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살 취준생의 2년간 허리치료기 1
안 믿긴다. 사람마다 통증을 느끼는 정도가 다르다는 건 뭐 그럴 수 있다. 그런데 생전 허리 한번 아파본 적 없는 사람도 MRI 검사를 하면 반 이상이 디스크에 이상소견이 나온다고? 심지어, 아프기 전후 MRI 결과가 다른 경우가 고작 4%에 불과하다니.
하지만 난 아닐 거다. 이렇게 한번 잘못 걸으면 눈물 나게 아픈데 고작 남들보다 근육이 없어서라거나 예민해서 일리가 없다. 정선근 교수님과 이경석 원장님 말이니 믿어는 보겠지만, 난 디스크든 뭐든 터져야 맞다.
다들 내게 그럴 리가 없단다. 내가 아프지 않을 이유는 백 가지였다. 그래, 아픈 게 이상하긴 했다. 난 무려 6개월을 허리에 좋다는 건 착실하게 수행 중이었으니까. 눕는 게 좋다면 욕창이 생기라 할 정도로 누웠고(부랴부랴 태블릿 침대 거치대를 구매했다.) 걷는 게 좋다면 매일 밥 먹고 하루 3번씩. 한 번도 빠짐없이 걸었다. 한의사 부부인 언니가 보내주는 한약도 삼시세끼 꼬박꼬박. 수영이 좋다니, 바로 아침 7시에 달려가 등록했다. 수영 안가는 나머지 3일은 병원을 갔다. 부항, 봉침, 추나 점심 메뉴도 아닌데 오늘은 뭘 할지 골라 가며 치료했다.
그럼에도 얼굴만 보고 접수해주는 병원만 늘어갔다.
이때부터 점점 믿을 수밖에 없었다. 정선근 교수님과 이경석 원장님의 말들을. 유튜브 홈 화면이 온통 허리 영상으로 도배되고 나서야 찾아낸 믿을만한 허리전문가들이었다.
나였나. 별거 아닌 상처에도 아프다고 소리지르는 사람. 어쩌면 이미 염증은 사라졌는데도 계속 몸이 땡깡 부리는지도 몰랐다.
그렇다고 내가 뭘 더 해야할 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허리환자에게 남은 선택지라고 별다를 게 없다. 결국 맘카페 검색창에 들어갔다.
"00지역 MRI 찍어주는 병원"
동네 정형외과에서 디스크라는 진단을 받은 지 6개월 만이었다.
그렇게 고심했던 MRI 마저 내가 안 아파야 한다는 선고를 내렸다.
“너무 깨끗한데요. 아이고 할머니 할아버지들 척추보다 보니까 어우 깨끗하다.
4번 5번이 조금 튀어나오긴 했네요.
도수치료를 받으시고 약 드릴게요”
겨우 이 말을 듣자고 70만 원을 쓴 게 아닌데.
진료실 문을 닫고 돌아섰다. 엄마는 한시름 놓인다며 언니에게 신나서 전화를 걸었지만 내 귀에선 엄마 목소리가 윙윙댔다. 걷고는 있는데 발이 딛고 있는 바닥이 느껴지지 않았다. 내 발밑만 저 아래로 떨어져 있는 기분이었다. 병원의 눈부실 정도로 흰 형광등이 어질어질했다.
진짜 디스크가 없다고?
그렇다면 난 뭐 때문에 아픈 거지?
“문제가 없다”는 말이 마치 “당신 문제 덩어리야”라고 말하는 듯했다. 문제가 없는데도 이렇게 아픈 게 문제가 아닐 리 없지 않은가. 물론 문제가 있다고 해도 문제였겠지만 말이다.
결국 맞았다. MRI는 통증의 원인은 밝혀내지 못했다. 섬유테를 찢고 나온 디스크가 신경을 누른다고 했다. 그래서 나를 걷지 못하게 하는 하지 방사통이 생긴다고. 하지만 내 70만 원짜리 사진 속 디스크는 신경을 누르지도 않았다. 애초에 MRI로 보이는 디스크가 통증과 관계가 없다면 MRI를 찍는 의미가 있었을까. 디스크의 원인은 있어도 통증의 원인은 없었다.
무언가 어긋난 듯했다. MRI로 통증의 원인을 알아내려던 건 돌고래의 목소리를 인간의 귀로 들어보려는 시도 같았다. 맞지 않은 도구로 측정한 건 아닐까.
그럼에도 검사는 계속됐다. 부모님은 다른 병이라도 있으니까 아픈 거 아니겠냐며 종합병원에 가보라며 성화셨다. MRI의 결과를 듣고 치료 슬럼프 빠진 난 공휴일에 회사 나온 직장인처럼 영혼없이 병원을 돌아다녔다.
새로운 진료실에 도착할 때마다 '또 이상 없다 하겠지'라며 부루퉁해 있다가도 예상했던 답을 들으면 왠지 눈물이 나려 그랬다. 내내 사춘기 소녀처럼 굴었다.
아빠는 자꾸만 알 수 없는 병이 나오는 유튜브 영상을 보냈고, 재활의학과에선 이번엔 골반 MRI를 찍어보라고 했다. 그것도 아니면
“기분 나쁘게 듣지 마세요.
정신과적인 문제일 수 있어요.”
진짜일까 가짜일까. 허리가 아플 동안 가장 의심을 많이 했던 건 나 스스로였다. 어떤 날은 이 통증이 가짜라는 게 이해가 가다가도 어떤 날은 가짜일 리 없었다. MRI 찍을 시기에만 디스크가 잠깐 흡수된 거겠지 싶었다.
아니다. "니가 자꾸 아프다고 생각을 하니까 아픈 거지." 언니가 말할 땐, 아니라고 박박 우기다가 혼자 있을 땐 나도 모르게 그 말이 떠올랐다.
환각이나 환청은 외부감각보다 내부에서 자신이 만들어낸 감각을 더 강렬하게 받아들일 때 생겨난다. 뇌의 신경신호가 잘못 반응하는 것이다. 내가 병인지 아닌지 확인하는 법은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는 것뿐. 지금, 이 소리 나만 듣는 거냐고. 지금, 이 통증 나만 느끼는 거냐고.
검사되지 않는 통증은 환촉같았다. 이 통증이 가짜인 이유가 백 가지라면 진짜인 이유는 단 한 가지밖에 없었다.
내가 느낀다. 내가 아프다.
우리 귀엔 들리진 않아도 돌고래의 목소리는 분명 존재한다. 그 생생한 목소리를, 생생한 통증을 듣기 위해선 좀 다른 방식이 필요했다. 옷에 난 구멍 모양이 뭔지는 이제 신경꺼야 한다. 대신 구멍이 어떻게 하다 생겼었더라는 질문을 떠올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