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간채집자 Apr 06. 2016

숲은 숨이고, 숨은 숲이다

나무를 그리는 사람 / 프레데릭 망소



'숲’이라고 발음하면 입안에서 맑고 서늘한 바람이 인다. 자음의 서늘함이 모음의 깊이와 부딪쳐서 일어나는 마음의 바람. 그래서 숲은 늘 맑고 깊다…. 숲은 산이나 강이나 바다보다도 훨씬 더 사람 쪽으로 가깝다. 숲은 마을의 일부라야 마땅하고, 뒷담 너머가 숲이라야 마땅하다…
– 김훈 , <가까운 숲이 신성하다>, <<자전거여행>>에서






‘숲’의 어감에서 느껴지는 울림을 되새기게 했던 그림책 소개합니다. 가만히 글자만 들여다보아도 어느새 숲 속에 온 것 같다고 했던 한 소설가의 글을 새삼 떠올려 보게 했지요. ‘마을의 일부’로, 살갑게 자리하는 ‘사람’의 숲. 그림책 속 주인공인 프랑시스 아저씨는 매일 그 숲에서 그림을 그립니다. 촉촉한 그늘이 드리워진 숲에서 맑은 공기를 깊이 들이마시고 코끝에 감도는 향긋한 꽃향기와 따뜻한 흙냄새를 맡으며 옆으로 누운 거대한 나무에 앉아 쭉쭉 뻗은 거인 나무들을 바라보며 나무뿌리, 나무껍질, 나뭇가지, 나무덩굴, 나무이끼, 무엇 하나 빠뜨리지 않고 그리지요.



정교한 스케치와 화려한 색감의 표지부터 시선을 한눈에 사로잡은 이 책은 그림에 몰입하게 만드는 커다란 판형으로 보는 즐거움을 한껏 만끽할 수 있습니다. 작가의 그림과 글은 생동감과 풍요로움, 아늑함을 간직한 숲의 속살들을 하나씩 보여주지요. 검은선의 펜화와 면을 가득 채운 컬러 그림들이 교차되는 편집은 글의 리듬감을 살려 줍니다. 바다포도나무와 케이폭수, 마호가니, 모아비, 세크로피아 등  숲의 겹겹에서 만나는 낯설지만 신비로움을 더하는 이국의 나무들은 화가의 섬세한 붓끝에서 정교하게 묘사되어 화사한 색감만큼이나 이야기를 더욱 다채롭게 합니다.



그리고 그려도 자꾸 빈자리가 남는 도화지를 채우기 위해 자전거 페달을 밟고 열기구를 타고 숲을 누비던 어느 날, 아저씨는 검게 타버린 숲으로 떨어집니다. 주변을 가득 채운 매캐한 냄새와 절단기와 불도저의 굉음에 숨 쉬기가 힘들지요. 일분, 한 시간, 아니 어쩌면 하루가 지났을까요. 죽어가는 숲에서 슬퍼하던 아저씨의 도화지 위에 떨어진 모아비나무의 눈물방울이 천연색의 꽃송이로 수놓아지며  숲 전체로 펴져갑니다. 맑은 숨결을 불어넣듯 따뜻한 나무의 온기와 생명력으로 다시 살아나는 숲을 환상적으로 담아내지요. 하늘과 땅 사이, 마치 푸른 거인의 손에 앉아 있는 것처럼, 새하얀 아름드리 모아비나무에 다시 오른 아저씨. 여지없이 그의 손에 들려진 도화지와 펜으로 다시 살아난 숲을 그리는 모습으로 마무리되는 이야기의 결말은, 집 앞 왼쪽으로난 작은 길과 오른쪽 길을 따라 상상과 현실을 교차시키는 구성으로 그림책의 묘미를 살리며 작가 특유의 유머와 재치도 함께 담아냈습니다.




이 작품은 하루하루 그림으로 숲을 기록하는 식물학자인 프랑시스 알레라는 실존인물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원스 어폰 어 포레스트(원제 : Il était une forêt )」를 보고 만들었다고 합니다. 판권 부분에 원서로 표기된 영상 크레딧이 실려 있는 이유이기도 하지요. 그림책을 읽고 인터넷에서 그 영화에 대해 검색하다 보게 된 스틸 컷들을 보니 국내에서는 미개봉된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제작되었다는 그 영화를 꼭 보고 싶어집니다. 싱그러운 숲의 생명력, 우리들 몸과 마음의 깊은 안쪽을 깨우고 또 재우는 숲에 이는 바람, 바람이 흔드는 그 나무의 숨결로 마음을 치유하는 기회를 가져보게 되기를. 일분, 한 시간 어쩌면 하루라도 말이지요.


숲은 대지 위로 펼쳐 놓은 숨의 바다이고 숨이 닿는 자리마다 숲은 일어선다. 그래서 숲은 우거져서 펼쳐지고 숨은 몸 안으로 스미는데 숨이 숲을 빨아 당길 때 나무의 숨과 사람의 숨은 포개진다.
-김훈, <숲은 숨이고, 숨은 숲이다>, ≪자전거 여행 2≫*에서




                                                                                             

                                                                                                                                                                                                 



가봉의 콩고 강 유역과 페루의 아마존을 배경으로 700년에 걸쳐 생성된 원시 열대림이 경이롭게 펼쳐지는 뤽 자케 감독의 <<원스 어폰 어 포레스트>>는 환경 분야 중 가장 뜨거운 쟁점인 지구의 허파, 즉 원시 열대림에 관한 프랑스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나는 죽을 때까지 숲의 곁에서 숲을 위해 싸울 것이다. 혹시 누가 아나? 숲이 사라질 때 우리도 함께 사라질지.”
영화의 기획에도 직접 참여하고 등장하는 프랑시스 알레(Francis Hallé)는 식물학자이자 열대림 보호론자.

감독과 친분이 있던 그림책 작가 프레데릭 망소는 이 영화를 촬영할 무렵 촬영지인 가봉으로 건너가 2주일 동안 머물며 프랑시스 알레란 사람을 만났다. 그리고 그를 주인공으로 한 <<나무를 그리는 사람>>이라는 그림책을 탄생시켰다.


종이가 아닌 천에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유명한 화가 프레데릭 망소의 그림책 속에서 생생하고 신비롭게 담겨있던 원시림의 풍경. 영화가 궁금해 사진들을 찾아보다 보니, 보고 싶은 마음이 더 커진다. 2013년 말에 프랑스뿐만 아니라 캐나다, 독일, 벨기에, 스위스 등지에서 동시에 개봉, 프랑스에서만 관객 30만 명을 동원했다고 하는데. 아쉽게도 국내 미개봉작.

매거진의 이전글 가슴에 가만히 손 얹어 두는 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