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트는 잘 못해도 유지는 좀 합니다
다이어트는 많은 사람들에게 피할 수 없는 숙명이자 영원히 해야 하는 숙제이다. 이 말에 격하게 공감하는 바이다. 하지만 숙명이자 숙제라고 생각하면서도 다이어트를 간절하게 혹은 열심히 해본 적은 없다. 간절할 만큼 살이 찐 적도 없고 열심히 할 만큼 모자란 몸뚱이는 아니라고 생각해서겠지. 말로는 벌써 골백번 다이어트를 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절박해야 하는 이유와 목적 그리고 의지가 나에겐 없다. 내 마음에 쏙 드는 몸뚱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럭저럭 나쁘지 않다고 여기며 살다 보니 절실한 다이어트와는 가까울 수 없었다. 이 세상에 마른 체형으로 태어나게 해 주신 부모님께 그저 감사할 따름. 그렇다고 다이어트를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간절함과 열의가 없었을 뿐, 다이어트는 피할 수 없다.
내 몸은 누군가의 눈에는 충분히 마른 몸이다. 예쁜 몸이라고 할 순 없지만 뭐 그럭저럭 적당하게 마른 몸이다. 내 눈에 그렇게 보이지 않는 게 문제라면 문제겠지. 성에 차지 않는 모자란 몸뚱이에 욕심이 자꾸만 생긴다. 그 욕심을 옷을 입을 때 점점 커지곤 하는데. 맞아, 매일 욕심이 커진다는 말이야. 옷을 더 예쁘고 다양하게 입고 싶은 욕구가 매일 나를 자극한다. 그 자극 덕분에 나는 45-48킬로그램 사이를 항상 유지한다. 50킬로그램이 넘으면 죽을 거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지금 유지 중인 몸무게가 이상적인 몸무게라면 좋았겠지만 그렇지도 않다. 내가 원하는 건 43킬로그램. 애석하게도 3이라는 숫자에 닿은 게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난다. 십 년 전이나 가능했던 꿈의 몸무게.
그렇다. 나는 체중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는 다이어터라기보다는 현재의 체중을 유지하는 유지어터에 가깝다. 나는 유지어터다.
즐겨 입던 바지가 조금 불편하게 느껴진다면 그 순간부터가 시작이다. 역시나 몸무게를 재보면 위험한 상태에 다다랐다. 조금만 방심하면 50킬로그램을 달성해 내일모레 죽을지도 모르겠다. 생의 마감이 엄습해오는 그때부터 미미하고 소심한 식단 조절을 시작한다. 나는 배고프면 극도로 예민해지는 타입이라 나 자신과 애정 하는 주변인들을 위해 굶는 건은 하지 않는다. 때때로 간헐적 단식이라는 극단적인 식사 조절을 할 때도 있긴 하지만 백수여서 가능한 일이자 백수 일 때만 가능한 일이다. 배고프면 손 하나 까딱 하는 것도 어려운데 일을 하면서 어떻게 굶어. 말도 안 된다. 간헐적 단식은 안식년을 지내고 있는 작년과 올해에만 가능한 일으로 이후 내 인생엔 없을 예정.
엄마가 들여놓은 습관 덕분에 고봉밥을 먹는 나이지만 이때만큼은 과감히 2/3만 먹는다. 밥을 많이 먹는 나에겐 과감한 선택이다. 반만 먹으면 기력 없어서 못 움직여서 이 정도는 먹어줘야 한다. 반찬을 덜 멀었으면 덜 먹었지 밥은 양껏 먹어주는 게 인지상정. 다행히도 과자를 포함한 군것질을 좋아하지 않고 달달한 음식도 별로라 디저트의 디자도 모른다. 다행히도 커피마저 쓰디쓴 저칼로리의 아메리카노만 마신다. 정말 다행히도 고기와 튀긴 음식도 선호하지 않는다. 아차, 근데 나 탄수화물 사랑하지? 고기는 안 먹고살 수 있지만 밀가루는 포기할 수 없다. 고기는 안 먹어도 라면은 먹어야 한다. 그래도 다이어트에 대한 예의는 차리겠다며 100칼로리 정도 낮은 건면을 먹는다. 아, 다행인 게 아녔네.
다이어트의 꽃은 운동이다. 식단 조절이 팔할이라고 하지만 역시 운동을 해야 제대로 된 다이어트를 하는 것 같다. 이렇게 말해놓고 정작 난 운동을 하지 않는다. 내로남불이라 해도 어쩔 수 없다. 운동을 좋아하지 않으니까. 운동을 좋아해서 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만은 난 정말 운동에 흥미가 없다. 운동이 재밌다고 하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가 없다. 술이 맛없다고 하는 건 이해해줄 수 있지만 운동이 재밌다고 하는 건 당최 이해가 어렵다. 내가 운동을 좋아하게 된다면 이해가 가능해지겠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삼십 년의 인생 동안 헬스장 근처에도 가본 적이 없었는데 새로 이사 간 아파트 2층에 있다길래 엘리베이터를 타고 어설픈 걸음걸이로 어기적거리며 가봤다. 서른한 살이 되고서야 헬스장에 처음 가보다니, 서른한 살의 헬스장 첫 경험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게 했다. 요가와 발레보다 더 따분한 운동은 헬스였다. 따분함의 극치. 뭐, 내가 뭣도 모르는 운알못이라 그럴 수도 있겠지만 따분하고 지겹고 지루하고.. 뭐 이런 비슷한 표현들을 막 붙이고 싶다.
