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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나나 Apr 18. 2016

#23 영원한 이별은 아닐거라 믿어요

다음생엔 내가 너의 고양이가 되줄게


반려동물의 수명은 평균 10년에서 20년 사이이다.

대형견은 소형견보다 수명이 조금 더 짧아 10년 안팎이고, 고양이보단 강아지가 조금 더 수명이 긴 것같다. 예전에는 8살이상만 되도 노령견의 범주에 속했었는데 동물도 이제 백세인생에 버금가는 장수시대, 즉 고령화현상이 심해지고 있다. 영양도 좋아지고 생활환경도 사람못지 않게 좋아지다 보니 건강관리부터 식단, 운동, 미용 등의 관리가 왠만한 연예인 못지않아졌다. 반려동물에 아낌없이 돈을 써대는것을 보고 어떤 노인분들은 지랄도 풍년이라며 혀를 끌끌차기도 하지만 이젠 정말 시대가 많이 변하긴 했다. 특히 동물병원에서 근무하는 나로써는 더 직접적으로 체감하는 현실이다. 정말 사랑많이 받고 럭셔리하게 관리받으며 사는 보호자분의 동물을 볼때면 니 팔자가 나보다 낫구나...싶어지는게 솔직한 내 맘이다.


왜 늘 행복한 시간은 이리도 짧을까....?

반려동물의 시간은 사람의 시간보다 평균 일곱여덟배정도 빨리 가다보니 나에겐 순간만 같았던 십여년의 세월이 이 아이에겐 한평생이었음을 느끼는 순간이 훅~하고 찾아온다. 초등학교때 만나 나는 이제 겨우 대학새내기가 되었을뿐인데 우리집 해피는 어느덧 눈이 침침한 노인네가 되어있는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는 분들도 꽤 된다. 나는 인생의 최절정기 봄날을 맞이하는데 언제 이 아이가 이렇게 늙어버린건지 세월이 야속하고 자연의 섭리가 이리도 냉정했던 건지 싶어진다.

움직임이 둔해지고 식욕도 예전같지 않고 눈도 침침해 익숙한 집안에서 이리저리 부딪히기 일쑤...귀도 어두워졌는지 아무리 열심히 불러도 묵묵부답, 이빨은 다 빠지고 냄새도 나고 이렇게 속절없이 늙어버린 아이가 안쓰럽기도 하고 영 어색하기도 할 것이다.


"선생님 우리 아이가 집에서 죽었는데 어떻게 해야하나요? "


동물병원에 참 많이도 걸려오는 전화내용중의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젊은 반려동물이 급작스러운 사고로 죽는 경우가 아닌이상 우리집 개고양이가 무지개 다리를 건너면 이렇게 해야겠다의 계획은 당연히 있을줄 알았는데 의외로 많은 보호자들이 전혀 이런것에 대해 무방비상태임을 알게 되었다.


아마도 저 질문은 '사체처리를 어떻게 해야하는지'와 '이제 나는 어떻게 살죠?'라는 두가지 의문이 복잡하게 섞여있는게 아닐까 싶다. 현실적으로 동물사체를 산에 묻는건 불법이라 쓰레기종량제봉투로 버려야하는데 이 얼마나 잔인하고 비현실적인 법인지...그런 얘길 해주면 보호자들은 경악을 넘어 오히려 화를 내기도 한다. 어쨌든 사체처리는 의료폐기물 업체를 통해 단체 소각하거나 비용을 좀 더 부담할수 있다면 반려동물 장례업체를 찾아 개별적으로 화장을 하고 유골을 받는 형식이 요즘 가장 많이 행해지는 장례형태이다.


  (3년의 짧은 시간을 살다간 나리..보고싶다...)


태어난 순간부터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것은 사람이나 동물이나 매한가지...

나의 반려동물이 노화의 시기에 접어든다면  어느정도 현실적인 준비를 해놓으라 말해주고 싶다.

집에서 죽는다면, 병원에서 죽는다면, 장례업체를 어디로 할것인지 직장에 휴가를 낼수 있는지 비용은 어떻게 충당할것인지 누구에게 알릴것인지 등등의 현실적인 것들을 정리해둬야 당황하지 않을 수 있다. 또한 집에 어린 자녀가 있다면 반려동물의 죽음을 어떻게 이해시킬수 있을지 신중하게 고민해볼 문제이다. 너무 슬퍼하고 울기만 하는것이 자녀가 있는 집에서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다. 동물의 시간과 인간의 시간이 어떻게 다른지 평소에도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고 앞으로 이런상황이 발생할수 있다는 것에 대해 충분히 자연스럽게 받아들일수 있도록 인식시켜주길 바란다.


전에 열너덧살된 말티즈를 키우던 한 중년부부의 일이 생각난다. 아이는 역시 노화로 인한 여러가지 병이 있었고 그렇게 저렇게 여느 노령견처럼 병원에서 생을 마감했다. 새벽에 허겁지겁 채 추스르지도 못한 복장으로 달려온 부부에게 늘 그랬듯 어떠한 위로의 말도 소용이 없었다. 너무 많이 우는 부인을 달래며 남편이 했던 말이 있었다.


"우리 해피랑 살면서 너무너무 행복했잖아...

그거면 됐어...얘도 알거야..."


이제 영혼은 몸을 떠났으니 미련갖지 말자며 부인을 토닥이는 남편의 눈에도 어느샌가 눈물이 고여있었다.

그순간의 장면이 참 아름답다못해 경건해지기까지 했었던것 같다. 어찌보면 습관적으로 대해왔던 환자의 죽음에 대해 내가 그동안 좀 경솔했었던건 아닐까 싶어 깊이 반성도 하게 되고, 사는동안 행복했으면 그걸로 됐다라는 그의 말이 가슴 깊숙한 곳까지 잔잔한 울림을 주었다.


나는 6묘와 함께 살지만 나 역시도 아직 나의 반려동물의 죽음을 경험해보지 못했다. 동물병원에서 수없이 경험했음에도 정작 나는 나중에 어떻게 행동하고 받아들일지 예측하기가 힘들다. 상상만 해도 벌써 눈물이 주루룩흐르고 무슨 이런 생각을 벌써하냐며 스스로 제동을 걸고 있다. 남들에겐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해둬라고 잔소리를 해댔지만 나 또한 그들처럼 그 준비를 계속 미루고만 있는게 모순이라면 모순이다.


진짜 현실적으로 '아름다운 이별'을 준비하는것이 가능할까?

아직은 나도 뭐가 뭔지 잘 와닿지 않지만, 그 남편분 말처럼 오늘 하루하루 우리 6묘와 행복하다면...이 행복의 순간에 충실하다면 어느샌가 아름다운 이별을 위한 마지막 퍼즐이 완성되는 날이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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