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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나나 May 12. 2016

#24 고양이 풀 뜯어먹는 소리하네

한국에서 채식주의자로 산다는건...

"고기를 안먹는다구요?"
"에이~진짜요?
"왜요? 그래서 말랐구나...."
"어떻게 고기 안먹고살아요? 대~박"


지난 5년간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의 식사자리에서 늘 겪어야하는 통과의례중의 하나가 되버린 이 대화들..

이제는 익숙해질만도 한데 신기함보단 비아냥이 뒤섞인, 여전히 불편한 이 질문들에 이젠 이렇게 답해주고 싶어진다.

"그래 나는 채식주의자다! 뭐 꼽냐?"


사실 엄격히 말하자면 나는 완전한 채식주의자를 뜻하는 '비건 ' (Vegan)은 아니고 해산물, 달걀, 치즈 등은 먹고 닭, 소, 돼지,오리 등등 육식을 하지않는 페스코 채식주의자이다. 언젠가 방송에서 미스코리아출신 연기자 이하늬가 페스코라고 말한적이 있는데 그녀가 고기를 먹는걸 봤다는둥 하는 시덥잖은 소리를 간간이 들은적이 있긴하다. 어쨌든 그녀로 인해서 페스코라는 단어를 기억하는 사람도 종종 있을것이다.



무슨 거창한 이유가 있어서 채식주의자가 된건 아니다. 고양이를 키우면서 유기동물을 알게 되었고 동물권(Animal Rights)에 대해서도 자연스럽게 접하게 되었다. 한낱 짐승에게 무슨 권리? 냐고 하겠지만 인간인 내가 그러하듯 동물도 똑같은 인생의 희노애락을 느끼고 행복하게 살고싶은건 매한가지라고 생각한다. " 삶은 말없는 생명체들에게도 소중한 것이다. 사람이 행복을 원하고 고통을 두려워하며 죽음이 아닌 생명을 원하는 것처럼 그들역시 그러하다 "는 달라이라마의 명언을 굳이 들먹거리지 않아도 이해가 되는게 아닌가 싶다.




몇년전 잔인하게 도축되는 동물들의 영상을 처음 접했을때 영상을 채 다 보지도 못하고 실눈만 뜨고 소리만 들었을때의 충격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말로 묘사하기도 힘들고 아직도  손이 달달 떨릴 지경이다. 굳이 고기를 먹어야한다면 제발 고통없이 죽여달라고, 살아있는 동안이라도 드넓은 초원에서 좋은 것먹고 좋은 공기 마시고 살게 해달라고 간절히 속으로 빌었지만 그건 동화속에서나 있을법한 일이란걸 나도 알고 너도 알고 모두가 알고 있었다.


동물보호단체에서 일했던 시절 구제역 파동 때문에 돼지를 생매장하는 곳에 잠복취재를 다녀온 한 채식주의자 동료는 정신적인 충격으로 몇날며칠을 피폐하게 지냈고 그 영상을 편집하기 위해 수십번 돌려보고 하는 과정에서 그날의 기억은 그녀에게 너무나 큰 트라우마로 남았을것이다. 한 사무실에서 헤드폰 사이로 울려퍼지는 돼지들의 고통스런 비명에 다들 속으로 피울음을 삼켜야했고 이것을 대중에게 알리는것이 이 일을 하는 사람들의 고된 숙명임을 느끼게 된 순간이었다.



또하나 놀라운 사실은 육식을 줄이는것이 지구환경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때이다.

