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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래울 이선예 Sep 07. 2022

오이지 사건

귀여운 여인들

                                                               오이지 사건     

   

  나의 기억으로 엄마는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무렵부터 오이지를 담그셨다. 아버지가 오이지를 좋아하셨기 때문이다. 여름이면 학창 시절 우리 육 남매의 도시락 반찬은 늘 오이지무침이었다. 맛있기도 했지만 때로는 새로운 반찬이 먹고 싶을 정도였다. 오이지를 꼭 짜서 새콤달콤하게 무친 엄마표 오이지는 오독오독 쫄깃쫄깃 맛있었다. 지금도 그 오이지의 맛이 생생하다.

  엄마는 2004년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에도 아버지를 생각하며 매해 오이지를 담그셨다. 덕분에 나는 계속 얻어먹는 행운을 누렸다. 오이지 맛을 모르던 남편도 어느새 오이지를 즐기게 되었다.

  오이지는 입맛이 없을 때 미각을 불러일으킨다. 여름날 얼음 동동 띄운 찬물에 밥 한 공기 말고, 오이지 하나 길게 쭉 찢어서 손에 들고 먹는 밥 한 숟가락의 그 맛. 먹다 보면 오이지의 아삭아삭함과 짭조름한 맛이 어우러져 뒷맛이 개운하고 더위가 싹 가신다.

  어느 해 여름이었다. 미국에 계시던 시어머님께서 한국에 나오셨다. 오이지를 잘 모르셨던 시어머님도 친정엄마가 해주신 오이지 맛에 매력을 느끼셨는지 손수 담가보시겠다고 하는 것이다. 사돈한테 얻어먹다 보니 미안하기도 하고 오이지를 잘 먹는 아들에게 손수 해주고 싶으셨던 것 같다.

   마트에 가서 큰마음먹고 50개짜리 한 자루를 사 왔다. 어머님과 나는 레시피를 찾아가면서 온 정성을 다해 오이지를 담갔다. 항아리를 깨끗하게 씻어서 말린 다음 오이를 켜켜이 넣고 물의 양과 소금의 농도를 잘 섞어서 끓인 물을 부었다. 그리고 며칠 뒤 다시 한번 끓여서 부었다. 잘생긴 넓적한 돌멩이로 오이를 눌러 놓는 마지막 정성도 잊지 않았다. 처음으로 담근 오이지가 맛나게 익기를 기대하면서.

  일주일 후. 이제는 익었으려니 기대를 잔뜩 하고 항아리에 손을 넣어서 꺼내려는 순간, 이게 웬일! 오이지가 손에서 흐물흐물 손가락 사이로 뭉그러졌다. 어머님과 나는 동시에 얼굴을 마주 보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실망감, 허무감, 뒤틀린 자존심까지 뒤범벅이 되었다. 소금의 농도가 안 맞아 싱거웠던 것 같았다. 어머님은 끝까지 오이가 불량이라고 우기셨다. 어머님의 자존심을 지켜드리고 싶어서 나도 오이가 불량이라고 맞장구를 쳐 드렸다. 엄마한테는 시어머님이 오이지를 담갔는데 실패했다는 소리도 하지 못한 채 오이지를 가져다 먹었다.

  그리고 이듬해 여름이 되자 시어머님은 또다시 오이지를 담그시겠다고 하셨다. 실패한 경험 때문에 친정엄마께 그냥 가져다 먹자고 해도 요지부동이다. 시어머님의 오기로 두 번째 오이지 담그기를 시도했다. 이번에는 잘 담그고 싶어서 어머님은 친구분에게 전화해서 담그는 법을 물어보시고, 나도 검색한 정보를 총동원해서 지난번보다 더 정성을 기울였다.

  일주일 후. 이번에는 성공했겠지,라고 생각하고 의기양양하게 항아리 뚜껑을 열어본 순간, 항아리에서 구린 냄새가 진동했다. 어린이 영화에서 악당이 멸망할 때 형체도 없이 사라지듯  또 그렇게 오이가 손에서 흐물거리며 흩어졌다.

