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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디고 Aug 31. 2019

너구리는 진정 실패자일 뿐인가

이니시에이션 소설로서의 「고마워, 과연 너구리야

박민규의 단편 소설 「고마워, 과연 너구리야」는 2004년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문체나 내용 등이 매우 독특하고 환상적이다. 물론 이미 완성되어있는 ‘너구리 게임‘이라는 텍스트를 인용했다는 점과 동물과 인간이 교감하는 내용은 이미 많이 있어왔기 때문에 ‘이전에는 없던 새로운 것을 창조했다’, ‘독창적이다’라고는 할 수는 없겠지만 ‘매우 흥미롭다’는 평가는 분명히 내릴 수 있는 듯하다. 박민규의 특이한 문단나누기와 문체, 뜬금없는 UFO의 등장, 너구리와 인간의 동일시 등 「고마워, 과연 너구리야」에서 다룰만한 소재들은 다양하지만 나는 그 중에서 이니시에이션 소설(Initiation Story)로서의 「고마워, 과연 너구리야」를 다루고자 한다.


이니시에이션 소설이란 간단하게 말해 자아와 세계에 대해 무지하거나 미성숙기의 주인공이 일련의 경험과 시련을 통해 성숙한 인간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그린 소설이다. 원래 ‘이니시에이션(Initiation)’이란 인류학적인 용어로서 ‘통과제의’의 문턱에 들어선다는 뜻이다. 인류학에 따르면, 유년이나 사춘기에서 성인사회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일련의 고통스런 의식을 치르게 되는데, 이를 ‘통과제의’라고 말한다.


「고마워, 과연 너구리야」는 이니시에이션 소설의 기본 구조를 그대로 따르고 있다. 대학교 오리엔테이션에서의 긴 연설이 갑자기 짜증스러워 ‘닥쳐 개새끼야!’라고 소리를 지른 덕택에 학교에서 꽤 알아주는 록그룹이 된 주인공은, 스스로가 그 때를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좋은 시절이었다. 욕만 잘해도 로커가 되던 시절이었고,
그저 두들기면 사람들의 열광하던 시절이었다. 돌이켜보면, 마치 거짓말 같다.



조금의 걸러냄도 없이 그대로 분출된 분노로 인기를 살 수 있었던 그 시절은 분명히 ‘미성숙기’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주인공은 ‘이상하게도 군대를 다녀오니 매사가 긍정적으로 여겨졌다. 짜증은 눈 녹듯 사라지고, 나는 취업을 준비하는 성실한 학생으로 변모’했다. 한국에서 보통 성인남성은 ‘군대’라는 과정을 거쳐야지만 사회생활로 들어설 수 있으므로 박민규는 작품에서 군대를 하나의 터닝포인트, 전환점으로 삼은 듯하다. 그래서 군대를 다녀온 후에야 주인공에게는 성인사회로 진입하기 위한 일련의 고통스런 의식, ‘통과제의’가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통과제의의 장소, 주인공이 인턴 생활을 하고 있는 그 직장은 지독히도 엉망인 곳이었다.


세상은 엉망이다. 너구리로 변해가는 인간이 있는가 하면,
회사의 인사권을 한 손에 쥔 남색가가 있고,
그 인사권이 무서워 허벅지를 내주고도 묵묵히 참고 있는 록그룹의 싱어가 있다.
더이상은 나쁠 게 없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통과제의의 과정을 통해 주인공은 육체적인 시련과 고통, 신체 어느 한 부분의 제거, 금기와 집단적인 신념에 대한 일련의 고통스런 체험을 통과함으로써 비로소 성인사회의 구성원으로서의 자격을 부여받으며 그 사회에 재편입하게 되는데, 박민규는 그것을 바로 ‘너구리 게임’으로 표현하고 있다.


