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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나나 Aug 10. 2018

#29  역시 강아지는 무리야

강아지임보 극한체험수기

2017년 봄 강아지 한마리를 임보하게 되었다.


SNS에 임보소식과 입양공고를 띄운지 얼마안돼 지인들은 고양이아니고 강아지? 강아지? 라고? 를 몇번이나 재차 물어봤다. 어찌보면 사실 제일 당황스러운 것은 바로 나였다. 동물병원에서 오래 근무하고 보호소봉사활동 및 구조 입양등의 개인활동을 꾸준히 해오고 있었지만, 강아지는 그야말로 집 밖에서 철저히 일적으로 만나는 동물이었다. 지난 10년간 고양이집사로만 살아온 내가 강아지를 임보하게 된건 그 아이가 처음이자 아마 마지막일 것이다.



어떤 루트를 통해 들어온건지는 확실치 않았다. 어느날 원장님의 지인을 통해 들어온 4-5개월령의 발바리 수컷강아지가 병원에 오게 되었다. 유기견이라고만 했고 왜 병원에 있게 되는지 정확히 알려주지 않았다. 다른 수의사선생님들도 모르는 눈치 였다. 하지만 이유를 알던 모르던 요 쪼매난 놈이 어찌나 한 귀염하는지 도통 일에 집중이 안될정도로 백퍼센트 내 스타일이었다. 내가 딱 좋아라하는 검은 주둥이에 시골장터에 할머니들이 박스에 담아 내와서 '만원에 가져가슈' 하는 딱 시골 똥개스타일..완전 취항저격당하고만 그 녀석의 이름은 " 어린이" 였다.


얼마뒤  병원엔 수의대 인턴 몇명이 실습을 위해 들어왔다. 내가 '어린이'의 용도(?)를 알게 된건 이 인턴들이 들어오고 얼마 지나지 않을때였다. 그렇다. 이미 짐작할 이도 있겠지만 '어린이'는 인턴들의 실습용으로 쓰일 강아지였던 것이다. 그 사실을 알고부터 내가 얼마나 길길이 날뛰며 열폭했는지 모른다. 어설픈 인턴들이 혈관을 찾기위해 한번도 아니고 두세번씩 계속 찔러대면 처치실안에선 어린이의 깩 하는 비명소리가 계속 새어나왔다. 하루이틀 그 소리를 견디며 일하려니 너무너무 참담하고 이를 말리지도 못하는 내가 , 원장한테 대들지도 못하는 내 자신이 너무 초라했다. 수의학계에 실험견, 공혈견, 실습견이라 불리는 동물들이 있다는건 공공연한 사실이나 굉장히 엄격하고 윤리적으로 관리되어하는 이 대상들이 한국에선 아직 주먹구구식으로 조달되고 사용되고 있다. 실습견으로 사용하기 위한 법적인 절차가 응당 존재하지만 굉장히 까다롭고 복잡하다. 이를 제대로 지킬 수의사들도 적을뿐더러 이를 감시고발하는 직원과 시스템도 없으니 그저 서로 눈감아 주고, 그러려니 하는게 지금까지의 관습이었다. (이는 반드시 앞으로 적법하게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어쨌든 어린이의 중성화수술까지 실습 겸 참관을 다한 인턴들이 학교로 돌아가자. 내심 이 아이가 또다른 병원의 실습견으로 넘어가는건 아닐까 하는 조바심에 급기야 입양을 가장하여 내가 데려가겠노라고 정말 무대책으로 어린이를 반강제적으로 넘겨받고야 말았다. 까칠새침한 고양이 5마리가 있는 코딱지만한 내 집에 말이다.


(좌) 은근슬쩍 고양이 코스프레 중                                                           (우) 싸우다 정든 캠벨과 어린이



그날로부터 나의 고난은 시작되었다.

십자가를 짊어지고 갈보리언덕을 오르던 예수님보다 더한 고난의 행군이랄까...^^ 생후 갓 6개월령의 수컷 강아지의 에너지는 상상을 초월했다. 집안 그림처럼, 소품처럼 잠만 자는 고양이에 익숙한 내게 이 파이팅넘치는 백만돌이 에너자이저 때문에 흔한 말로 없던 다크서클이 도가니까지 내려올 지경이었다. 어린이를 데려오고 하루이틀만에 내 SNS 에 올린 글귀는 '강아지는 언제 자나요?' 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내 고생은 고생이라 말할수도 없었으니 , 우리 5묘들은 신경이 날카로워질때로 날카로워져 매일매일이 전쟁통이었는데. 이걸 아는지 모르는지 눈치제로 발바리 어린이는 마냥 좋다고 고양이들을 쫓아다니기 바빴다. 나는 매일 "안돼" 와 " 그만해" 를 수십번씩 고래고래 소리 질러대고만 있었으니 곧 피를 토하고 득음을 할 기세였다.


강아지를 임보하면서 부딪힌 가장 큰 난제는 바로 1일 1산책이었다.

강아지 집사들이 준수해야할 필수 규칙, 바로 산책!

'최고의 처방은 산책입니다' 라는 말이 있을정도로 강아지들의 모든 스테레스 해소, 문제행동 해결에는 산책만한 것이 없다. 이를 너무 잘 아는 사람으로써 이를 소홀히 할수는 없는 법! 하지만 현실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그동안 산책 잘 안시키는 보호자들에게 퍼부었던 내 잔소리는 위선이었음에 틀림없다. 안 키워봤으니 나도리얼 현실을 몰랐던 것이리라...퇴근길 납덩이같은 몸을 이끌고 들어오니 개난장판이 된 집안과, 반쯤 씹다버린 슬리퍼. 오줌테러로 나를 경악케 한 이 녀석때문에 경기를 일으킬뻔한 날이 거의 매일 이어지고, 그 와중에 반갑다고 나가자고 숨이 넘어갈듯 나를 반기는 이 어린이의 해맑은 모습이란....

"You Win... 내가 졌소....."



(좌)놀이터에서 한바탕 놀이                                                                (우) 어린이에게 인기짱인 어린이




어쨌든 이 짧은 임보는 거의 이삼주만에 끝이 나고 말았다. 물론 해피엔딩으로 말이다.

입양자복이 참 많은 나는 우연히 어린이를 보게 된  '케어' 박소연대표님의 눈에 띄어 어찌어찌 퍼펙트한 엄마아빠를 바로 만나게 되었고, 헤어지던 날 그분들에게 안겨서 내쪽으로 막 오려던 어린이를 보고 또다시 폭풍눈물을 쏟아내고 말았다. 정말 빨리 보내고싶었고 도저히 나는 강아지는 못 기르겠구나를 다시 한번 팩트폭격시켜준 얄미운 녀석이었는데, 고양이 입양때보다 더더더 많은 눈물을 흘렸다.  입양자님이 너무 당황하실 정도로 말이다.


입양보낸 아이들이 그리울때마다 가끔 눈시울이 붉어지는게 보통인데, 왠걸 이 녀석만 생각하면 '하하하' 오히려 한번 크게 배꼽잡고 웃게 된다. 이제는 (구) 어린이 (현) 광명이란 이름으로 개명도 하고 1일 1산책을 철칙으로 생각하는 엄마의 넘치는 사랑을 받고 잘 지내고 있다.


어린이로 인해 너무 극한체험을 했던걸까?

여전히 강아지는 못키운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다. 아니 더 확고해졌달까? ㅎㅎ

분명히 미운데 밉지 않은 이 녀석이 오늘따라 괜히 더 보고싶다.


널 데려올 용기를 냈던 게 얼마다 다행이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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