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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래울 이선예 Apr 13. 2024

지하철 경로 우대석

청년 실버 화이팅!


                                                     

  오전 9시에 인천에 있는 치과에 예약이 되어있어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이른 시간에 인천 방향으로 가는 지하철은 한적해서 자리가 텅텅 비어있었다. 몇 해 전부터 나도 경로 우대를 받는 나이가 되었다. 처음에는 지하철 요금이 무료라는 것이 어색했지만 어느새 익숙해졌다. 처음에는 경로석에 앉아있다가 나이 든 할아버지한테 혼을 난 적도 있다. 그 날따라 모자를 쓰고 배낭을 메고 있었는지라 할아버지 눈에는 얼핏 내가 젊은 여자로 보였는지 “언니는 일어나”라고 하는 소리에 민망해서 얼른 일어나 다른 자리로 간 적도 있었다.

  언젠가 인터넷에서 나이 든 사람들이 경로 우대석에 가지 않고 일반석에 가서 서 있거나 앉아있으면 젊은이들이 불편해한다는 글을 보았다. 요즘 지하철은 장거리를 이용하는 직장인들이 많으니 온종일 일과에 피곤한 젊은이들도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다. 자리 양보를 바라는 노인들이 자기들의 자리를 빼앗는다고 싫어한다는 글을 본 이후에는 웬만하면 지하철이 텅 비어있어도, 자리가 없어도 경로석 쪽으로 가서 자리를 잡는다. 요즘에는 그 자리가 내 자리인 것 같은 생각이 든다. TV 보도에서 젊은이들의 카페도 노인의 입장을 거절하는 카페가 있다는 보도를 본 적이 있다. 노인들이 분위기를 무겁게 하거나 불편하게 해서 그렇다는 이유이다. 사회가 세대별로 날로 냉정해진다는 생각이 든다.     

  지하철에 자리를 잡고 앉다 보면 옆 사람의 움직임에 신경이 쓰인다. 오늘 옆자리에 앉은 70세 정도 보이는 여자 노인은 작은 종이에 깨알같이 쓴 영어 메모를 열심히 보고 있었다. 얼핏 옆에서 보아도 영어로 쓴 필체가 달필이다. 노인회관을 다닐까? 복지관을 다닐까? 문화센터를 다닐까? 혼자 이리저리 상상해본다. 아니면 해외여행을 앞두고 공부를 하는 걸까?

  맞은편 앞 좌석에 앉은 할머니는 글씨체가 커서 마주 앉은 자리에서도 잘 보이는 요양원 팸플릿을 열심히 보고 있다. 누가 아픈 걸까. 나이 든 부모님이 아직 살아계신 걸까? 아니면 본인이 아파서 가려는 걸까? 

  치과 치료를 마치고 집에 오는 길에 앉았던 60대로 보이는 옆자리 할머니는 부동산 중개사 자격 시험지를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슬쩍 곁눈질로 문제를 보니 법률에 대한 경제 상식 문제다. 어렵다. 나는 다시 상상해본다. 이 노인은 몇 살인데 부동산 중개사 자격증을 따려는 것일까? 왜 따려는 것일까?

 또 옆 경로석에는 80세 가까이? 혹은 80세가 조금 넘은, 교양있고 지적으로 보이는 할아버지 둘이 동창 모임에 갔다 오는 길인 듯 서로 친구들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얘기를 들어보니 연세대 동창들인 것 같다. 모임에 나오는 숫자가 점점 줄어든다, 누구누구는 하늘나라 갔고, 누구는 지금 어디가 아프고. 몇 해 전에는 부부 동반으로 여행을 같이 갔었는데 …. 그런 얘기들을 나누고 있다. 


  평균 수명 100세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어쩌면 국가 정책인 65세 이상 경로 우대가 맞지 않는다는 생각도 해본다. 나의 시어머니도 올해로 98세이지만 아직 생존해 계시다. 검증된 자료는 아니지만, UN에서는 벌써 몇 년 전부터 65세를 청년이라고 정해놓았다고 하는 일부 신문사 보도기사나 방송이 나왔다. 

“유엔(UN)은 2015년 새로 제시한 평생 나이 기준에서 중년에 해당하는 나이대를 대폭 높였다. 18~65세를 청년, 66~79세를 중년, 80~99세를 노년, 100세 이상은 장수 노인으로 분류한 것이다.”라는 글이 떠돈다. 검증되지 않은 근거 없는 자료지만 “65세까지가 ‘청년’이라니… 갑자기 신체의 나이, 마음의 나이가 청년으로 젊어진 듯 신이 나고 기분이 좋아진다. 


  요즘에는 시니어를 상대로 교육하는 곳이 많다. 맞벌이 가정이 많다 보니 조학부모를 상대로 하는 자녀 교육 부모교육 프로그램도 있다. 운동에서부터 취미생활, 여행 등등 슬기로운 노후 생활을 위한 교양 프로그램들이 다양하다. 

  나는 요즘 ‘죽음 준비 교육지도자’라는 새로운 공부를 시작했다. 웰라이프를 하고 싶어서다. 죽음 준비를 잘하는 것이 웰빙과 웰다잉을 잘하는 것이다. 나이가 많다고 해서 누구나 먼저 죽는 것은 아니다. 100세 세대에 사는 우리는 활기차고 건강한 삶은 물론이거니와 누구에게나 다가올 죽음의 양면을 잘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남은 생을 잘 보내려면 끝없이 공부하고 배우는 삶이어야 한다. 오늘 지하철에서 만난 경로석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에게 응원을 보내고 싶다.

청년 실버 시니어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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