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에서 하나님의 이야기를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
다윗과 골리앗의 이야기는 성경을 모르는 사람들과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습니다. 약한 자가 힘센 자와 싸울 때, 약한 자가 싸움을 이기면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 언제나 언급됩니다. 그래서 이 싸움은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전투로 일컬어집니다. [1]
3천 년 전, 사무엘상 17장의 이스라엘과 블레셋의 전투는 이스라엘의 남서쪽 해안과 북동쪽 산이 만나는 엘라 계곡에서 일어났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고대 그리스 문명인 크레타 지역 출신의 해양 세력이었고, 철문명을 가지고 크레타에서 지중해를 건너서 이스라엘 땅 부근으로 이주한 민족입니다. 말콤 글래드웰은 블레셋 사람들과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필리스타인(블레셋)은 크레타 섬 출신이었는데,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해서 해안에 정착한 해양 민족이었다. 반면 이스라엘 사람들은 사울 왕의 영도 속에 산악 지대에 무리를 지어 살았다. [2]
지중해를 넘어왔기 때문에 해양 세력에 속하는 블레셋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남서쪽 해변에 정착한 후 북동쪽 방향으로 영토를 확장하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사울 왕은 군대를 모아 블레셋 사람과 전투를 벌였습니다. 전투 장소는 사무엘 17장 나오는 엘라의 계곡입니다. 엘라의 이 골짜기에서 두 진영이 맞섰기 때문에 엘라 골짜기 너머에 있는 상대 진영을 공격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이런 대치 상황에서 고대 전쟁에 자주 등장하는 전투가 있었습니다. 일대일 결투(single-combat)라고 불리는 싸움으로써 양쪽의 최고 장군들이 오직 둘이서만 벌이는 싸움입니다. 양 진영이 전면전으로 싸울 수 없었을 때 사용하는 전투 방법으로 싸움의 결과가 전체 전쟁의 승패를 좌우합니다. 영화 “트로이”에서 이와 같은 전투의 방식을 볼 수 있습니다.
골리앗이 지금 이스라엘에게 요구하고 있는 것도 “일대일 결투”입니다. 이 일대일 결투를 위해서 골리앗은 블레셋 진영에서 나왔습니다. 키는 3미터 정도였고, 갑옷은 50킬로그램이 넘었고, 방패가 달린 무거운 창을 들고 있었습니다. 엘라 골짜기에서 골리앗은 이렇게 소리쳤습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나와서 전열을 벌였느냐 나는 블레셋 사람이 아니며 너희는 사울의 신복이 아니냐 너희는 한 사람을 택하여 내게로 내려보내라 그가 나와 싸워서 나를 죽이면 우리가 너희의 종이 되겠고 만일 내가 이겨 그를 죽이면 너희가 우리의 종이 되어 우리를 섬길 것이니라 내가 오늘 이스라엘의 군대를 모욕하였으니 사람을 보내어 나와 더불어 싸우게 하라” [3]
골리앗은 이스라엘과 이스라엘의 군대를 계속해서 모욕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사울과 온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를 무서워하고 두려워했습니다. 골리앗과 싸우러 간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사무엘상 17장은 골리앗이 블레셋 사람의 신들의 이름으로 이스라엘의 여호와 하나님을 저주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당시의 전쟁은 블레셋 사람과 이스라엘의 싸움만이 아니라, 블레셋 사람의 신들과 이스라엘의 여화와 하나님과의 싸움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 가운데서 여호와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사울 왕은 골리앗의 무시무시한 모습에 압도당하였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모두 블레셋 사람과 싸우기 전에 자신감을 잃었습니다. 바로 그 순간, 블레셋 사람이 믿었던 신은 살아 있는 신과 같았고, 이스라엘이 믿었던 여호와 하나님은 죽은 신과 같은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 시대 사람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이 힘도 없고 영향력도 없는 죽은 신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울 수 없으리니 너는 소년이요 그는 어려서부터 용사임이니라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되 주의 종이 아버지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 떼에서 새끼를 물어가면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죽였나이다 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쳤은즉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리이까 그가 그 짐승의 하나와 같이 되리이다 또 다윗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셨은즉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가라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기를 원하노라 [4]
양을 치는 목자로서 다윗은 어린 시절부터 양을 지키기 위해 사자와 곰과 싸워야 했습니다. 그는 곰과 사자 같은 야생 동물들과 자주 싸웠습니다. 그는 전투가 있을 때마다 사자와 곰으로부터 양 떼의 생명을 보호할 수 있었습니다. 다윗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양치는 막대기로 사자와 곰과 맞서 싸웠습니다. 동시에 그는 자신의 힘이 아닌,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우심을 통해서 양 떼를 지킬 수 있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가 목자로서 최선을 다했던 순간들이 그의 삶 속에서 축적되었고 목자로서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했던 시간들이 그의 내면에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믿음을 형성시켰습니다. 그래서 그는 동시대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지고 있지 못한 믿음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다윗이 가정 안팎에서 이스라엘을 구할 용사로서 인정받고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의 형 엘리압이 그를 호되게 나무랍니다.
네가 어찌하여 이리로 내려왔느냐 들에 있는 양들을 누구에게 맡겼느냐 나는 네 교만과 네 마음의 완악함을 아노니 네가 전쟁을 구경하러 왔도다 [5]
이스라엘 안에서 다윗이 용사로서 인정받았다면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배제될 이유도 없었을 것입니다. 형들에게도 다윗은 그저 어린 막내일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도무지 골리앗이 여호와 하나님과 이스라엘을 모욕하는 말을 듣고 참을 수 없었습니다. 비록 형들에게 도시락을 전달하러 온 막내일 뿐이고 아직 군대를 갈 나이도 되지 않았던 다윗이지만, 다윗은 골리앗의 말을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무시하고, 이스라엘 군대를 놀려대는 골리앗을 보니 화가 나서 견딜 수 없었고, 겁쟁이처럼 도망치는 이스라엘 사람들 모습은 더욱더 참기 힘들었습니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다윗이 사람들을 향해서 이렇게 외쳤습니다.
