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 대신 최선을 선택
중학교 1학년 겨울쯤에 우연히 과학고등학교에 대한 안내 전단지를 발견했습니다. 수학 선생님에게 빌린 “재미있는 수학여행” 책에 과학고 진학에 대한 안내 전단지 한 장이 들어 있는 것을 보고 과학고등학교가 무엇인지 어렴풋하게나마 알 수 있었습니다. 작은 누나 집에서 지내던 저는 인문계 고등학교 진학을 꿈꿀 수 없었습니다. 인문계 고등학교의 등록금과 생활비를 감당하는 것이 어렵기도 했지만, 인문계 고등학교를 간다는 것은 대학 진학을 전제로 하기 때문입니다. 대학을 진학할 수 있는 경제적 여건이 전혀 안되었기 때문에, 인문계 고등학교는 제가 아예 꿈도 꿀 수 없는 선택지였습니다. 그래서 우리 가족들은 모두 제가 유명한 공고에 가서 기술을 익혀 취업하는 것을 원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기계를 만지거나 다루는 일을 잘하지도 못했고, 좋아하지도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그때까지 그나마 잘할 수 있는 게 공부 외에는 제게 딱히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게는 과학고 진학이 유일한 희망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중학교 1학년 때 저는 과학고에 진학할 수 있을 만큼 공부를 탁월하게 잘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 당시 저는 전교 230명 정도 되는 거제도 중학교에서 전교 15등 내외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과학고등학교를 지원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자격 요건도 갖추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전교 3퍼센트 이내의 성적이거나 모든 과목이 “수” 이상의 성적을 받은 학생이 과학고 지원을 할 수 있었는데 제 성적은 그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과학고를 준비한다는 말을 다른 사람들에게 하는 것도 조심스러웠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때 스스로 공부 계획을 세우고 최선을 다해 공부한 결과 전교 1등으로 올라갈 수 있었습니다. 이후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모의고사는 거의 놓치지 않고 계속해서 1등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과학고에 진학할 거라고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거제도 안에서 우리 중학교가 평균 성적이 괜찮은 편에 들어갔지만 여전히 창원이나 진주에 있는 중학교에 비해서 학력 수준이 높지 않았습니다. 거제도 전체에서 과학고에 1명 가는 것도 힘들 때였습니다. 탁월하게 공부를 잘한다고 하던 옆 중학교 전교 1등들도 한 번도 과학고에 진학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중학교 3학년에 올라갔을 때 모든 상황이 달라져 버렸습니다. 중학교 3학년이 시작된 3월에 저는 감기에 심하게 걸렸습니다. 심한 감기에 걸려서 쉬어야 하는데도, 공부 시간을 빼앗기는 것이 아까워서 쉬지 않고 공부를 했습니다. 지금 쉬면 영영 과학고 진학은 불가능할 것 같아서 쉬지도 않고 계속 공부를 하려고 했습니다. 빨리 감기에서 나으려고 병원에 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공부를 해야 하니 감기 빨리 나을 수 있도록 약을 강하게 지어 주세요.”
병원에 가서 저렇게 말하고 실제로 약을 강하게 먹고 쉬지도 않고 공부를 하다가 그만 쓰러져 버렸습니다. 며칠 공부 못하는 것을 아까워하다가 수십 배 이상의 시간을 날려야 했습니다. 3월 초부터 5월 초까지 제대로 학교를 다닐 수 없었습니다.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없으니 더 신경이 쓰였고 그럴수록 몸은 더 쇠약해졌습니다. 어쩌다 학교에 등교하면 꼭 시험 치는 날이었습니다.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시험을 보았고 성적은 전교 30등 밖으로까지 떨어졌습니다.
그 당시 교회를 다니지 않았던 저는 마음에 평안을 찾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학교 앞 서점에서 명심보감을 사서 한 장씩 읽기도 했고 누나가 준 염주를 붙잡고 기도를 하기도 했습니다. 5월이 되자 건강도 회복되었고, 마음의 걱정과 염려도 내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과학고 진학을 하지 못하더라도 또 다른 방법을 찾을 수 있다는 마음으로 더 이상 걱정하거나 신경 쓰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일단 건강을 회복해야 무엇이든 할 수 있기 때문에 더 이상 과학고 진학 자체를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5월 중순에 학교를 다시 복귀해서 빠지지 않고 다닐 수 있게 되었을 때, 선생님들과 친구들은 더 이상 제게 큰 기대를 거는 것 같지 않았습니다. 제 자신도 저에게 큰 기대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일단 건강하게 몸을 회복하고 남아있는 시간 동안 최선을 다해볼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지금 생각해도 이해하기 힘든 일이 일어났습니다. 복귀 후 처음 본 모의고사에서 다시 전교 1등을 한 것입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고, 누구도 제게 기대하지 않았던 그때의 첫 모의고사 성적은 제게 다시 아주 작은 희망을 보여주었습니다. 그 뒤로 중학교 3학년 때 치른 모든 모의고사에서 전교 1등을 했습니다. 비록 그 성적이 과학고 진학을 보장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제 자신에게는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여름 방학이 되었을 때, 다시 과학고 진학을 준비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습니다. 거제도에서는 입시 대비용 책을 구할 수 없어서, 부산에 있는 큰 서점에 과학고 준비 문제집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부탁해서 구입한 후 준비하였습니다. 여전히 가능성이 높지 않았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도전해보고 싶었습니다.
