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원에 놀러 가요 / 김성은
아빠와 함께 놀러 가요
손을 잡고, 무릎에 앉아
훌쩍 뛰어요, 미끄럼을 타요
알록달록, 예쁜 꽃핀...
바람이 불어요,
아빠 옷은 참 따뜻해요...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 안에 '상처받은 내면 아이'를 하나씩 품고 살아간다고 한다. 지나간 시간과의 대면, 그 기억 속에서 버려진 아이처럼 서성이는 내면 아이.. 간결한 한 줄 한 줄의 글과 함께 연결되는 작은 그림들을 넘겨보면서 내가 보낸 유년의 시간 그 어디쯤에서 자라지 못하고 멈춰버린 한 아이를 바라본다. 가만히 등 쓸어주고 싶어 지는... 안아주고 싶어 지는....
도서관에서 우연히 이 그림책을 보았을 때 나는 내 안의 그 아이가 걸어나와 내가 좋아했던 어느 아는 이와 닮은 얼굴을 하고 있는 저 아빠와 그림 속처럼 따뜻한 한 때를 보내는 '아이'의 마음이 되었었다. 마음 든든해지는 그 이의 따뜻한 손을 잡고 가만가만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손길을 느끼며 맑은 웃음을 짓는 아이, 마냥 행복한 아이... 길가의 꽃을 바라보며 미소 짓고, 천진하게 새를 좇는 아이... 나는 상처받은 내면 아이에게 그렇게 저 아이를 투영시켰다.
지난 시절의 결핍을 보상받고 싶은 마음이었을까. 가만가만 책장을 넘기며 천천히 바라보던 그 그림들은 작고 여린 내 마음을 포근히 감싸주는 듯했다. 코끝에 감도는 감미로운 향기, 살랑 부는 바람 한 줌, 즐거운 웃음소리... 부드럽고 아련한 색채와 톤으로 그려진 두 사람의 모습에서 나의 후각과 촉각, 청각까지 깨어나는 듯했다. 그렇게 어루만져주는 듯했다. 괜찮다.. 괜찮다.. 이제는 괜찮다...
시간 속에 숨겨 놓은 한 시절, 작은 그림책 한 권으로 치유받던 내 마음.
2009년, 그해 가을의 벼룩시장에서였나.. 이미 절판되어 온라인 서점에는 찾아볼 수 없었던 이 그림책을 한 엄마의 판매물품 꾸러미에서 만나곤 내심 반가웠는데, 그 마음을 알았는지 아이의 엄마가 부른 너무나 착한 가격에 책을 건네받을 수 있었다. 알고 보니 이 책은 '신기한 아기나라'라는 4권의 시리즈로 구성되었던 그림책. 그 집의 아이들은 엄마가 읽어주던 이 책을 보며 컸으리라. 가족의 온기가 담겨있는 듯해 책 표지를 가만히 쓸어보았다.
마음에 들었던 2권을 품에 담고, 나머지 두 권은 도서관에 기증하고 집으로 돌아왔었지. 이것이 나의 인연이 가져다준 또 하나의 기분 좋은 우연은 아니었을까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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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1년여의 시간이 흘렀던가... 내 시야에서 말없이 사라져버렸던 그 사람을 찾아 속절없이 보내야 했던 나의 시간. 어느 날 정말 거짓말처럼 내가 찾았던 그의 모습의 실체를 느닷없는 사진들로 마주하게 되었을 때, 언젠가 그 이가 표현했던 '내 마음이 그린 그림'이라는 말을 되내어야 했다.
내 서재에 올려두었던 이 그림과 글로 같은 풍경을 보며 그는 아마도 그가 보내온 다른 시간을 떠올렸으리라..... 그림책을 보며 느꼈던 나의 마음은 그저 '내가 그린 혼자만의 그림'이었다는 걸 뒤늦게서야 홀로 헛헛하게 깨달아야 했다.
그로부터 또 3년여의 시간이 흐른 뒤, 곁에 두었던 이 그림책은 지금은 내게서 잠시 떨어져, 다른 곳에 거쳐하는 나의 또 다른 책꽂이에 옮겨두었다. 함께 구입했던 나머지 그림책도 함께. 이제는 무감하게 바라봐야 하는 이 책을 그만 놓아주어야 할 것 같았다.
지난 여름 사촌동생이 첫딸을 얻었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추석날 아기바구니에 실려온 작고 뽀얀 그 아이가 꼬옥 오므리고 있던 앙증맞던 손과 발. 그 아이가 엄마 아빠에게 두 팔을 벌리며 아장아장 걸음마를 떼기 시작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면 아마도 이 그림책은 아빠라는 이름을 얻게 된 그 사촌동생의 품으로 보내지게 되리라. 내겐 뒤늦은 아픈 깨달음을 일깨우게 했지만, 그래도 내 가슴 한켠을 살포시 어루만져 주었던 이 착한 그림책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