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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나나 Jun 02. 2016

#25 고양이섬엔 고양이가 없다

집사들의 성지순례를 흉내내며~

일본여행을 가면 꼭 가고 싶은곳이 있었다.

이름하야 고양이섬으로 불리는 아이노시마였다. 원래는 마츠야마에 있는 아오시마를 가고싶었으나 항공편과 배편이 적고 여행일정과 맞지 않다보니 선택하게 된것이 후쿠오카의 아이노시마였다. 동물농장에서도 나왔고 고양이사잔작가들의 블로그에 꼭 등장하는 곳이다보니 집사들에겐 성지처럼 꼭 들러보고싶은 곳 중의 하나가 되어있는곳, 바로 그 섬을 올 3월에 다녀오게 되었다.


짧은 2박3일의 후쿠오카 여행 일정중 마지막날 공항에 가기전 반나절의 시간을 이곳에 다녀와야하는지라 시간적으로 마음이 좀 급하긴 했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전날까지 멀쩡했던 날씨가 부슬부슬 내리는 봄비에 먹구름까지 잔뜩 끼는게 아닌가... 여행블로그에서 보았던 환상적인 색감의 아이노시마를 기대했던 나에게 이건 완전 재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빗방울이 굵어지면 질수록 내 주름은 늘어만 가고 있었다. 고양이떼는 커녕 이러다가 배마저 못뜨는건 아닐지 계속 스마트폰으로 날씨를 검색하기 바빴다. 제발~~~신이시여~~~내가 얼마나 손꼽아 고대했던 날인데...이번 여행은 순전히 이 일정때문에 온거라구욧!!! 라며 하늘을 원망하는 사이에 전철은 어느덧 아이노시마 선착장에 도착하고 있었다.


예상밖으로 선착장은 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누가 봐도 관광객인 한국커플 한쌍과, 전문가수준의 카메라를 메고 한다리를 절뚝이는 왠지 미스테리한 한 여자, 왜소한 체구를 가진 왠지 고양이덕후일것만 같은 한 일본청년과 나 이정도가 관광객이고 나머지들은 현지주민들 같았다. 흠....목적이 분명한 이 동행길에 서로 힐끗힐끗 므흣한 시선을 보낸 후 우린 다같이 한 고양이에게 시선을 멈추고 일제히 사진을 찍어대기 시작했다.


여러 블로그에서도 소개되어 이 바닥에서는 꽤 인지도가 있는  아이노시마 선착장 대합실에 자주 오는 고등어녀석을 운좋게 만났기 때문이었다. "카와이~~"를 연발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리는 순간 갑자기 버럭! 하고 소리를 지르며 냅다 이 녀석을 향해 주먹을 내두르며 쫓아내는 한 일본아저씨가 있는게 아닌가. 아마도 우리말로 이 새끼 저새끼 정도의 욕인것 같았다. 너무 순식간이라 다들 어안이 벙벙해졌지만 누구하나 나서서 뭐라하는 사람이 없었다. 하긴 싸구려 야쿠자같이 생긴 아저씨한테 뭐라고 대꾸하겠나....

지금 생각해보면 한국말로라도 실컷 욕을 퍼부어 줬어야 하는데 싶어 너무 후회가 된다. 설마 사람많은 대합실에서  삐쩍마른 한국여자한테 해꼬지를 하지는 못했을텐데 말이다. 미친년마냥 쌍욕을 퍼부어 줬어야하는데 다시 생각해도 후회스럽고 빡치는 순간이었다.



고양이섬이라해서 마냥 주민들이 다 고양에게 친화적일거라 생각하고 있었던것 자체가 사실은 어리석은 일이었다. 다른 일에는 마냥 시니컬한 내가 그 부분은 왠일로 참 순진했었나보다. 대합실에서부터 무자비하게 그 환상은 박살이 나고 말았으니 말이다.


어쨌거나 내리는 비에도 아랑곳않고 약 20여분을 달려 배는 무사히 우리를 섬에 내려다주었고, 울렁거리는 속을 달래다보니 어느덧 비는 살포시 그쳐있었다. 보슬비가 흩뿌리고 간 평일 오전의 섬은  한산하다못해 적막하기까지 했고 관광객으로 들어온 나를 포함한 몇몇사람들은 꽤나 낭패스러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사진에서 본 고양이떼가 꼬리를 일렬로 세우고 구름처럼 몰려와 나를 에워싸는 진풍경을 기대했을터인데 이런젠장...결론적으로 섬을 반바퀴 도는 동안 내가 만난 고양이는 대략 10마리 남짓이었다. 또한 배에서 내리자마자 마주쳤던 '고양이에게 먹이를 주지마시오' 라는 팻말에는 당혹감을 감출수가 없었다 내용을 자세히 읽어보면 쓰레기정리와 환경을 위한다는거겠지만 배낭가득 사료와 캔을 챙겨온 관광객으로썬 무지 실망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어쩌다 만난 이섬의 고양이들은 냥냥거리며 사료를 탐하기 시작했고 굷주린듯 먹어대는 아이들에게 먹이를 주지말라는 지시를 따를수가 없었다.


젠장...애들 배불리 먹이기나하고 저런 푯말을 붙여놓던지 하지...이건 뭐냐...싶어 서운한 맘을 감출수가 없었다. 어쨌든 난 밥을 준 자리를 깔끔히 치우면서 몰래몰래 아이들 주린 배를 채워주면서 곳곳의 고양이들을 매의 눈으로 찾아다녔다.



