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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래울 이선예 Sep 07. 2022

깍두기와 자장면

무조건 사랑

  깍두기와 짜장면


 몇 해 전에 아들이 결혼을 했다. 손녀딸도 태어났다. 나도 시어머니가 되었고 할머니가 된 것이다. 비로소 가족이 꽉 채워진 느낌이다.

요즘은 아무리 바빠도 어떤 음식이던 직접 만들어 먹으려고 노력한다. 내손으로 직접 만든 음식을 반찬 통에 하나 가득 담아 뚜껑을 닫을 때면, 그 뿌듯함은 예전에 느껴보지 못한 또 하나의 만족감이다. 정성스럽게 만든 음식을 주고 싶은 마음에 힘들지 않게 느껴진다.


 아들은 우리 집에서 자동차로 20분 거리에 살고 있다. 이 주일에 한번 정도는 다니러 온다. 아이들이 오는 날이면 전날부터 장을 봐오고 일찍부터 눈이 떠져서 집안청소도 하고 음식도 마련한다. 손녀딸이 태어난 뒤부터 편안한 식사를 위해서 주로 집에서 식사를 하는 편이다.

 딸이 없이 오로지 아들 하나만을 키워온 우리 부부는 손녀 딸 재롱에 시간 가는 줄도 모른다. 평상시에 말이 없고 과묵한 남편도 손녀딸만 보면 애교덩어리 할아버지가 되곤 한다.

 아들과 며느리는 김치도 잘 먹지만  깍두기를 더 좋아한다. 알맞게 익은 깍두기를 주고 싶은 마음에 아이들이 오기 며칠 전에 깍두기를 담구기도 한다.  어느 날 아들 내외가 다녀가고 보니 싸놓았던 깍두기를 깜빡 잊고 주질 못했다. 덩그러니 주방 한 구석에 놓여 있는 깍두기 통을 보니 당장 갖다 주고 싶었다. 아들한테 문자를 보냈다. 오늘은 너무 늦었으니 내일 오시라는 답이 왔다.

 다음 날 아침 멸치복음도 하고 나물도 몇 가지 무치고 과일도 챙겼다. 김, 감자, 양파, 오징어, 바리바리 싸다보니 보따리가 두 개가 되었다. 가방은 무거워도 마음은 새털처럼 가벼웠고, 발걸음은 날아 갈 듯 했다. 며느리한테 부담을 주는 것 같아 웬만하면 아들 집에 잘 가지 않는지라 은근히 설레었다.

  아들 집에 도착하니 손녀딸이 할머니 얼굴을 아는 듯 배시시 웃으면서 덥석 안긴다. 이런 것이 혈육인가 보다. 손녀딸은 오랜만에 봐도 잠시 어색해하다가 금방 웃어준다. 내 얼굴에도 웃음이 절로 지어진다.

 손녀 딸 재롱에 시간이 흘러가는 줄도 몰랐다. 시계를 보니 점심시간이 훨씬 넘어있었다. 며느리는 주방에서 이유식을 분주히 만들고 있었다. 자식 사랑은 내리 사랑이라고 시집 올 때는 집안 살림에 익숙하지 않았던 며느리가 아이 엄마가 되어 정성스레 요리하는 모습을 보니 대견해 보였다.

 손녀딸에게 이유식을 먹이고 나니 두시가 다 되어 갔다. 나도 어느새 출출해졌다. 그런데 아들이 “엄마 아기 재우는 시간이 두시인데 지금 재워야 할 것 같아요. 아기가 예민해서 낮에는 조용해야 잠을 자요. 점심은 다음번에 먹어도 괜찮죠?” 라고 한다. 아들 내외는 일요일이라 늦은 아침을 먹은 듯 했다. 나는 “그래, 아기 재우고 너희들도 한잠 자거라. 모처럼 휴일인데 쉬어야지. 엄마도 할머니 식사 챙겨 드리러 가야해” 라도 이야기하고 손녀딸과 안녕을 한 다음 서둘러 집을 나왔다. 며느리는 “어머님 식사는 하고 가셔야죠 ”하고 인사했지만 괜찮다고 사양을 하고 나왔다.

 아들이 주차장까지 배웅을 했다. 나는 얼른 들어가라고 손짓을 했다. 순간 33년을 한 집에서 살아왔던 아들이 왠지 낯설게 느껴졌다. 운전을 하고 집에 오는 도중에 나도 모르게 마음이 울적해졌다.

 어린 시절 산타 할아버지 선물을 잔뜩 기대하고 잤는데 아침에 일어나보니 머리맡에 아무것도 없었던 날의 서운했던 마음이 이런 것이었을까?

 일찍부터 이것저것 준비하느라 밥도 먹는 둥 마는 둥 했던지라 배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집에 계신 시어머니가 아들 집에 가서 밥도 안 먹고 왔냐고 할까봐 점심을 먹고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여기 저기 기웃거리다가 수타 자장면이라는 간판을 보고 중국집에 들어갔다. 자장면 한 그릇을 시켜놓고 냉수를 벌컥벌컥 마시고 나니 속이 시원해졌다. 자장면이 나오기 전에 단무지를 보니 또 울컥해졌다. 혀끝에 느껴지는 시큼달큼한 단무지를 씹으면서 오늘 깍두기를 갖다 준 것은 잘 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아이들이 맛있게 먹을 생각을 하니 금방 마음이 밝아졌다. 자장면한 그릇을 국물까지 싹싹 먹어 치웠다. 기분이 나아졌다. 배가 부르고 나서야 나의 옛 시절이 생각이 났다.  

 시댁이 종가집이고 남편이 외아들이라 최소한 아이 셋은 낳으리라 마음을 먹었지만 자식은 하늘에서 내려주는 듯 뜻대로 되지 않았다. 지금은 아들이 결혼을 해서 며느리가 생겼고 손녀까지 있으니 더 이상 바랄게 없다. 어쩌다가 종손 며느리로 시집와서 아들을  낳았을 때에 이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았었다. 다른 일은 뒷전이고 아들 양육에만 온 신경을 집중했던 그 시간들을 기억했다.

 아들 며느리도 지금 그럴 것이다. 이 세상을 다 준다 해도 바꾸지 않을 내 아이. 내 사랑. 나도 그 땐 그랬지! 사랑은 내리 사랑이야. 자장면을 먹은 포만감으로 몸은 나른해지고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콧노래도 나왔다. 어느 유행가 가사처럼 “무조건 무조건이야”를 흥얼거리면서.

 돌아오는 길에 코스모스가 계절보다 일찍 고개를 내밀고 나를 보며 살며시 웃어주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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