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세상의 이야기에 굴복되지 않을 수 있는가?
“성경을 읽고 성경을 근거로 설교하는 행위 자체가 우리 시대에는 커다란 도덕적인 행위이며, 또 목회자의 권위의 출처를 확인하는 일이 된다. 설교자가 성서일과를 사용할 때, 그는 자기도 들어서 설교하도록 깨달은 것을 설교하는 것임을 분명히 밝히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이 중요한 까닭은, 성서의 이야기가 우리를 만든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드러내기 때문이다. 또 이것을 통해 교회는 자신이 이 세상을 어떻게 뒤집어 버리는지 그 방식에 대해서도 확인하게 된다.” -스탠리 하우어워스 <각주 1>
우리의 삶의 조건들은 우리에게 어떤 종류의 이야기를 듣도록 강요하곤 합니다. 우리가 처한 삶의 여건들과 조건들은 단순히 무시해도 좋을 만큼 작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 삶의 환경들이 만들어 내는 것이 오직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을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서, 동일한 삶의 환경과 조건도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가 어떤 이야기를 들을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의지는 삶의 조건들 너머로 우리의 시선을 향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시선이 삶의 조건들 너머를 향할 때, 우리는 우리 삶에 영향을 끼치는 이야기를 스스로 정할 수 있습니다. 이 결정이 우리 삶의 이야기는 완전히 다르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우리 삶의 조건들과 상황보다 더 강력하게 우리의 생각과 가치관에 영향을 끼치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시대의 지배적인 가치관입니다. 시대마다 사회마다 고유한 가치관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한 가치관들은 한 사회 안에서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들, 실패한 사람들의 이야기들로부터 형성되어서 동시대의 사람들에게 강력한 영향을 끼칩니다. 그리고 시대의 지배적인 가치관이 우리 삶의 조건들과 결합하여 우리 삶에 큰 영향을 끼쳐서 우리의 가치관을 만들어 갑니다.
세상의 지배적인 가치관과 우리 삶의 조건들이 우리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지배하려고 합니다. 우리도 시대의 흐름에 압도되어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삶의 조건들 너머로 우리의 시선이 향할 때, 우리는 삶의 조건들에 의해서 지배되지 않는 새로운 이야기를 꿈꿀 수 있습니다. 영화 “다크 나이트”(2008)는 우리의 삶을 바라보는 시선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는 영화입니다. 세상의 지배적인 가치관과 우리 삶의 조건들에 의해서 좌우되지 않는 우리의 의지와 시선에 대해 이 영화를 통해서 이야기 하겠습니다.
디모데후서 3장에서 바울은 “말세에 고통의 시간이 올 것"이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2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3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4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5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각주 2>
이 말씀을 확증이라도 하듯이 세상은 점점 더 고통스러워지고 있습니다. 말세의 고통은 과거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문제들로부터 비롯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나쁜 사람들이 승승장구할 뿐만 아니라 의인들이 더 고통당하는 현실은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얼마나 모순적인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더 슬픈 것은 이러한 모순들이 결코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우리가 어른이 될수록, 인생의 날수가 많아질수록 우리는 세상에 부조리가 더 많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말세의 고통을 그리 어렵지 않게 목격하고 있습니다.
말세의 고통을 경험하는 사람들이 고통에 반응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입니다. 다수의 사람들이 문제점들을 해결하기보다 부조리한 현실에 순응하며 살아갑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많은 희생이 필요한데, 개인이 감당하기에 너무 큰 문제일 뿐만 아니라 성공할 확률도 매우 낮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문제를 적극적으로 바꾸려고 하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부조리한 세상의 구조를 이용하여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영악한 사람들이 넘쳐나게 됩니다. 또 다른 이들은 이런 세상을 저주하며 세상을 망가뜨리려고 한다. 그래서 시편 12편 8절 말씀이 진실로 옳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비열함이 인생 중에 높임을 받는 때에 악인들이 곳곳에서 날뛰는도다” <각주 3>
영화 “다크 나이트”(2008)는 말세를 살아가는 이 세상의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영화 속에는 세상을 바꾸고 싶은 사람뿐만 아니라 세상을 혼란에 빠뜨리고 싶은 사람들이 뒤섞여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배트맨과 조커는 세상의 마지막 날의 고통에 대해서 양극단의 반응을 보여주는 사람들입니다.
조커는 과거를 알 수 없는 사람입니다. 입이 찢어진 상처를 설명하는 그의 말을 통해서 그가 겪은 고통을 추측할 수 있을 뿐입니다. 아버지가 칼로 입을 찢은 것인지 자신이 스스로 입을 찢은 것인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둘 다 고통스럽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인생의 고통을 경험한 후 온 세상을 혼란과 절망에 빠뜨리려고 하였습니다. 스스로 혼돈의 사도가 되어 세상 속에 더 많은 고통을 주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돈이나 권력을 목적으로 범죄를 일으키지 않습니다. 정말 세상이 망하기를 바라며 진정한 악의 구현을 위해 투신한 사람이 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조커는 세상과 사람에 대해 너무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자신의 이익과 안녕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착하게 굴뿐이며, 마음속의 실제 모습은 매우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라는 사실을 꿰뚫어 보고 있었습니다.