손팀장은 소설 첫 부분에 주인공을 불러 너구리 게임을 설치해달라고 부탁한다. 그리고 주인공은 그 너구리 게임을 ‘오락은 대개 너구리를 움직여 무슨 과일인지를 따먹고, 또 무슨 벌레 같은 것들이 잡으러 오면 도망가고, 그러다 떨어져 압정에 찍혀 죽는, 터무니없는 것이었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너구리 게임은 손팀장이 어렸을 적에 하던 게임이고, 그때는 애들이 너나할 것 없이 다들 너구리에 빠져 있었지만, 현재 주인공에게 ‘너구리 게임’은 단지 ‘터무니없는 것’이다.


과거야 어쨋던 간에, 지금은 너구리와 인턴사원이 친하다는 얘기 따위
들어본 적도 없다. 확실히, 말이다.


주인공이 너구리 ‘따위’의 고민을 늘어놓자 B는 “그건 <즐거움의 문제>가 아닐까 싶어.”라고 대답한다. B의 대답과 위의 인용된 주인공의 생각을 겹쳐보면, 너구리 게임은 통과의례의 한 과정이 된다. 미성숙했던 과거에 그들은 너구리 게임을 단지 즐거움으로 즐길 수 있었지만, 군대라는 전환점을 거쳐 성숙해지는 과정을 겪고 있는 주인공에게 너구리 게임은 단순한 즐거움이 되지 못한다. ‘육체적인 시련과 고통, 신체 어느 한 부분의 제거, 금기와 집단적인 신념에 대한 일련의 고통스런 체험’에는 즐거움의 상실이라는 과정이 포함된 것이다.


<스테이지 23>. 이 세상의 실제 이름이지


<스테이지 23>은 손팀장이 주인공을 불러 ‘이곳을 어떻게 건넜는지 도무지 기억이 안 나. 옛날엔 분명 건넜었는데 말이야 그것 참.’이라며 클리어하는 방법을 물어봤던, 도무지 깰 수 없다는 스테이지이다. 게임을 ‘재미’로만 즐길 때는 가능했지만 지금은 불가능 하다는 것을 통해 현재의 너구리 게임은 그때와는 다른 의미의 게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주인공이 너구리게임을 설치해 준 후 손팀장은 하루 종일을 너구리 게임에 빠져 살았고, 급격히 살이 쪘으며, 눈 주변에 거무스름한 기미 같은 것이 잔뜩 끼어서 온전한 ‘너구리’가 되었고 결국 회사를 떠났다.


<스테이지 23>을 클리어 하는 순간 온전히 너구리가 되어버리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손팀장이 <스테이지 23>을 클리어 했는지 아닌지는 확실하게 나와 있지 않지만 B는 깼을 거라고 추측하고 있다. 어린 시절, ‘즐거움’을 간직하고 있을 때 클리어할 수 있었던 <스테이지23>을 다시 깬다는 것은 즉 다시 그 상태로 돌아갔다는 것을 의미한다. <스테이지 23>을 클리어하는 동시에 손팀장은 잃어버렸던 ‘즐거움’을 다시 획득하게 된다. 그러나 ‘즐거움’을 획득하는 동시에 사회로부터 퇴출당한다. 따라서 손팀장은 너구리가 되어 회사에서 쫓겨나게 된다.


그렇다면 이 작품에서 말하는 ‘너구리’는 대체 무엇을 의미할까? B의 말대로 ‘즐거움’이다. 또한 사회로 진입하기 위해, 통과제의를 통과하며 잃게 되는 무엇들이다. 그것은 ‘즐거움’이며 순수함이고 동심이며, 공적이지 않고 사적인 문제들이다. 그래서 소설에 등장하는 “너구리”는 농가를 축내는 ‘산업사회의 훼방꾼’이기도 하다.


온통 너구리가 사람들의 혼을 빼놓는 거야. 그럼 그 텃밭 1팀의 팀장은 어땠겠어?
너구릴 죽이고 싶었겠지. 그 미움의 감정이 오래도록 누적이 된 거야.
그리고 세월이 흘렀지. 자 후기자본주의의 산업사회가 됐어.
세상을 휘어잡은 것은 텃밭 1팀의 팀장 같은 놈들이지.


여기서 산업사회는 일반적인 사회생활을 의미한다. 그곳은 공동체적 사회이며 전문화된 세계이다. 이 세계는 ‘즐거움’과 같은 사적인 문제는 묵살하며 능률과 효율, 공적인 문제들을 중요시한다.


