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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나나 Aug 05. 2018

#27 잘가..나의 눈부셨던 고양이여~

                       

2017년 2월 1일 늦은밤...내 가장 아픈 손가락  "고나비" 영원히 잠들다...


나와 6년의 시간을 함께 지낸 내 아이는 그렇게 떠났다.

다음날로 넘어가는 자정 12시를 갓 넘기자마자.

겨울의 끝자락인 2월의 첫째날에 고맙게도 내품에서 마지막 숨을 내쉬며 그렇게 한줌 영혼으로 돌아갔다.


정신적으로 또 육체적으로 조금 모자란 아이였고, 잔병치레가 많았던 덩치만 큰 자이언트 베이비였기에 다른 아이들보다 몇배 더 손길이 많이 갔던지라, 늘 "내 가장 아픈 손가락" 이라 표현했었던 아이...평생 구내염으로 침을 달고 사는 너때문에 , 침만 흘리지 않았으면 소원이 없겠다 투덜대며 한겨울에도 남보다 많은 이불빨래를 견뎌내었었다. 너만 없었다면 여행도 길게 가고, 병원비도 덜 나오고, 빨래도 덜하고,

소소한 마음씀과 고생도 덜 할거라 그의 면전에 대고

무심히도 자주 내뱉었었다.  


너만 없었다면...너만 없었다면....

이 말을 무미건조하게 다 들으라는듯 중얼대는 이 엄마를 ...넌 ....어떻게 생각했을까.....


이제 정말.... 너는 없는데.....


펫로스 증후군 (pet-loss syndrome)

가족처럼 키우던 반려동물이 죽었을 때 반려동물을 키우던 사람이 슬픔이나 정신적 장애를 겪는 현상을 말한다. ‘반려동물 상실 증후군’이라고도 한다.            


동물병원 수의테크니션과 매니저로 8년간 근무하면서 많은 동물의 사고, 죽음, 노화, 안락사, 영원한 이별을 꾸준히 겪어왔었다. 많이 보았고 많이 무덤덤해졌다. 어느새 보호자들이 울면 이젠 솔직히 피곤해졌었다. 그저 그들의 슬픔에 통감하는 척 , 그게 투철한 직업의식인냥 스스로 포장해왔었다. 나에게는 그런 일련의

 사건들이 그저 직업이고 일상이었기 때문에...

그러면서 언젠가 나도 내 고양이들을 하늘로 먼저 보내야 할때가 오면

그들과는 다르게 쏘쿨하게 보내주리라 다짐하곤 했었다. 난 프로니까....



(좌) 생전의 고나비 난로를 사랑한...                      (우) 떠나기 3일전 모습




꺼이꺼이 통곡을 하면서 콧물은 바닥으로 주루륵 추하게 흘러내리는데 , 난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나비와 생전 가장 인연이 깊은 그녀에게 통화버튼을 눌러놓고선  "나비가 갔어...." 이 한마디만 툭 쏟아놓고는 녀석을 품에 부둥켜 안은채 내내 짐승같은 흐느낌만 토해냈었다.

고생 안하고 잘 갔다며, 너를 만나 이만큼 잘 살았노라고....

니 품에서 갔으니 얼마나 다행이냐는 그녀의 위로만이 전화기 사이로 흘러나왔다.


'난 프로란 말이야..예상했던 순서였어...도대체 왜 구질구질하게 울고짜고 있는거니 !!'

여러번 시뮬레이션을 거치고 다짐했었는데,  넌 뭐니..새삼 이런 멍충이 헛똑똑이가 없구나 싶었다.


(좌) 나비 유골함   (우) 떠나기전 늘 치이와 함께...



한동안 그의 흔적을 지우지 못했다.

집안곳곳 스며있는 너의 큼큼한 살냄새, 갈색침이 얼룩져있는 이불과 베개,

유일하게 물고 다녔던 생선모양 장난감,

그가 마지막으로 누워 있었던 담요를 치우지 않은 채 일주일이 꼬박 먼지처럼 흘러만 갔다.

그의 냄새가 사라져 버릴까 두려웠고,  그의 털을 쓰다듬던 내 손이 그 감촉을 잊어버릴까 무서웠다.




그렇게 그 녀석이 떠나고 5묘가 남은 이집에 1년 6개월이란 시간이 바람처럼 지나가버렸다.


다들 먼저 떠난 형아생각은 눈곱만큼도 안하는지 얄미울만큼 평화롭게 지내는 독수리 오형제들..

슬픔은 오롯이 나 하나의 몫인가 싶어 얄미울 때도 가끔 있다. 그저 고나비의 영원한 단짝이었던 "치이"의 건강이 나비가 떠난후 갑자기 안 좋아진걸 빼고는, 역시  다들 무탈하고 편안하다.

이제 치이도 많이 회복되어 다들 그저 그런 날들을 무난하게 잘 흘려보내고 있다.


증후군이라 할만큼 힘든 시간을 겪지는 않았으니 다행스럽다 생각하면서도

너무냉정하게 그를 잊어가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가끔 든다.

하지만 그에 대한 그리움은 저 아래쪽에 살짝 덮어놓은 것일뿐

오롯이 나 혼자만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이라 설명해야겠다.


"펫로스 증후군"을 겪는 이들에게 유난스럽다고 혀를 끌끌차는 자들이 많이 있음을 익히안다.

그들은 꼭 부모의 죽음과 이것을 동일선상에 놓고 그 슬픔의 강도를 비교하기도 한다.

펫로스를 극복하지 못해 심지어 자살을 시도하는 반려인도 있었으니,

그들 눈에 이런 사람들이 어떤 모습으로 비춰질지 이해가 안가는 바도 아니다.  

한낱 짐승의 죽음에 무에 그리 애통할 것이 있냐며 혀를 끌끌차는 그들의 날선 힐난에

우리 반려인들 누구도 섣불리 답을 하기는 어려울 것만 같다.  


그들에게 이해 자체를 바라는 것이 오히려 무리수 이지 않을까? 생각하며

그저 ...누구나 내 손톱 밑의 가시가 제일 아픈법이므로....이 문장으로 답을 하려한다.


타인의 고통과 슬픔을 온전히 이해한다는건 애시당초 불가능한 일이기에....




p.s  고나비에게...

인간에겐 총 4번의 생이 있대..

지금이 나의 몇번째 생인지 알수는 없지만

만약 마지막 생이 한번 더 남았다면

그땐 니가 나의 엄마가 되어주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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