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다이어트는 내 의지가 아닌 것.
불과 5개월 전, 나는 163cm에 44~45kg을 유지하는 유지어터였다.
치열한 취미 발레인이었고, 하루라도 몸무게를 재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 강박을 가진 사람이었다.
지난해 11월, 사랑하는 친구가 하늘나라로 떠난 후 내게 남겨진 13알의 정신과 약은 나를 배불리 했다. 포만감이 아닌 진짜 배를 부르게 했다. 배뿐 아니라 팔, 다리까지 부풀어 올랐다. 단시간에 내 몸무게는 6kg이나 쪄버렸고 내 강박은 나를 더 압박해 매일 받아들여지지 않는 몸을 보며 눈물을 흘렸다.
이제는 무엇을 위한 약인지 모를 만큼 몸무게가 내 자존감을 갉아먹고 있다.
-이 정도면 약을 끊어야 오히려 정신 건강에 이로운 게 아닐까...?
보는 사람마다 말한다
얼굴이 이전에 비해 훨씬 보기 좋다고
이전은 좀 아픈 사람 같았다고.
다 필요 없다.
내 귀에는 그저
살이 좀 붙었다는 소리로 밖에 안 들린다.
다이어트를 하고 싶다. 하지만 다이어트를 할 필요가 없는 게 나는 현재 입맛이 너무 없다.
입맛이 없는 약을 먹고 있기 때문이다.
입맛이 없어서 먹는 양이 정말 적다.
그럼에도 살이 빠지지 않는 것은 살이 빠지는 걸 방해하는 약 성분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자기 전에 먹는 13알의 약 중에 이 두 가지 약이 싸움을 하는 것 같다.
제발 입맛 없는 약이 이겨주길 바라고 있으나 여전히 살이 빠지지 않는 약이 이기고 있는 것 같다.
나는 20대 초, 술의 단맛을 보고 나서 살이 급격히 불어서 55kg라는 숫자까지 찍은 적이 있다.
그때는 내 인생 최고의 몸무게였으며 정말 나를 죽음으로 몰고 가는 스트레스를 받았다.
극단적으로 굶었고, 일주일에 제대로 된 밥 한 끼도 먹지 않았다.
술은 당연히 끊었다.
그렇게 몇 년을 보내고, 운동을 하니까 나는 43kg이라는 몸무게를 얻었다.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그로부터 43kg에서 1~2kg을 벗어나지 않고 20대 중반부터 지금까지 유지해왔다.
그런데 이 망할 약 때문에 내가 어떻게 뺀 몸무게가 다시 50kg에 육박하는 어쩌면 그것도 넘어버렸을 몸무게까지 찍어버렸으니 정말 미칠 노릇이었다. 하루하루 나를 받아들이기가 힘이 들어 울고, 남편은 그런 나에게 그저 괜찮다고만 말해 줄 뿐이다.
그리고 덤으로 젠장할 약 때문에 나는 우둘투둘한 피부까지 얻었다.
그래서 요즘 예전의 나를 알던 사람들을 만나면 나는 애써 아무렇지 않게 말한다.
-아 나 요즘 약 때문에 피부며 살이며 엉망이야. 살도 6kg이나 찌고, 피부도 엉망이고.
집에 돌아오면 이런 내가 비참하고 처량해서 마음 한구석이 뚫린 기분이다.
화장 지울 때 얼굴에 클렌징 오일을 묻혀 구석구석 얼굴을 만지면 거친 피부가 내 마음을 더욱 초라하게 만든다. 그럼 나는 눈물 젖은 세수를 한다.
그리고 나와서 속옷만 입고 전신 거울로 나를 한번 본다.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든 건지 생각해본다.
망할 약 때문이겠지.
친구의 죽음 때문이겠지.
그걸 못 버티는 내 멘탈 때문이겠지.
오늘도 일어나자마자 체중계에 올라 아슬아슬한 내 몸무게를 보며 한숨만 내 쉴 뿐이다.
더 이상 다이어트는 내 의지가 아니다.
약을 끊지 않는 이상 내 허벅지는 내 팔뚝은 내 배는 그대로 일 것이고,
나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받아들이기까지 과연 얼마나 걸리지 모르겠지만 오늘도 나는 1년 전 복근을 그럴듯하게 찍은 내 사진을 보면서 눈시울을 붉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