온갖 부패와 범죄와 얼룩 진 고담시의 시민들은 조커가 벌이는 사건 사고를 통해 본성의 추악함을 드러내고 말았습니다. 고담 시티의 시민들은 자신들을 위협하는 조커에 대해 분노하기보다 조커가 내세운 희생제물을 찾느라 바빴습니다. 악에 대항하여 싸우기보다 본인만 안전하면 된다는 식으로 행동한 것입니다. 악이 만들어내는 비극을 피하려고만 할 뿐, 악을 제어하거나 제압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은 스스로 자기 자신을 더 악한 상태로 밀어 넣었습니다. 그것이 조커가 가장 바라는 것인지도 알지 못한 채 그렇게 악의 나선 구조 속으로 걸어 들어가서 살아갈 뿐입니다.
지방 검사 하비 덴트는 정의감이 가득한 정의의 사도였으나 조커에 의해 애인이 죽자 그는 이름 그대로 “투 페이스”가 되어 자신의 분노를 무법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합니다. 결국 정의의 사도였던 그도 자신이 아무런 잘못 없이 불행한 삶을 살게 되자, 조커가 원하는 대로 악인의 방법을 따라한 것입니다. 하비 덴트는 스스로 한 말이 자신에게 그대로 돌아왔습니다.
영웅으로 죽거나, 결국엔 스스로 악당이 되는 거지
하비 덴트는 자신이 한 말대로 결국 “스스로 악당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처럼 세상의 악한 구조는 절망의 사람들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정말 세상이 망해 버리길 바라며 세상을 향해 자신의 분노를 쏟아내는 사람들로 세상이 점점 채워지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조커가 이 시대의 사람들을 향해 내뱉는 말들이 꼭 틀린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의 말대로 인생은 부조리하고 절망과 분노를 쏟아내기에 충분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야기를 들을 것인가?
분명 시대의 지배적인 가치관은 조커의 말에 더 가까웠습니다. 사람들은 조커의 말대로 행동했고, 조커의 말처럼 자신의 안전을 공동체의 평안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였습니다. 영화 속 배트맨도 시대의 지배적인 가치관에 둘러 쌓여 있었습니다. 하지만 배트맨은 하비 덴트가 저지른 모든 악행을 뒤집어쓰며 스스로 “어둠의 기사(the Dark Knight)”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악의 화신인 조커는 하비 덴트를 “투 페이스”로 만든 것처럼, 배트맨도 절망 속에 악행을 저지르도록 유도하고 싶었습니다. 악은 이 세상을 지배적인 가치관을 통해서 사람들이 더욱 절망 속에 빠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자신의 이익을 중심으로 더욱더 이기적으로 행동하면 결국 그 사회 전체는 악해지고 도덕적 가치관이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영화 속 배트맨은 다른 선택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 주었습니다. 시대의 지배적 가치관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도덕적 선택을 한 것입니다. 스스로 누명을 쓰고 많은 비난을 받겠지만, 사회 전체에 모범이 될만한 새로운 가치관을 구현한 사람으로 하비 덴트를 제시해 준 것입니다. 그것이 영화 속 배트맨이 가지고 있는 삶의 이야기였고 도덕적 가치였습니다. 그리고 배트맨은 그 이야기를 구현함으로써 새로운 이야기를 제시한 것입니다.
결국 모든 선택은 우리 자신의 몫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결국 스스로 악당이 되어버릴 수밖에 없다고 변명할 수 없습니다. 사회가 악해지기 때문에 나도 이기적이 되지 않으면 안 되었다는 변명이 통할 수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의 이야기와 우리의 도덕률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불이익을 감수하더라도, 억울함이 있더라도, 적극적으로 선을 행하기를 바라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상황에 매몰되는 하나님이 아니며, 절망적인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뤄가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우리에게는 두 가지 이야기가 들려오고 있습니다. 상황과 시대의 지배적 가치관에 매몰되기를 바라는 조커의 음성과 상황과 시대의 지배적 가치관을 넘어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지금도 우리에게 들려오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자, 하나님의 이야기를 선택하는 자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이 땅에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자신의 상황 때문에 절망에 빠지기를 원하는 조커의 목소리를 듣기보다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기를 원하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 <각주 4>
1 하우어워스, 하나님의 나그네 된 백성, 252-53.
2 개역개정, 디모데후서 3:1-5.
3 개역개정, 시편 12:8.
4 개역개정, 마태복음, 1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