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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나나 Aug 28. 2018

#30  싸움의 기술

나보다 더 약자를 지키기 위한 독한 처세술

선천적으로 싸움을 잘 못한다 나는...

여기서 싸움은 물론 치고박고가 아닌 두뇌싸움 혹은 사소한 말싸움을 말한다. 평소엔 말주변이 나쁜편은 아니지만 열받고 분해죽겠는 상황에선 대부분의 사람들 특히 여자들은 눈물부터 앞서는 게 사실이다. 울면 지는 것 같아 그러고 싶지 않지만 마음만큼 말빨이 앞서지 않을 땐 그저 눈물이 쏟아진다. 그러고 나서 집에 돌아가면 그때 이렇게 말했어야 하는데 왜 그러지 못한 걸까 싶어 또 밤새 이불킥이다.



사소한 동네싸움을 시작하게 된 건 순전히 길고양이 밥을 챙기기 시작할 무렵부터였다. 동네 인심이 후하고 길냥이에게 우호적인 지역이면 그나마 땡큐지만, 그 와중에도 늘 고약한 인간들은 섞여있는 법.. 잘 지내다가도 여지없이 '아가씨 거기서 뭐해욧!!'라는 가시 돋친 멘트가 뒤통수에 딱 꽂히는 날이 간혹 있다. 액센트와 뉘앙스 성량부터 아..걸렸구나...싶다. 아무것도 모르던 쫄보시절엔 그저 숨어서 아무것도 안 하는 척 밥주는 기술을 연마하기에 바빴고, 들킨다 싶으면 냅다 튀자라는 주의였다. 세상이 얼마나 험한데 저런 인간들한테 시비 붙어봤자 해코지당하는 것밖에 더 있겠어 싶었고 그저 무서운 게 아니라 더러워서 피한다는 자기 위안으로 애써 싸움을 피해왔었다. 하지만 그것도 몇 년 동안 당해오자 ' 내가 뭘 잘못했는데? ' 라는 반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또한 야밤 길냥이 밥셔틀을 돌면서 연마해왔던 똥배짱이 차올라오던 시기이기도 했다. 한마디로 이래저래 맷집이 생긴다고 해야 하나...




작년겨울 동네 편의점 앞 매대에서 조명 하나에 의지해 칼바람을 피하던 삼색이 길고양이가 있었다. 어찌나 애교가 많고 길거리 출신으로는 보기 힘든 미묘의 소유자로 많은 동네 주민들의 사랑을 받던 녀석이었다. 데려올 형편은 아닌지라 출퇴근길에 늘 그 녀석의 안부를 확인하고 이 겨울을 어찌 보낼까 전전긍긍하던 시절이었다. 출근 때는 밤새 얼어 죽은 건 아닌지, 퇴근길엔 캔 하나 먹이고 떨어지지 않는 슬픈 발걸음으로 돌아만 왔었다. 이 동네에 유일하게 요놈을 눈에 가시처럼 여기는 중년부부가 바로 그 편의점 앞 OO빌라 2층에 살고 있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이 녀석을 보살피고 있었는데, 슬슬 부부가 쌍으로 시비를 걸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밤바다 여기 밥을 주니 고양이들이 몰려와 잠을 못 잔다. 데려다 키워라. 싹 다 죽여버린다..등등 고양이 혐오자들의 고정 래퍼토리를 풀었다. 이미 그런 것에 단련이 될 대로 된 나를 잘못 건드린걸 그 부부는 몰랐을 거다. 아마도 '죄송합니다'라고 인사하고 사라질 줄 알았을 거다. 난 ' 뭐요?' 하는 띠거운 표정으로 위아래를 한번 살기를 듬뿍 담아 슬로우모션으로 쑥 훑어봐주고  하던 일을 계속했다. 그랬더니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아저씨가 드디어 본색을 더 드러내며 이년저년 쌍욕을 퍼붓고 허리를 꺾여서 죽여버린다고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다. 잘 걸렸다 싶어 지금 뭐라그랬냐... 날 죽이겠다는 거냐고 ..그래 죽여라 죽여! 할 거면 CCTV 있는 여기서 죽여!! 라고 반미친년처럼 소리소리를 질러댔더니 , 그제서야 아줌마가 남편을  뜯어말리고 아가씨가 잘못 들은 거라며 아저씨를 끌고 가고 아주 난리도 아니었다. 그렇게 한밤중 싸움은 완전승으로 내가 이겼고, 이후 몇 번을 마주쳤지만 끽소리도 못하는 꼴이라니...아마 집에 돌아가서 이랬겠지 ' 동네 미친년 하나 산다고...'




요즘 푹 빠져 폐인이 되어 있는 '미스터션샤인' 이라는 드라마가 있다. 호텔 여급에게 추근덕대는 남자 손님에게 호텔사장 쿠도히나역의 김민정은 접시를 깨 손님의 손을 그어버리곤 이런 명대사를 던졌다.

"누가 널 해하려거든 울지 말고 물기를 택하렴.."


어느 날엔가부터 난 늘 울고만 있었다. 그 여급처럼..길냥이를 도우면 혐오자들에게 그런 일을 당하는 게 당연한 거라며.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이제서야 알게 되었다. 나같이 힘없고 빽없고 연줄 없는 자가 자신을 지키고, 나보다 더 약자인 동물을 지킬 수 있는 힘은  "물어버리기" 라는 것을...


친한 캣맘 언니는 그랬다. 니가 그럴수록 해코지는 길냥이한테 가지 않겠냐고.. 그런 싸움은 피하는 게 도리라고..

'아니, 언니..겪어보니 저런 사람은 변하지 않아..

 밟으면 꿈틀이 아니라 깨갱하고 나 죽었소 하고 납작 엎드릴 거라 생각하는 족속들이야.. 그들한테 꿈틀이 아니라 벌떡 일어나 다시는 못 건드리도록 손목을 부러트리는 게 맞다고 생각해..'

 그 언니의 생각 또한 당연 맞는 말이다. 하지만 내가 우아하게 비껴가야지, 싸우면 그들과 똑같은 수준 되는 거야 라고 피해왔던 그 시간 동안 길냥이들이 당했던 피해가 줄어들었느냐 묻는다면.. 아니. 전혀 그렇지 않다. 확신한다 이건.. 우린 피하고 겁먹으면 바보 등신 소리를 듣는 세상에 산다.

나도 우아하게 살고 싶고 또 우아하게 싸워보고 싶다.

하지만 과연 그게 가능하기나 한 것일까?

우아한 싸움은 상대방도 그러한 품격을 갖추었을 때나 가능한 것을.....


나도 우아하게 살고 싶은데...
가만 두지를 않네...세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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