한 이유는 간단합니다. 여러분이 살아갈 2017년 역시 그 이전들과 거의 비슷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힘들고 팍팍할테지요. 힐링이나 멘토링으로 이런 문제를 해결했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그런 책쓰고 강연다니는 사람들의 주머니 사정을 해결했을 뿐입니다.
자신의 문제에 대한 답은 여러분 스스로 가지고 계시죠. 그 답을 찾기 위해서 보다 냉정하게 나를 돌아보고 세상과 인간에 대해 좀 더 공부해 보는 편이 낫습니다. 안마만 받아서는 근력이 늘지 않습니다. 근육통을 겪으며 운동해서 단련해야 할 뿐이죠. 자유인을 향한 길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생각이나 의견, 관점은 사실 알고보면 남의 것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대기업 법인세 올린다고 하면 별로 상관도 없는 동네 치킨집 서민 사장님이 더 열을 내며 반대하는 것처럼 말이죠. 스스로 인간과 세상을 보는 식견이 없으니 남의 주장이나 의견을 주워다가 마치 제 생각처럼 둘러대는 겁니다. 이런 태도는 결코 자신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습니다. 내 자유를 보장받는데도 별도움이 되지 않죠. 인생이 헛헛하고 주머니는 가벼운 이유가 바로 이겁니다.
그래서 스스로 판단하고 삶을 꾸려가는 자유인으로 가는 첫 걸음은 기존에 물들었던 고정관념에서 탈피하는 것입니다. 소위 '당연하다'고 믿고 살아왔던 것들을 다시 한 번 의심해 보는 것입니다. 진짜 그것이 당연했는지 말이죠. 마루야마 겐지가 지적하는 국가와 가족, 사회, 인간에 대한 생각과 조언들은 기본적으로 이런 부분을 지적합니다.
부모의 사랑에 거짓이 없다고 믿는 것은 부모 자신 뿐이다.
- 마루야마 겐지 지음, 김난주 옮김,『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 바다출판사, 2013, 20p.
그 어떤 국가도 불특정 다수의 것이 아니다. 듣기 좋은 그 어떤 말로 둘러대 본들 결국은 특정 소수의 것이다.
- 같은 책, 51p.
뜨거운 모성애를 다룬 영화나 드라마에 익숙한 우리 문화에서 위와 같은 작가의 지적은 지지 받기 어려습니다. 어머니의 희생, 아버지의 묵묵한 헌신 이런 이미지로 포장된 부모의 사랑에 대해 의심한다면 당장 불효자 낙인이 찍힐테니까요. 국가에 대한 관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나라에 대한 충성을 미덕으로 여기는 한국 사회에서 마루야마 겐지 같은 소리를 했다가는 당장 '매국노' 소리 듣기 십상일 겁니다.
하지만 생각할 자유는 있으니 냉정하게 살펴보도록 합시다. 효孝와 충忠이라는 전통적인 수직질서가 우리를 행복하게 했나요? 행복했다면 왜 부모자식 간의 갈등이 사회문제가 되고, 국민들이 조국을 등지고 해외로 이민하고자 하는 것인지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뭔가에 의해 부자유스럽고 제약을 받고 댓가없는 희생을 요구받았다면 행복하다고 할 수 없겠지요. 그런 생각이 들었을 때 비로소 사람은 불만을 느끼고 상황에서 벗어나거나 바꾸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당연하다'는 명제 앞에서 무너지고 남들의 시선 앞에서 또다시 좌절합니다. 만족스럽지 않고 자유롭지 않아도 그렇게 '당연하게' 사는 거지요.
보통 그래서 적절히 자유를 포기하고 타협하고 삽니다. 명분도 실리도 잃고 싶지 않은 것이죠. 예를 들면 자신의 일상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차지하는 '일하는 시간'을 선택하는 태도가 그렇습니다. 적성도 안맞고 조직내 스트레스로 힘들기 때문에 퇴근시간만 기다리는 직장인들이 많습니다. 사회생활이 보통 다 그렇다는 그럴 듯한 위로와 충고 덕분에 '남들 다 하듯이' 당연하게 삽니다.
