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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이 큐레이션 Mar 21. 2016

하늘 위에서 즐기는 명상

저는 날아올랐고, 이내 가라앉았습니다.



저는 무언가를 타는 행위를 좋아합니다.
기차든, 배든, 비행기든 그 속에 올라타기만 하면 어디로든 가기 때문입니다.

뭐든지 귀찮은 저에게 무언가 탄다는 것은 아무것도 안 해도 아무데나 도착하게 된다는 것. 무엇도 하지 않았는데 어느새 새로운 땅에 발을 딛게 되는 것. 곧 고생인지 휴가인지 모를 여행의 시작을 앞두고 마음껏 여유를 부리는 시간입니다.



비행기가 이륙하기 전, 땅에서 최대치의 속력을 낼 때 저는 아무도 모르게 속으로 소리를 지릅니다. 왠지 모를 떨림과 설렘이 뒤섞인채로요.


저만 그런가요? 무언가 타고 이동할 때면 자연스럽게 내면에 집중하게 됩니다. ‘내면’이래 봤자 탈 것에서 내리는 순간 까마득히 잊혀질 ‘잡생각’이 대부분이지만 저는 그 시간을 꽤 좋아합니다. 신기하지 않나요. 수많은 타인들과 좁은 공간에 다닥다닥 붙어있으면서도 마치 혼자인 것처럼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이.

비행기는 저에게 가장 비싸고 특별한 명상 장소입니다. 비행기에 착석하는 순간 외부와 완전히 차단됐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이륙을 위해 세상과의 유일한 소통수단인 휴대폰까지 종료하면 저는 속세를 떠난 스님과 같은 마음이 됩니다.

세상과 완벽히 단절된 저는 갑작스레 찾아온 침묵에 잠시간 어색한 표정으로 허공을 바라보지만 이내 승객들의 웅성거림과 승무원들의 안내, 마침내 시작되는 비행기의 거대한 엔진소리에 흡수됩니다.
저음의 규칙적인 엔진소리와 의미를 알 수 없는 목소리들이 뒤섞이면 훌륭한 명상음악이 됩니다. 가끔 명상음악을 찢고 나오는 소음들이 있긴 하지만 그럴 땐 비행기 안에 비치된 헤드폰을 씁니다.


어두침침하고 기내 안은 혼자만의 세상에 빠지기에 충분합니다. 설령 바로 뒤에 앉은 아이가 제 의자를 발로 툭툭 차더라도요.


비행기에서는 두 가지의 명상을 즐길 수 있습니다. 기내에서 유일하게 세상 밖을 감상할 수 있는 창가 자리와 그렇지 않은 자리에서의 명상입니다. 장거리 비행에서의 창가자리는 화장실이 가고 싶을 때마다 고역이지만 한 시간 내외의 국내선을 탈 때의 창가 자리는 최고의 명당입니다.

창가자리에 앉지 못했을 때는 주로 챙겨온 주황색 방음 귀마개를 손으로 조물 거리다가 기내가 어두침침해지자마자 귓구멍에 꾹 쑤셔 넣습니다. 손가락 한마디만한 귀마개일 뿐인데 그걸 끼는 순간 저는 순식간에 혼자만의 세상으로 떨어집니다.

당장 내 옆에 누가 있건 간에 이제부터는 완전히 나만의 세상인 겁니다. 여기서는 누군가로부터 전화가 올 일도, 제가 할 수도 없습니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서야 저에게 말을 거는 일도 없겠지요. 저는 그 단절됨을 마음껏 즐깁니다. 군중 속에서 느끼는 ‘홀로됨’은 생각보다 안정적입니다.

누구도 저를 알지 못하고, 그래서 상관하지 않지만 제가 혹시라도 경련을 일으키거나 비행기가 착륙했는데도 여전히 자고 있다면 옆 승객이 소리라도 쳐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뭔가 급박한 상황이 생겼을 때, 그래서 혼자 있는 것이 무서워질 때 내 귀의 귀마개만 뽑아버리면 저는 다시 사람들 곁으로 흡수될 수 있다는 안정감 말예요.


분명 방금 전까지 밟고 서 있었던 땅이 점이 되더니, 이내 바다가 펼쳐집니다. 저는 그렇게 순식간에 망망대해를 날고 있습니다


운 좋게 국내선의 창가자리에 앉게 된 날이 있습니다. 저는 맑은 정신이었고 제가 날게 될 하늘도 맑았습니다. 새하얀 구름과 짙푸른 하늘은 선명한 색으로 존재감을 드러냈습니다.
그 날의 비행은 저에게 최고로 아름다운 기억을 선물해줬습니다. 내륙에서 섬으로 이동하는 비행기 창 밖에 얼굴을 붙인 저는 그대로 망망대해를 날았고, 이내 하얀 구름을 찢어 갈라 그 위를 올라탔습니다.

새삼스럽습니다. 점이 된 저 코딱지만 한 땅덩어리가 방금 내가 떠나온 곳이라니. 하늘 위에서 내려다 본 과거의 저는 이제는 점이 된 곳을 부지런히 돌아다니는 미물에 불과합니다.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경험은 잠시나마 사람의 그릇을 크게 만들어 줍니다. 멀리서 보면 모든 것이 비슷해 보이니까요. 크다고 생각했던 것들도 그저 상대적인 느낌이었구나, 반드시 가져야겠다고 마음먹었던 것들도 그저 욕심이었던 걸까 돌아보게 됩니다.


비행기가 구름을 뚫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얼마간의 혼돈 뒤에 펼쳐진 절경은 새로운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착각마저 들게 합니다. 지도엔 없지만 어딘가 존재하는 미지의 세상 같은.


세상 속에 있었다면 깨닫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제가 조금 더 현명하고 똑똑했더라면 굳이 떠나지 않고서도 알 수 있었겠지요. 안타깝게도 저는 전자였습니다. 어렴풋이 느끼던 것을 멀리서 보고나서야 확신했습니다. 저는 멍청한 걸까요. 아님, 다시 떠날 구실을 만드는 걸까요. 여행 혹은 떠남은 사치가 아니라 배움을 위한 것이라고 외치고 싶은 걸까요.

무엇이 더 솔직한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무언가 타고 이동하는 행위는 제게 꽤 소중한 명상의 시간이며 스스로를 돌아보는 기회입니다. 비록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현실의 열기에 금세 증발돼 버리지만요. 휘발성이 강한 명상이라 해도 그 명상들이 쌓이고 쌓이다보면 제 어딘가에 흔적이라도 남기지 않을까요. 그래서 저는 또 비행기를 탑니다.


To be continued.


 늘 부산의 야경이 아름답다고 생각했지만 떠나는 비행기에서 바라본 모습은 어쩐지 더욱 애틋하게 느껴졌습니다. 내가 다시 돌아올 곳이 이토록 반짝이는 곳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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