B는 이어서 “너구리 광견병 따위는 애초에 없었던 거니까. 그건 교묘한 작전이었어. 그런 한편으론 또 너구리를 보호한 것이 놈들이니까. 멸종 위기의 동물로 말이야.”, “사람들에게 너구리는 원래 희귀한 것이라는 인식을 주기 위해서지.”, “또 혹시나 너구릴 만났다 하더라도 절대 만져서는 안 되는 것으로 각인시킨 거지.”라 말한다.


후기자본주의의 ‘산업사회’는 ‘조작된 너구리 광견병’과 같은 말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산업사회의 너구리 광견병 조작 작전은 너구리를 멸해서 희귀한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산업사회의 사람들은 조작된 너구리 광견병 때문에 너구리를 잃게 됐으며 또 그 너구리는 희귀한 것으로 조작되었기 때문에 너구리와 함께하지 못하고 ‘포기할 수밖에’ 없거나, 너구리인 채로 ‘도망 다닐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방법은 두 가지야. 너구리인 채로 도망을 다니거나, 아니면 쉽게 너구릴 포기하거나.
너의 팀장은 아마도 너구릴 숨긴 채 살아온 인간이었을 거야. 물론 힘들었을 테지.


여기서 통과의례를 통과하고 사회로 진입하는 인물유형과 ‘실패자’의 인물유형이 나뉜다. 위의 인용된 문장으로 설명하자면 ‘너구릴 포기’한 사람이 바로 사회로 진입할 수 있는 인물이다. 주인공은 현재 너구리를 포기하는 과정에 놓여있는 것이다. 또한 ‘너구리인 채로 도망을 다니는’ 사람은 너구리를 포기하지 못한, 사회생활로 진입하지 못한 인물이다. 이들은 자신안의 너구리를 퇴출시키는 통과의례를 통과하지 못했기 때문에 ‘실패자’가 된다. 그리고 소설 속에서는 손팀장과 B가 이에 해당한다.


일단은 도망부터 다녀야겠지. 하지만 실행이 힘들 뿐 의외로 간단한 문제야.
<너구리>의 실행에는 에뮬레이터가 필요한 것이니까.


B는 “너도 곧 어떤 선택을 해야만 할 거야.” 주인공에게 조언을 해주며 “나, 실은 너구리가 될까 싶어.”라는 결정을 내린다. 통과의례를 포기한 채 너구리가 되겠다는 것은 사회 세계의 진입이 불가하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가 ‘실패자’라는 것을 뜻한다. 재미와 열정을 대변하는 ‘록밴드 그룹’을 주인공에게 제안했던 인물이라는 점과 ‘미성숙기’에 즐겼던 ‘낚시’같은 것을 항상 먼저 제안한다는 점에서 B는 너구리 그 자체이다. 손팀장이 즐거움을 상실했다가 <스테이지23>을 깨버리며 즐거움을 다시 획득한 것과는 다르게 B는 애초에 즐거움을 버리지 않은 인물이다.


그러나 이들과는 다르게 주인공은 ‘선택’에 기로에 놓여 져 있다. 또한 손팀장이 계속해서 주인공에게 “자네는 너구리와 친하잖아.”라 말할 때마다 ‘나는 너구리와 친하지 않다’고 말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주인공은 애초에 즐거움을 버리지 않은 B와는 다르게 너구리를 버릴지도 모른다는 암시를 보인다. 그리고 주인공이 너구리를 버릴지 말지,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선택은 하긴 할 것인지에 따라 작품의 결말이 어떤 종류의 작품이 될 것인지가 결정된다.