난 그냥 단순히 동물때문에 안먹은 것뿐이었는데, 이 모든것이  고리마냥 연결되어 있다는걸 알게 되었을때 사실 또한번 멘붕이 온것 같았다. 과학적으로 설명은 잘못하지만 지구상에 이 수많은 고기요리를 충당해대기 위해 대량으로 길러지는 소,돼지 닭들의 분뇨처리로 엄청난 양의 물이 쓰이고 있고, 풀을 먹여야하는 동물인 소를 키우기 위해선 이 풀을 다 공급할수가 없기 때문에 옥수수같은 곡물을 먹이고, 이것을 먹고자란 소들이 소화가 안되어 배출하는 트림과 방귀가 메탄가스가 되어 지구공기를 오염시키고 온난화에 영향을 주고, 이 곡물을 재배하기 위해 매일 아마존같은 천연 삼림을 파괴해야하고 , 아프리카 기아난민에게 공급되어야할 곡물이 소들을 먹이는데 쓰이다보니 굶주인 기아난민은계속  줄어들지 않고('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라는 책에도 잘 나와있다) 등의 악순환이 이어진다고 한다. 물부족, 지구온난화, 기아난민 등 육식을 줄이는것만으로도 지구를 살릴수 있다니 환경문제에 별 생각없이 살고 있던 내 자신이 초라하고도 부끄럽게 느껴졌다.

그때부터였나보다.  종이컵을 쓰지 않고 일회용품을 줄이고 동물실험하지 않는 화장품을 찾고, 장볼때 에코백을 쓰는 등의 작은 노력을 채식과 함께 하기 시작한것이...


이런다고 세상이 변할까?


나 하나 고기를 먹지 않는다고 도축되는 고기가 줄어들까?

그런다고 공장식 축산의 폐해가 사라질까?

아니, 굳이 콕 찝어주지 않아도 내가 너무 잘 안다. 그럴수 없다라는걸...

사실 그 생각을 하면 너무 허무하기도 하고 나 혼자 무슨 잔다르크마냥 외로운 투쟁을 하는가 싶어지지만, 의외로 이 외로운 투쟁에 동참하고 있는 이가 적지 않다는 사실을 아는가. 쪽수가 적어 아직 힘이 없어 그렇지 한국의 채식주의자들도 서서히 수면위로 존재감을 곳곳에서 드러내고 있다는 사실을 지난 몇년간 많이 느끼게 되었다. 미국, 캐나다 유럽등에선 채식주의자가 비교할수없을 정도로 많고 채식식당도 헐리웃배우들의 단골핫스팟으로 소개도 많이 되고있으며 큰 마트 한가운데 떡하니 비건코너가 자리잡을정도로 채식문화가 자연스럽게 녹아있다.

하지만 한국에선 어떤가... " 난 채식을 해요~" 가 난 게이에요~라고 커밍아웃하는 것만큼 힘든 사회분위기이다. 한집걸러 한집이 고기집인데다 ,회식이고 모임이든간에 두 사람만 모이면 늘 고기를 구워야하고 , 고기를 먹어야 힘이 난다고 믿는 육식홀릭 민족이다 보니 한국에서 채식주의자로 살아가기가 얼마나 고된 일인지 당해보지않고는 모를것이다. 고기를 먹지 않는게 손가락질 당하고 이상한 덕후정도로 취급당하고 어떻게든 고기를 먹이려는 유치한 수를 쓰는 사람들을 당최 이해할수가 없다. 그냥.. 나는 꽃을 좋아해요, 난 불교신자에요, 난 강아지를 좋아해요 등등의 개인 취향정도로 인정해주면 안되는 걸까?


또한 고기 안먹고 힘없어서 어떻게 일해요? 라고 묻는이들에게 " 본인은 얼마나 대단한 일 한다고 그렇게 힘이 필요해요?" 라고 대꾸해주고 싶기도하다. 그런 생각대로라면 지난 몇년간 난 간병인 두고 투병중이어야 맞지 않을까..

다소 과격하고 비논리적이고 욱~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쓰는 건 한국에서 채식주의자로 살아오면서 겪어야했던 멸시와 울분을 이렇게 글로나마 소심하게 토해내고 싶음을 이해해주기 바란다.

고기 맛있는거 몰라서 안 먹는거 아니니 말이다.



       이태원 비건식당 "플랜트(PLANT)"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라는 말이 있다.

뭐 그리 거창한 업적을 남겨두고  저 세상에 못갈바에는 내 작은 채식실천이 지구와 동물과 나아가 인류를 살리는 길에 아주 작은 보탬이 되길 바란다.


 그리고 곳곳에 숨어있는 채식인들이여~

 당당히 세상밖으로 나와 커밍아웃하세요!

 "우리 다같이 풀 한접시 하러 가자구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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