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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래울 이선예 Mar 24. 2024

거제도 가배리

나만의 동굴

  어느 해에 경상남도 거제에 있는 고등학교에서 강의 의뢰가 들어왔다. 거제도가 하루 일정으로 다녀오기에는 장거리라 고민이 되어 망설이니, 의뢰기관에서 다음날은 진주에서 강의 일정을 같이 잡아주겠다고 했다. 다시 말해 두 번의 강사료와 숙박비, 교통비까지 전부 지원해 준다는 것이다. 나는 잠시 갈등이 생겼지만, 이참에 여행도 한번 해보자고 마음을 먹고 강의를 수락했다.

  나는 주로 경기도 근교나 서울에서 강의했기 때문에, 강의를 결정하고 나니 생소한 지역에 아는 곳도 없고 숙박 장소가 문제였다. 더구나 타지에서 혼자 자본 적이 한 번도 없어서 고민이 되었다.

  친한 선배 강사에게 이야기하니 거제도에 아는 민박집이 있다는 것이다. 그 강사 남편의 후배가 서울에 살다가 귀촌을 해서 거제도에서 민박집을 한다는 것이다. 검색을 해보니 내가 강의를 하러 갈 학교와는 거리가 조금 떨어져 있었으나, 나는 선택의 여지없이 무조건 그 민박집을 예약했다.     

  첫째 날 강의 시간이 오전이기 때문에 하루 전날 거제도로 출발했다. 강의 둘째 날 일정은 거제에서 진주까지 가야 하므로 승용차로 출발했다. 장거리 운전이라 긴장이 되어서 고속도로에 있는 휴게소마다 쉬면서 민박집에 도착하니, 다섯 시간이면 갈 거리를 여섯 시간 만에 도착했다.

  민박집은 바닷가 바로 앞에 있었다. 나지막한 집들이 마을을 이루고 있었다. 인적도 별로 없고 멀리 고즈넉이 보이는 수평선이 평화로웠다. 빨간색 페인트로 칠한 유리창이 넓은 민박집은 한 폭의 그림 같았다. 민박집 바로 앞 바닷가에는 긴 그네도 있었다. 마침 해가 지고 있어 노을 지는 바다 풍경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장거리 운전을 한 피로가 한순간에 사라졌다.

  민박집주인 부부와 인사를 나누고 내가 묵을 방에 들어가니 바다가 바로 눈앞에 있었다. 금방이라도 바닷물이 방으로 밀려 들어올 듯 가까워 보였다. 아침에 복잡한 도심에서 출발한 나는 그 아름다운 풍경이 마치 꿈속에 있는 듯 실감이 나지 않았다. 막연히 꿈꾸던 그런 상상 속의 장면이 바로 내 눈앞에 펼쳐있었다. 유리창 밖으로 보이는 조용한 바다와 그네는 나를 동화 속의 나라로 데려다준 듯했다. 방에 있는 거울과 침대도 아기자기하게 예뻤다. 그런 집이 현실에서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민박집에 머무르는 이틀 동안 힐링이 되었다. 민박집주인도 오랫동안 본 사람들처럼 금방 친해졌다. 주인장은 내가 묵었던 101호 방은 언제든 오면 나에게 예약해 주기로 약속을 했다. 그 방에서 글을 쓰면 저절로 잘 써질 것만 같았다. 나는 당시에도 수필 공부를 하던 중이었다. 나는 꼭 다시 오겠노라고 약속을 하고 거제도에 나만의 공간을 마련하리라 마음먹었다. 나의 동굴이 바로 그곳이라는 생각을 했다. 강의 일정을 모두 마치고 오는 내내 바닷가의 동화 나라 같은 아름다운 분위기에 취해서 꿈을 꾸는 듯했다.

  그 후, 한 달 후에 나는 큰맘 먹고 고속버스를 타고 여유 있게 다시 가배리로 혼자 여행을 떠났다. 일이 아닌 휴식을 하기 위해서였다. 주인장 부부가 고속버스 터미널까지 배웅을 나와주었다. 다시 온다고 하고 진짜로 다시 온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고 하며 정말로 반가워하며 가족같이 맞아주었다. 나는 나의 101호에서 이틀을 묵으면서 글도 쓰고, 새벽 바다에 나가 산책도 하고, 주인장 부부와 난생처음 바다낚시도 했다. 나 자신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커다란 고등어를 10마리도 넘게 잡았다. 아마도 주인장 부부가 나에게 좋은 자리와 낚시 미끼를 잘 끼워준 덕분이었던 것 같다. 밤낚시 하던 날, 까만 밤하늘에 쏟아지듯 머리 위에 있던 수많은 별빛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꿈같은 이틀간의 여행을 마치고 집에 오면서 반드시 가배리에 나의 창작 작업실을 마련하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쉽지 않았다.


  일 년 후, 민박집을 소개해준 선배 강사와 같이 가배리를 다시 한번 다녀왔다. 가배리의 바다는 변함없이 잔잔하게 나를 반겨주었다. 그 후로 나의 30년 지기 지인들과 한 번 더 다녀왔다. 모두 네 번을 다녀왔지만, 그 후로는 몇 년 동안 바쁜 일 관계로 가배리를 갈 수가 없었다. 뒤늦게 그 주인장 부부가 귀촌 생활을 그만두고 서울로 다시 올라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주 오래전이지만 어느 개그맨의 “속세를 떠나거라~”라는 말이 한동안 유행하기도 했다. 사람은 엄마의 자궁 안에서 생명의 씨앗을 싹 틔울 때부터 인간으로서 존재가 형성되며 가족원으로 구성원이 된다. 하지만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신이 아닌 이상, 살면서 혼자만의 공간과 시간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살다 보면 어느 날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날이 있다. 내 경우를 보면 똑같은 일상의 지루함이라든가 아니면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예상치 못한 일을 이겨내야 할 때가 그러한 것 같다. 이를 피할 수 없고, 떠날 수 없는 상황이라면 나만의 동굴인 혼자만의 공간이 필요하다.

  나는 아직도 나만의 동굴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지금도 마음이 힘들거나 휴식이 필요할 때 가배리 바닷가가 눈앞에 아른거린다. 언젠가는 나만의 동굴을 갖는 날을 상상해 본다. 꿈을 언젠가는 꼭 이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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