“이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 누구이기에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겠느냐?” [6]
다윗이 이토록 용감하고 소리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는 자신이 믿는 하나님이 살아계신 하나님, 온 우주를 다스리시고 이 세상을 다스리시는 분임을 분명하게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 블레셋 군대와 골리앗 따위에게 조롱받으실 분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다윗은 분연히 일어설 수 있었던 것입니다. 다윗은 여호와 하나님과 하나님의 영광에 대해서 분명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한 때 잠시 스쳐 지나가는 생각 정도가 아니라, 그의 마음에 굳건하게 자리 잡아서 그를 움직여 나가는 원동력이 된 생각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들이 골리앗을 두려워했지만 다윗은 골리앗보다 강하신 살아 계신 여호와 하나님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는 눈 앞에 보이는 골리앗보다, 골리앗 너머에 계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신뢰하였습니다. 그는 어릴 적부터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힘든 싸움도 이길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믿음은 잘못된 믿음이 아니었습니다. 매일 일상의 경험을 통해 승리를 경험한 사람은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게 될 것입니다. 말과 글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매일 삶의 현장에서 직접 경험했기 때문에 더욱 강력한 확신이 내면에 형성되는 것입니다. 그는 지금 자신에게 닥친 상황을 부정하거나 회피하지 않고, 그 상황 속에서도 일하시는 살아 계신 하나님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의 확신이 허황되거나 공허하지 않고 현실에 뿌리박은 확신이었기 때문에, 골리앗이 그를 위협해도 절대 굴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다윗이 골리앗에게 자신의 승리를 선포합니다.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넘기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목을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를 오늘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 [7]
여기에서 다윗은 자기 자신에 대한 인식이 분명합니다. 골리앗이 가진 신체적 능력과 전투 경험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하여도, 다윗은 자신이 하나님의 백성이요 하나님의 군대인 것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이와 같은 인식은 이스라엘이 믿는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그의 일상의 경험을 통해서 확증되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매일매일 하나님을 느끼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매일매일 승리의 삶을 산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실제적인 결론인 것입니다. 남들이 보기에 전혀 성공한 것으로 볼 수 없는 목동의 일을 통해서 다윗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험했습니다. 자기에게 맡겨진 양 떼를 목숨을 걸고서 지키는 그 일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들이 보기에는 화려하지만, 자신에게 익숙지 않은 사울 왕의 갑옷과 칼을 거부하고, 자신에게 원래부터 주어졌던 물매와 돌과 막대를 가지고 골리앗을 향해 나아갔습니다. 그것들을 가지고 다윗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험했고, 매일매일의 삶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왕의 칼과 갑옷은 사람들이 보기에는 대단하고 화려하지만, 그것들이 하나님의 임재를 , 하나님의 능력을 뜻하지는 않았습니다. 현재 자신에게 주어진 것으로 최선을 다하여 하나님을 의지하여 하나님을 경험한 것이 더 소중하고 더 가치 있습니다. 우리의 일상에서 하나님을 경험할 때, 그 경험은 하나의 이야기가 되어서 우리의 내면에 강한 확신과 용기를 주기 때문입니다.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이야기가 그저 아주 먼 옛날의 이야기가 아니라 매일 자신의 삶에서 경험하는 여호와 하나님이 실제로 행한 이야기인 것을 다윗은 알고 있었습니다. 목동으로 양 떼를 지키며 경험한 여호와 하나님의 이야기는 다윗에게 이미 자신의 삶으로 확증되고 구현된 이야기였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의 삶을 통해서 구현된 이야기는 다시 다윗에게 영향을 끼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에 대한 확신과 용기를 더욱더 강하게 형성하는 선순환의 구조 안에서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는 우리를 압도하는, 마치 하나님보다 더 강력하고, 하나님보다 더 우월해 보이는 이야기들이 우리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그 이야기들이 형성하는 우리의 내면이 곧 우리의 성품이 되어서 우리 삶을 이끌고 갑니다. 돈, 학벌, 사회적 성공, 인맥 등 오늘 우리가 하나님보다 더 의지할 만한 것들이 삼천 년 전보다 더 많아졌습니다. 골리앗보다 더 강력하게 우리를 압도하는 지배적인 가치관들이 우리 주변에 여전히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살아계신 하나님을 이 세상에 보여주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매일매일의 삶에서 하나님을 경험하고, 하나님을 신뢰하며 매일매일의 삶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힘과 능력으로 살아간다면, 우리는 우리가 누구인지 알게 됩니다. 우리가 누구인지 알기 때문에 골리앗을 보고도 무서워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면, 우리는 현재 보이는 우리의 모습만으로 우리 자신을 판단하게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만나면 진정한 자기 자신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이야기가 우리의 일상 가운데 구현되어서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이야기가 구현된 삶으로 변화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보기에는 약해 보이고, 내세울만한 조건이 없다고 할 지라도,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이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군대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난 사람으로, 하나님의 승리의 이야기가 오늘 우리의 삶에서 구현되는 것입니다.
1 글래드웰, 다윗과 골리앗, 17.
2 글래드웰, 다윗과 골리앗, 18.
3 개역개정, 사무엘상, 17:8-10.
4 개역개정, 사무엘상, 17:33–37.
5 개역개정, 사무엘상, 17:28.
6 개역개정, 사무엘상, 17:26.
7 개역개정, 사무엘상, 17:45–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