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까지 이따위로 살 텐가?
내 유튜브 피드에는 자기 계발 영상들로 가득하다. 영상 하나에 내 다짐은 굳세어져갔고, 미래는 밝아졌다.
"그래 진짜 이제부터는 다르게 살아보는 거야." 매번 다짐만 그득했다. 그런데 이제는 대리만족하기 위해 영상을 보는 게 아닌가 싶었다. 영상 보는 것만으로 내가 뭔가를 했다는 안도감 때문에.
서울로 가는 기차 안이었다. 브런치북으로 당선된 책 하나를 보게 되었다. 제목은 '언제까지 이따위로 살 텐가?' 마음에 들었다. 세상이 시킨대로 살아온 모범생 언니는 결국 백수가 되었고, 세상의 흐름에 반대로 살아온 동생은 결국 잘나가는 애니메이션 일러스트레이터가 되었다. 이 상황을 두고 억울한(?) 언니가 쓴 모범생 각성기. 다시 한번 마음에 들었다. 나는 모범생은 아니지만 언니처럼 공부할 때 했고, 성적 맞춰 대학에 갔고, 부모님이 대학만 졸업하고 하고 싶은 거 다 해라고 해서 졸업했는데. 그때는 두드러지게 하고 싶은 게 없었던 거 같다. 그래서 취직을 했다. 그리고 결혼을 했다. 그리고 지금 나는 자기 계발 유튜버들 사이에서 허덕이고 있고, 모범생이었던 언니의 모습에 이입하고 있었다.
7개월간 휴직 생활을 하는 동안 자신의 역량이 무엇인지, 그래서 자기가 뭘 하고 싶은지까지 알아내서 작은 성취라도 이룬 모범생 언니. 박수 보내드립니다. 그리고 결국 브런치북 수상으로 물성을 가진 책으로 세상에 자신만의 글을 내보인 진정한 위너이신 분. 나는 이런 분을 보면 선택받은 사람이라고 생각되었다. 결국 나는 선택받지 못한 사람. 그런데 진짜 중요한 건?
너가 선택받기 위해 어떤 노력이라도 했었니?
또 동기부여 유튜브 영상 하나 보고 그걸로 끝냈던 어제처럼 오늘도 책 한 권을 반나절 만에 다 읽고 마음속으로 다짐만 하고 끝내는 하루가 되겠지 싶었다. 그런데 이제 이 지긋지긋한 고리를 끝내고 싶었다. 정말 지긋지긋했다. 대단한 뭔가가 되고 싶다는 게 아니었다. 그런데 이렇다 할 나만의 결과를 한 번쯤은 내보고 싶었다.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책에서 작가가 했던 것처럼 내가 흥미를 느꼈던 것, 잘하는 것을 쭉 나열해 보기로 했다.
웬걸. 흥미를 느꼈던 건 곧잘 적었다. 그런데 내가 잘하는 건? 겨우 하나 적었다. 분명 더 있을 텐데.. 도저히 생각나지 않았다. 평소 끊임없이 자기 검열 속에 살았던 나는 스스로 생각하는 잘하는 게 겨우 하나 있는 사람이었다. 이러니 내가 뭘 어떻게 결과를 낼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겠나. 아무리 생각해도 한 개 이후에는 여백이었다.
그리고 그 다음장에는 내가 이제까지 경험했던 경력과 그로 인해 얻은 노하우 그리고 노하우를 통해 얻은 즐거움을 쭉 나열해 봤다. 그랬더니 하나로 귀결되는 건 나는 어떤 경험을 통해서든 하나의 컨텐츠로 완성되는 즐거움을 이제까지 추구해왔던 것이다. 돌이켜보면 내가 글을 쓰는 이유도, 유튜브를 하는 이유도 다 그런 이유에서가 아니었을까.
뭔가를 창작해 내서 컨텐츠로 내 역량을 펼쳐야겠다는 결론은 났다. 하지만 아직 무엇으로 그 컨텐츠를 채워가야 할지는 미지수였다. 사실 글쓰기도 좋아하고, 그림 그리기도 좋아하고, 영상 편집도 좋아했다. 이 세 개를 합치면 가장 좋겠지만, 이미 그렇게 하고 있는 유튜버가 있었다. 이연이라는 유튜버가 음성(글), 그림, 영상으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지 않았던가. 물론 나는 동기부여 유튜버가 될 생각은 없었지만. 그리고 나는 이연 유튜버처럼 그림을 잘 그리지도 못했다. 그리고 내가 글쓰기에 뚜렷한 소질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 책의 작가는 글쓰기에 소질이 있는 게 분명했다. 내가 반나절만에 한 권의 책을 다 읽은 경험은 처음이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술술 읽히는 글은 처음이었다.
나에게 이 작가처럼 7개월의 휴직 기간은 없겠지만, 나는 꽤 널널한 회사에 자유롭게 시간을 쓸 수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틈틈이 내 진로를 탐구할 수 있고, 이번만큼은 다짐만으로 끝내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미 그 첫발을 디뎠다고 생각했다. 2030 사춘기 분들 모두 이 답이 없을 것만 같은 사춘기를 잘 극복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