그 당시 우리 중학교에서 제가 합격할 거라고 기대한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오히려 당시 신생 중학교였던 우리 중학교에서 1회 입학생인 제가 떨어지면, 학교에 부정적인 영향이 있을 것이라는 우려가 더 많았습니다. 가족들도 제가 과학고 대신 공고에 지원하길 원했습니다. 과학고와 공고 모두 인문계 고등학교 연합고사 시험보다 지원 일정이 빨랐기 때문에, 둘 중 하나만 지원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가족들 입장에서는 가능성이 높지 않은 과학고에 지원했다가 실패하면 공고도 못 가게 되기 때문에 반대하는 것이 당연해 보였습니다. 학교에서도 원서를 써 주지 않으려 했고, 가족들도 반대했습니다. 제 자신의 실력에 대한 확신이 저조차도 강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그대로 포기하는 것이 모든 사람들을 만족시키는 정답처럼 보였습니다. 제가 포기하면 그대로 끝나는 상황이었습니다. 가족들을 설득할 명분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과학고 입시를 준비하던 다른 친구들은 다른 걱정할 필요 없이 입시 준비만 하면 되었지만, 저는 가족들을 상대로 한 달 가까이 논쟁을 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고, 형과 누나를 설득하고 학교 선생님들께 원서를 쓸 수 있게 해달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중1 겨울부터 포기하지 않고 준비한 과학고 입학시험을 꼭 치러보고 싶었습니다. 어른들 말처럼 공고에 가는 것이 안전한 선택이 될 수도 있었지만, 저는 보장된 것이 없고 떨어질 확률이 더 높더라도 도전해 보고 싶었습니다. 떨어진 다음에 길은 그다음에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입시에 실패할 확률이 높았기 때문에 두렵고 불안했지만, 저를 믿고 격려해 주셨던 많은 선생님들과 주변 분들 덕분에 큰 용기를 얻었습니다. 그 말씀들을 언제나 마음에 꼭 붙들려고 했습니다.
1993년 11월 둘째 주일에 치른 과학고 입학시험은 지금도 생각납니다. 다른 친구들은 부모님과 함께 진주에 갔는데, 저는 혼자 가야 해서 친구 부모님들과 함께 진주로 갔습니다. 시험 전날 과학고에 시험에 관한 설명을 들으러 갔을 때, 학교 안에 걸어 다니는 재학생들의 모습은 마치 사람이 아닌 신선과 같은 존재들처럼 보일 정도였습니다. 입시생들이 몰려들어서인지 그날 진주에서 여관방을 구하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간신히 터미널 근처의 낡은 여관방을 친구 부모님들께서 구하셔서 다 같이 그곳에서 잠을 잤습니다. 시험 보러 갈 수 있다는 것만으로 감사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시험 치기 전날 오히려 홀가분한 마음마저 들었습니다. 그날 밤 잠자리에 누워서 다음 날 시험에서 제게 주어진 기회를 낭비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서 시험을 치르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아직 교회를 다니기 전이었지만 누군가 제 기도를 들을 것이라 생각하며 기도했던 것 같습니다.
스탠리 하우어워스는 이야기의 기능을 설명하면서, 우리가 스스로 우리가 간직하고 있는 이야기에 참여할 때 우리 자신에 대해서 이해하게 되고, 우리의 인생과 자아가 하나의 선물로 주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고 설명합니다. 그에 따르면, 이야기가 있는 삶이란 이야기에 참여하여 스스로 이야기를 구현하는 삶을 산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제가 마음에 간직하고 있는 이야기가 진실되고 믿을만한 이야기가 되기 위해서는 스스로 그 이야기에 참여하여 구현해야만 합니다. 오늘날 현대인의 삶에 대해서 하우어워스는 “아무 이야기도 없는 삶을 추구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아직 신앙이 없던 제가 붙들고 있었던 이야기가 성경의 이야기들만큼 신실한 이야기는 아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 이야기에 참여해서 최선을 다해서 그 이야기를 구현하려고 했습니다. 짧은 이야기들과 조언들에 담긴 희망을 따라서 살았고, 이야기들을 마음에 품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 삶의 이야기를 제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제가 마음에 품고 있는 이야기를 따라 살아가는 제 삶은 또 하나의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언제라도 제가 포기하면 제 삶의 이야기는 거기서 부정적으로 끝이 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론적으로 내러티브와 덕윤리를 배워서 안 것이 아니라 직관적으로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포기 대신 최선을 다하는 것을 선택하였습니다. 그리고 최선을 다하기로 선택하고 행동함으로써 제 마음에 붙들고 있던 희망의 이야기들이 제 마음에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습관을 형성시켰다고 생각합니다. 즉, 제가 마음에 품은 이야기가 제 안에서 구현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 구현된 이야기가 하나의 이야기로서 저의 습관과 성품을 형성하는 순환 구조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덕윤리 이론은 몰랐지만, 저는 단지 결과와 상관없이 제 삶의 이야기를 제가 포기해서 끝나는 것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습니다. 저를 둘러싼 많은 사람들의 말들과 이야기들 속에서 저는 제가 스스로 제 삶의 이야기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제 의지로 선택한 것으로 보였지만, 그 모든 것이 제게 은혜로 주어졌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선택하기로 결심하려는 마음을 먹는 것 자체가 은혜가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