  항아리 통째로 오이를 다 쏟아 버리고 말았다. 나도 속상했지만, 시어머님의 자존심도 뭉그러진 오이지 같아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어머님도 나도 오이지 담그는 일이 익숙하지 않아서 연이어 2년 실패, 정말 속이 많이 상했다. 어머님과 나는 서로 얼굴만 쳐다보았다.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나는 항아리 청소만 묵묵히 했다. 왜 그랬을까? 정성을 다해 레시피대로 했는데 무엇 때문일까? 어머님도 나도 오이지를 담그는 것에 대해 서로 묵시적으로 포기하고 있었다.

 엄마한테 가져다 먹은 오이지는 변함없이 아삭아삭하면서 쫄깃쫄깃하고 짜지도 싱겁지도 않고 변함없이 맛있었다. 엄마는 어떤 비법이 있는 것일까? 우리도 최선을 다했는데.

  다음 해 여름이 되었다. 시어머님의 세 번째 오기가 또 발동했다. 엄마가 담가주니 그냥 먹자고 해도 굳이 담그겠다고 하신다. 아마 자존심이 상해서 꼭 성공해 보시려는 것 같다.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오이를 또 사 왔다. 세 번째 오이지 담그기 시도.

  그런데 그날 밤. 엄마와 같이 사는 여동생이 화가 잔뜩 나서 전화를 했다. 사위가 좋아하는 오이지를 담근다고 평상시에 걸음도 편치 않은 엄마가 동생 몰래 혼자 시장에 다녀오셨다는 것이다. 동생이 퇴근 후에 같이 간다고 했는데 싱싱한 오이를 고른다고 동생이 없는 틈을 타서 끙끙대고 들고 오신 것이다.

   87세 친정엄마와 89세인 시어머님 두 노인이 오이지 경연대회라도 출전하시는 것처럼 열정적이었다. 엄마도 이 세상 떠나신 남편 대신, 오이지를 잘 먹게 된 사위를 위해서 매년 신나서 하시는 일이다. 엄마가 실망하실까 봐 우리 집에서 시어머니가 오이지 담근다는 이야기는 하지 말라고 동생한테 당부했다.

   며칠 뒤에 엄마한테서 오이지가 맛있게 익었다고 가지러 오라는 전화가 왔다. 앞으로는 내가 담가 먹는다고 힘들게 하지 말라고 이야기했지만, 엄마는 “내가 내년에도 기력이 될지, 언제까지 이렇게 오이지를 담글 수 있을지 모르겠다.”라며 담가줄 수 있을 때 맛있게 가져다 먹으라고 하신다. 가슴이 찡했다. 엄마는 그래서 매년 오이지를 담그시는 것이다.

  우리 집에서 세 번째 담근 오이지가 실패하지 않는다면 오이지 풍년이 될 것 같았다. 두 분의 의욕을 상실시켜 드리고 싶지 않아 엄마한테는 시어머님이 담갔다는 말도, 시어머님께는 친정에서 오이지 가져가라고 전화 왔다는 소리도 못 했다. 오이지는 언제 어떻게 가지러 가야 하나? 엄마와 시어머니의 경계를 넘나드는 나의 역할이 여간 조심스럽지 않았다

  시어머님의 세 번째 오이지가 잘 익기를 기도했다. 불가에서 ‘옴 마하 가로니가 사바하.’ 100번을 외우면 소망이 이루어진다고 했다. 오이지를 맛볼 날이 다가올수록 마음이 조마조마해졌다. 이번에는 소금을 많이 넣었기 때문에, 설사 오이지가 소금 장아찌가 되더라도 어머님의 자존심만 뭉그러지지 않기만을 간절히 빌었다.

  며칠 뒤 열어본 오이지는 소태처럼 짰다. 물에 담가 우려내야 먹을 정도였지만 그래도 손가락 사이로 사라지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었다. 시어머니의 자존심은 그래도 지켜진 거니까.

  친정어머니는 2018년에 90세의 나이로 하늘나라로 떠나셨고, 시어머니는 올해 96세가 되셨다. 시어머님은 이젠 연로하셔서 오이지 담근다는 말은 아예 하지 않으신다. 나는 아직도 오이지를 잘 담그지 못한다. 여름이 되면 손맛 담긴 엄마의 오이지 맛이 매우 그립다. 지난 시절 두 노인의 귀여우신 오이지 에피소드를 생각하면 그 시간이 그립고 가슴 한편이 따뜻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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