사실 파라다이스를 기대한건 아니었다. 음식점의 모형을 보고 주문해서 씽크로율이 백퍼가 되지 않듯이, 이곳 또한 잘 포장된 여행기속의 모습과 똑같을수는 없을것이다. 또한 조금은 쌀쌀한 초봄의 비내리는 섬이라니..발바박에 물 묻는걸 엄청 싫어하는 고양이들을 생각하면 나라도 은신처에 콕 처박혀 낮잠을 청할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섬에서 만났던 냥이들이 생각했던것보다 건강상태나 생활환경이 만족스럽지 못한건 사실이었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생각이다) 하지만 날씨가 좋은 날이면 수많은 고양이덕후들이 이 섬에 몰려와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는 주민들이 얼마나 많은 피해를 입을까도 생각해보면 이런 상황이 조금은 이해가 되기도 헸었다.


섬을 반시계방향으로 돌다보니 가정집은 사라지고 점점 으슥해지는 산길이 나오더니 을씨년스러운 기운이 퍼지는 곳으로 길이 점점 이어지는게 아닌가..사람은 또 왜 이렇게 없는지...같이 배를 타고온 사람들은 죄다 어디로 들어가버린것인지 왠지 저 고개를 넘으면 뭔가 돌아오지못할것만 같은 찜찜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때마침 비가 다시 부슬거리기 시작했고 배시간도 애매한 상황이 되어버려 다시 되돌아온 길로 돌아나올수밖에 없었다. 조금만 더 시간여유가 있었다면 섬에 하나밖에 없다는 그 식당에 들러 우동을 먹었어야하는데...


어찌됐든 배 시간에 쫓겨 섬을 반바퀴도 채 돌지 못한채 다시 나와야했을때, 올 블랙 두 녀석이 서로 대치하며 으르렁대는 상황에 마주하게 되었다. 한놈은 빨간 목줄을 하고 있는것으로 보아 주인이 있는 외출냥이일터..(아이노시마에선 집고양이는 목줄을 해서 길냥이와 구분한다고 한다) 요 두놈이 아주 암팡지게 팽팽한 구도로 꼬리를 부풀리고 있는게 구경꾼들에겐 마냥 귀여워보였나보다. 배를 같이 타고 들어왔던 일본청년과 난 카와이~~~를 같이 외치며 금새 마주보며 깔깔대기 시작했고 , 그때 저 멀리서 홍반장처럼 나타난 카리스마 할아버지가 자전거로 이 둘을 '무심한듯 시크하게' 갈라놓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깐족대는 두 녀석이 너무 귀여워 말도 통하지 않는 우리 셋은  한참을 웃어댔다. 그저 고양이를 좋아하는 마음 하나로 국적불문, 나이불문하고 잠깐이나마 친구가 된 이순간이 이번 아이노시마 섬 여행에서 가장 마음에 깊이 남은 순간이었던것 같다. (그 청년과  배를 타고 섬을 나갈땐 다시 어색해졌다)



이렇게 섬을 떠나기는 너무 허하고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다음을 또 기약하자 싶었다.

나가는 표를 사기위해 선착장 매표소에 들어서니 왠걸~섬을 떠나는 나에게 마지막 선물처럼 나타난 이 새하얀 터키시앙고라 모녀 덕분에 그나마 서운함을 좀 덜고 아이노시마를 떠날수 있게 되었다. 영어가 통하지 않는 꼬맹이들한테 딱히 요녀석들에 대해서 물어보지 못해서 좀 아쉬웠지만 , 고양이 사진을 열심히 찍어대는 내가 신기했던건지 꼬맹이들이 고양이를 만지며 자기 사진을 찍으라며 내내 포즈를 취해준다. 귀여운 것들~눈치 빠르네 싶어 재빨리 셔터를 누르곤 아리가또 한마디를 날려줬다.



아이노시마를 마지막 일정으로 많은 아쉬움을 느끼며 짧은 후쿠오카 여행이 마무리되었지만, 많은 고양이를 만나지 못했다고 딱히 실망할것도 없었다. 나름대로 이 날을 고대하며 여행일정을 짤때의 설레임과 이날 아침일찍 출발하며 섬을 향해 가던 전철안의 기분좋은 기다림이 다 이번 여행의 참맛이었던 것 같다. '에이~가봤더니 별거없더라' 는 말을 듣고, 가지 않았다면 오히려 많은 후회를 했을것만 같은 고양이섬 아이노시마..


인위적인 모습의 고양이 천국였다면 오히려 뭔가 어색하다고 느꼈을지도 모를 일...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도, 싫어하는 사람도 적절히 어울려살고 그들에게 과한 관심도 그렇다고 무관심도 아닌 적절한 길고양이의 삶을 관조하는 듯한 섬주민들의 모습이 오히려 더 인간적이고 자연스러웠던것 같다. 어찌보면 대만의 고양이마을 허우통처럼 고양이를 너무 상업적으로 만들어 상품화하고 캐릭터를 팔고 하는 모습이 나에겐 더 어울리지 않은 여행이었을것이다.

난 그저 일상의 모습으로 사람들과 함께 자연스럽게 녹아있는 길냥이들의 모습을 원했던것같다.


언제가 될지 기약할순 없지만, 언젠가 또 다시 이섬을 만날 날을 조용히 고대해본다.

그때까지 아이노시마 사요나라~~~~아리가또 고자이마시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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