M. 마르커스에 의하면, 이니시에이션 소설은 주인공에 미친 외부로부터의 충격과 효과에 따라 잠정적 · 미완적 · 결정적인 작품으로 유형화시켜 살펴볼 수 있다. 잠정적인 이니시에이션은 주인공의 성숙과 자아 이해의 문턱에 이르기는 하지만 명확히 넘어서지 못하는 작품으로서 이러한 경험은 세계의 불확실성과 난폭성 등을 다룰 뿐 주인공을 완전한 성숙의 상태로 이끌지는 못한다. 미완적 이니시에이션은 주인공이 성숙과 자아 발견의 문턱을 넘어서기는 하지만 아직은 주인공이 세계의 확실성을 찾는 과정에 놓여 있는 경우이며, 결정적(decisive) 이니시에이션은 주인공이 성숙한 세계의 일원으로 진입하는 것을 말하는데, 이는 일반적으로 자아 발견의 경우에 해당한다.


이중에서 「고마워, 과연 너구리야」의 주인공은 바로 ‘미완적 이니시에이션’을 보여준다. 정식사원 임용자가 결정 나기 하루 전, 남색가 인사부장에게 메일을 받은 주인공은 이렇게 말한다.


부장의 메일은 바이러스를 동반한 것이었다.
내용을 확인하고 창을 닫는 즉시 프로그램 전체가 다운되었다.
아마도, 포맷을 해야겠지? 나는 담배를 꺼내 물었다. 쓸쓸했다.


여기서 말하는 ‘바이러스’는 어쩌면 너구리 광견병을 퇴치하기 위한 약일 것이다. B와 너구리 이야기를 하고 UFO가 나타나 수호천사 ‘너구리’에 대한 설명을 늘어놓을 때 부장의 메일 때문에 프로그램 전체가 다운되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포맷을 해야겠지?’ 부분을 통해, 마치 손팀장의 컴퓨터에서 세 번의 포맷을 통해 너구리가 퇴치되었던 것처럼, 주인공의 너구리 또한 퇴치되어버릴 것을, 주인공이 너구리를 퇴치하기로 마음을 다잡았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후 인사부장이 용도가 특이한 사우나로 주인공을 끌고 가 성폭행을 할 때에 주인공은 너구리는 잊은 채 “잠깐만 참으면 돼”라는 생각 하나로 버티어 낸다.


그리고 그 순간 <스테이지 23>이 눈앞에 펼쳐진 것은 왜였을까.
왜 세상은 스테이지 1에서부터 차근차근 시작되지 않는 것일까.


인사부장의 성폭행은 이니시에이션 소설로서의 「고마워, 과연 너구리야」에서 결정적인 통과의례에 해당한다. 주인공은 <스테이지 23>을 통과한 후 말없이 주저앉아 가장 뜨거운 수치의 온수를 뒤집어쓰며 혼자란 느낌에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바로 그 때, 부장의 바이러스 섞인 메일로 사라졌던, 포맷될 뻔했던 너구리가 나타난다.


등뒤의 인기척이 느껴진 것은, 돌아보니 안개처럼 자욱한 수증기 속에
여태껏 본 적 없는 크고 거대한 너구리가 이태리타올을 들고 서 있었다.


너구리는 모든 것을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주인공의 등을 밀어주었고 주인공은 편안한 마음으로 너구리에게 등을 맡긴다. 주인공이 즐거운 마음으로 일어서려는데, 너구리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비누칠’까지 해준다. 그리고 소설은 주인공의 “나는 그만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릴 뻔했지만, 결국 나란 인간은 – 그래서 울컥 뒤를 돌아보며, 겨우 이런 말이나 하는 게 고작이지만. 고마워, 과연 너구리야”라는 대사로 끝을 맺는다. 너구리가 다른 곳도 아닌 ‘등’을 밀어준다는 점에서 스스로는 불가능한 위로와 치유를 너구리가 가능하게 해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게다가 ‘비누칠’까지 해준다는 점에서 너구리는 주인공의 더럽혀진 순수성을 회복시켜준다는 의미를 지닌다.