원하는 일은 아니지만 돈은 그 일로 벌고, 취미에 몰두하는 삶을 선택하는 자도 많다. 하지만 취미는 어디까지나 취미일 뿐이다. 일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덜고 기분 전환을 위한 것, 그 이상은 아니다.
그런 중용적인 선택은 본인이 생각하는 만큼 현명한 것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남의 밑에서 일한다는 점에는 조금도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남의 손에 급소를 내준 인생은 인생이라 할 수 없다.
- 마루야마 겐지 지음, 김난주 옮김,『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 바다출판사, 2013, 100p.
위에서 언급했던 부모와 자식의 관계, 국가와 나의 관계, 사회와 나의 관계를 통해 꾸준하게 제기되는 작가의 공통적인 지적은 바로 '의사의 결정이 누구에 의해 이뤄졌냐'에 있다고 봅니다. 장가를 든 뒤에 갑자가 효자가 돼서 아내에게 시부모 효도를 요구하는 친구의 모습, 누구보다 애국자였지만 지금은 국가가 해준게 뭐냐며 투덜대는 친구의 모습, 대기업에 근무하지만 취미와 여가생활에 급여의 대부분을 쏟아부으며 간신히 버티느라 저축이 하나도 없다는 친구 등 다양한 모습이 머리 속에 스쳐지나갑니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하나같이 오롯이 자신의 판단과 결정으로 사는 인물들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직도 부모와 주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판단의 상수로 두고 있는 사람들이죠. 명분은 좋습니다. 이미 많은 이들이 그래왔듯이 '당연한 명분들'이 너무나 많으니까요. 그래서 도덕적으로 혹은 윤리적으로 안전해졌는지는 모르겠으나 만나기만 하면 힘들다고 하소연 합니다. 자신의 선택에 명분이었던 이유가 사실 자신이 원하는 이유가 아니었다는 반증이 아닐까 싶습니다.
길들여지지 않은 말은 재갈만 가까이 가져가도 갈기를 곤두세우고 땅바닥을 발로 걷어차며 맹렬하게 발버둥 치는 반면 길들여진 말은 채찍과 박차를 참을성 있게 견디는 것처럼, 문명인이 불평 없이 받아들이는 멍에에 야만인은 절대로 그의 머리를 숙이지 않는다. 그처럼 야만인은 평화로운 예속 상태보다는 격동적인 자유를 택한다.
- 장 자크 루소 지음, 김중현 옮김, 『인간 불평등 기원론』, 펭귄클래식코리아, 2010, 293~294pp.
루소는 자연상태에서 살던 야만인과 문명사회에서 살아가는 오늘날의 인간들을 이렇게 비교합니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받아들이고 사는 많은 것들, 즉 위에서 언급한 효도나 애국, 그리고 사회생활의 스트레스 같은 것들이 원래 인간에게는 존재하지 않던 멍에라는 것이지요. 우리가 자연스럽게 타협하고 받아들이는 평화로운 예속에서 벗어나는 것이 진정한 자유로 가는 첩경이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인간 불평등 기원론』에서 루소가 보여준 통찰은 『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에서 마루야마 겐지가 보여주는 그것과 매우 흡사합니다. 시대와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객관적인 진리는 비슷하니까요. 마루야마 겐지는 그래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느냐에 대해서도 독설을 섞은 조언을 멈추지 않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그 이야기까지는 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자유를 되찾기 위해서 당연한 것들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작은 행동으로 옮기는 것 하나만으로도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 결정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의 삶이 어렵다면 현재의 나를 둘러싸고 있는 조건과 환경들을 둘러봄이 옳습니다. 그것들이 나를 구속하고 통제하려 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익숙한 '당연함'에 쉽게 굴복하기 때문에 "아니요"라고 거부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조건과 환경을 바꾸기는 요원하고 지금의 이 답답한 상황은 계속 되지요. 이런 끝에 죽을 날이 다 되면 "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고 말한다는 게 마루야마 겐지의 말입니다. 2017년에도 2018년에도 2019년에도 말이죠.
2017년부터 자유인으로 살기로 마음 먹었다면 지금 필요한 것은 용기勇氣입니다. 문명사회에서 나의 인생을 오롯하게 살기 위해서는 필수불가결한 덕목입니다. 2017년 한 해 용감하게 보내시기를 바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