운동은 참 따분하고 재미없는 행위이지만 그럼에도 등산과 산책은 자신 있게 좋아한다. 아쉽게도 등산은 시간과 장소, 날씨에 구애받는 운동이라 자주 할 수 없어 아쉽다. 많은 것들이 충족되어야 할 수 있는 게 등산인지라, 늘 등산에 대한 만족도가 궁하다.
그에 비하면 산책은 구애받는 것 없다. 날씨가 좋으면 좋은 대로, 좋지 않으면 좋지 않은 대로. 비가 오던 눈이 오던 내 마음이 이끄는 대로 걸으면 된다. 집 근처 공원의 매일 다른 미묘함을 찾으며 걷고, 지하철 한 정거장 전에 내려 이어폰을 귀에 꽂은 채 흥얼거리며 걷는다. 술 한잔 마시고 집에 들어가기 아쉬운 날엔 편의점에서 산 맥주 한 캔을 벗 삼아 터벅터벅 동네를 어슬렁거리다 들어간다. 갑자기 여기서 맥주가 왜 나와? 역시 나는 유지어터이다. 현상유지!
식이조절과 운동이라 말하기 부끄럽지만 이와 같은 행위를 하지 않아도 의도치 않게 살이 빠지는 순간이 있다. 학창 시절 선생님들의 납득할 수 없는 무력에 스트레스 받아 살이 빠졌고, 입시를 준비하면서 내내 서서 그림을 그리는 바람에 살이 빠졌다. 살이 빠지긴 했으나 혈액순환이 원활하지 못했던 탓에 다리는 부었다. 몹쓸 부종. 신입생 시절엔 인생 처음으로 접하는 달디 단 술의 세계에 빠져 살이 물올라있었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것도 잠시였지, 졸업을 앞둔 무렵 갑자기 퍼져버린 이상한 소문에 속이 상할 대로 상해 살이 쪽 빠졌다. 내 인생은 내가 살찌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것인지, 자꾸만 극한의 스트레스가 찾아왔다. 그래, 사실 내가 예민해서 그래. 나도 알고 있어.
야속하게도 예상대로 직장생활을 시작하고나서 이는 극에 달했다. 매일 12시간 이상 회사에 있어도 일이 끝나지 않을 만큼 일이 많았고 동료와 크고 작은 말다툼도 있었다. 좋은 게 좋은 거라 생각하고 넘어가면 됐는데 그 시절 날카로웠던 나는 그녀와 기싸움에서 지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왜 그랬을까.
여기서 끝나면 좋으련만 나에게 기대가 많았던 직장 상사는 성과와 더불어 관리자로써 자질에 대해 끊임없이 요구했고 나는 그의 촉망에 부응하기 위해 다분히 노력했다. 그때 내 나이는 고작 스물 넷이었다. 그는 그토록 어린 나에게 왜 그리도 가혹한 기대감을 주었을까. 모니터에 비친 내 모습은 하루가 다르게 야위어가고 있었고 그 참담한 얼굴이 명확하게 느껴지자 결국 다 내려놓게 되더라.
이를 극도의 스트레스라 말하고 마음고생이라 읽는다. 가장 원하지 않는 다이어트의 형태이자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다이어트.
나는 엄마와 많은 부분이 닮았다. 얼굴형과 이목구비가 똑같고 목소리와 말투가 비슷하다. 성격은 정말 똑같아서 같다는 이유로 싸우기도 하고 서로를 이해하기도 한다. 많은 것들 중 가장 크게 닮은 건 체형이다. 나는 엄마의 체형을 그대로 빼닮았다. 엄마와 내가 같이 목욕탕에 갈 때마다 사람들이 그랬다. 어쩜 그렇게 몸이 똑같냐고. 엄마는 나와 같은 체형이자 같은 체질이었다. 마른 상체에 비해 튼실한 하체가 특히나 닮았고 살이 잘 찌지 않는 것도 닮았었다. 그래, 과거형이지.
엄마는 예전에 비해 살이 조금 붙었다. 나는 엄마의 그 모습이 보기 좋은데 본인은 싫다며 운동을 열심히 하신다. 전문적으로 하시기보단 강아지와 산책을 즐기고 산을 타신다. 쓰고 보니 이 것도 나랑 닮았군. 50대인 엄마는 30대인 나보다 부지런히 바쁘게 움직이는 하루를 보낸다. 아마 엄마도 나름의 유지어터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겠지. 엄마를 보면 내 몸도 언제까지나 마냥 마른 체형이지 않을 거란 생각을 한다. 문득 당혹스럽고 두렵기도 하지만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그런 변화 또한 잘 수용하고 거기에 맞춰 익숙해지는 것이 아닐까 하며 스리슬쩍 합리화를 시켜본다. 괜찮아, 살 좀 찔 수도 있는 거지 뭐.
앞으로도 나는 간절하고 절실하게 또는 열심히 다이어트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엄마도 그랬고 나도 그럴 것이다. 늘 그래 왔던 것처럼 현재를 유지하면서 살아가겠지. 꾸준히라기보단 적당한 관리를 유지하며 사는 삶이 되겠노라, 나는 그렇게 예상한다. 물론 늘 버릇처럼 말하는 죽음의 50킬로그램을 맞이한다면 그땐 절실하게 다이어트를 하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괜찮아, 살 좀 찌면 어때. 그럼 55킬로그램 넘으면 죽는 걸로 하자. 더는 어렵고 일단은 그렇게 하기로 해 우리.
유지어터는 오늘도 유지하고 내일도 유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