주인공이 B와는 달리 너구리를 포기하고 일반적인 사회생활로 발을 딛으려는 순간, 일반적인 사회의 ‘통과의례’를 통과한 순간, 너구리는 주인공 눈앞에 나타나서 그를 위로하고 치유하고 회복시켜준다. 하지만 그 후에 주인공이 ‘너구리인 채로 도망’을 다닐지, ‘너구리를 포기’하고 회사의 정식 사원이 될지는 나타나 있지 않다. 통과의례는 통과했지만, 너구리가 없는, 폭력이 난무하는 세계로 진입을 할지, 포기한 채 너구리가 될 지는 나와 있지 않은 것이다. 아마 포기한다면 회사를 관두고 다시 록밴드를 꾸릴지도 모르며 B와 “함께 술을 마시고, 함께 여자를 만나고, 함께 공연을 하고, 함께 낚시를”하러 다닐 지도 모른다. 그러나 일반적인 사회로 진입하게 된다면 손팀장처럼 ‘너구릴 숨긴 채 살아가는 인간‘이 되어 결국 그 언젠가 회사에서 쫓겨나 지하로 한없이 내려가게 될 것이다. 따라서 주인공은 성숙과 자아 발견의 문턱을 넘어서기는 했지만, 아직은 세계의 확실성은 찾는 과정에 놓여있는 경우인 ’미완적 이니시에이션‘에 해당한다.


이니시에이션 소설에서는 흔히 젊은 주인공이 성숙한 세계에 도달하기 위한 상반된 세계가 전제되는데, 신화적인 낙원의 세계와 현실의 세계, 또는 순진과 성숙, 아니면 어둠과 밝음의 세계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대부분 주인공이 체험하는 현실의 세계는 죽음과 생, 선과 악의 갈등, 미와 추 등이 중심이 된다. 이니시에이션 소설은 그러므로 단순 대립 구조에 머물지 않고 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고마워, 과연 너구리야」에서는 바로 ‘너구리(실패자)의 세계’와 ‘일반 사회의 세계’가 순수와 세속, 즐거움과 맹목적인 인내,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 비전문가의 세계와 전문가의 세계 등으로 대립 구도를 띤다. 그리고 이 대비되는 세계는 앞서 말했다시피 단순한 대립 구조에 머물지 않고 각각의 가능성을 띤다.


아무리 쉬쉬해도 언젠가 인간은 세상이 엉망이란 걸 알게 된다.
아무리 쉬쉬해도 결국엔 너구리가 있다는 걸 알게 되듯이.
그래도 신이 인간을 위해 내려준 것은 결국 너구리뿐이라는 생각이야.
그것만은 확실해. 그래도 이 세상에 너구리가 있다는 걸 잊지는 마.


사회로의 진입을 위해서는 너구리를 퇴치해야하며, 인사과장의 성폭행과 같은 통과의례를 통과해야하지만 박민규는 자꾸만 ‘너구리’를 강조하며 마지막까지도 “고마워, 과연 너구리야”라고 말하며 소설을 끝맺고 있다. 그리고 이를 통해 박민규는 너구리의 가능성을 주장하는 듯하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사회에선 너구리를 ‘실패자’로 취급하지만 박민규만큼은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 결말에서 너구리가 상처받고 더럽혀진 주인공을 위로해주고 치유해준다는 점에서 박민규는 어쩌면 통과의례를 통과하고 사회로 진입한 사람들보다 ‘실패자’, 너구리를 포기하지 못한 너구리들을 더 높이 평가하고 있으며 옹호하고 있는 듯하다. 또한 그것을 넘어 ‘실패자’를 더 권유하는 것 같기도 하다.


따라서 「고마워, 과연 너구리야」는 이니시에이션 소설로서도 매우 흥미롭다. ‘실패자’가 과연 ‘실패자’인가?, ‘실패자’는 왜 비난받아야 하는가? 하는 등의 의문을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점은 한길만을 강요하는 이 사회에 대한 비판과도 같은 것이다. 현재 사회에 진입해있는 통과의례를 통과한 ‘승리자’들은 너구리를 ‘실패자’로만 간주하며 일종의 마녀사냥을 펼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세상은 변해도 이 세상에서 너구리가 소멸될 일은 없을 것이다. 단지 ‘너구리’를 대하는 태도가 변하게 될 것이다. 그 언젠가는 ‘너구리’를 ‘실패자’가 아닌 ‘또 다른 길’로 간주하게 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리고 박민규가 그 누구보다 먼저 그렇게 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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