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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가령 Aug 20. 2022

변치 않는 것의 힘

두점머리는 두드려라.” 이런 말을 하면 바둑 좀 두는 줄 알고 “오오~. 몇 급 두세요?” 하는 반응을 보여 온다. 하지만 오해하지 마시라. 내 실력은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딱 그 말만 외워서 아는 수준이다. 그러니 이세돌이 알파고와 벌였던 그 세기적인 바둑 대결을 보며 한 수 한 수 즐겼을 리 없다. 결과가 어땠는지에만 관심이 있었다. 첫판은 졌다. 둘째 판도 졌다. 셋째 판도 졌다. 5판 3승제이니 이미 진 경기였다. 이세돌 9단을 응원했는데 그의 실패는 너무나 속상했고, 안타까웠다. 인공지능에게 인간이 지다니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덮쳐왔다. 이세돌 9단은 "알파고에게 이세돌이 진 것이지 인간이 패배한 것은 아니다."라고 하며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였다. 이세돌 9단의 모습에서는 허탈함과 실망감이 그대로 느껴졌다. 우리 인간의 미래 모습을 보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국 후 며칠 동안은 ‘아, 인간은 인제 끝난 건가?’ 하는 우울증과 무기력이 오기도 했고, ‘에이 뭐 바둑 하나 진 걸 갖고 뭘 그래. 딴 거 잘하면 되지.’ 하는 마음이 오락가락했다. 그야말로 알파고 쇼크였다.

이 충격은 앞으로 살아가야 할 날이 많이 남은 우리 아이들이나 청년들의 진로 문제를 생각하니 더욱 큰 불안감으로 다가왔다. 무서운 속도로 다가오고 있는 알 수 없는 미래를 어떻게 대비하고 살아가야 한단 말인가? 게다가 언론들은 앞을 다투어서 무슨 직업은 없어지고 무슨 직업이 생긴다는 기사를 쏟아 내었다. 내 동생이 하고 있는 약사라는 직업이 없어진단다. 부러움의 대상인 내 친구가 하는 변호사라는 직업이 없어진단다. 정신이 몽롱할 정도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들 말했다. “자신이 선택하게 될 직업이 사회 변화에 따라 어떻게 바뀔까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그 변화에 빠르게 반응하는 대응력을 키워라.” 맞는 말이다. 사실 변화는 우리가 원해서 오는 것은 아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다가와 우리를 변하도록 만드는 일도 많다. 그 상황에 주도적으로 적극 대응을 하면 살아남지만 상황을 읽지 못하고 변화를 거부하면 결국 종속적인 존재가 된다는 것도 우리는 역사를 통해 알고 있다. 이런 말까지 읽고 나면 이제 마음은 더욱 불안하고 초조해진다. 요즈음 학부모 강의에서는 이런 불안에 시달리는 학부모들을 많이 만난다.

이 불안을 멈추게 해줄 방호벽은 없을까? 있다. 우선 ‘진로의 우연성’을 들 수 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1592년 이탈리아 파도바 대학의 수학 교수로 있었지만 부양할 가족이 많아서 늘 가난했다. 추가 수입이 필요했다. 그는 부족한 생활비를 보충하기 위해 군사문제에 대해 자문을 해주곤 했다. 당시로는 아무도 엄두를 못 내던 군함의 축소모형을 만들어 실제 군함의 성능을 시뮬레이션하는 일을 맡아 했다. 그 결과를 보면서 군함의 설계도를 수정 보완해 주고 돈을 받았다. 적지 않은 돈을 벌었지만 그는 돈이 더 필요했다. 1602년에 네덜란드에서 망원경이 만들어졌다는 소식에 그는 흥분했다. 그것을 군사적으로 활용하면 더 짭짤한 수입을 얻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그것을 하나 주문했다. 갈릴레이에게 도착한 망원경은 3, 4배율 짜리 애들 장난감 수준이었다. 갈릴레이는 이 망원경을 군사적 목적으로 전용한다면, 엄청난 돈을 벌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고배율의 망원경을 만들어 내게 된다. 이렇게 군사 목적으로 만든 망원경으로 밤하늘을 관찰하다가 우연히 목성과 그것의 위성을 발견하게 된다. 이 우연한 발견은 모든 천체는 지구를 중심으로 회전한다는 기존 관념을 깨부수면서 인류 역사에 큰 획을 긋게 된다. 꼭 그 목적으로 시작한 일은 아닌데 하다 보니 뜻밖의 목적을 달성하게 된 경우라고나 할까? 

요즈음 활발한 진로교육 현장의 한 켠에서 “우리 아이는 아직 아무것도 하고 싶어 하는 것이 없어요.” 하면서 걱정을 하는 학부모님들, 걱정하지 마시라. 진로의 우연성이라는 것도 있고, 아무것도 하고 싶은 것이 없다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이야기도 된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적기에 정확히 파악해서 그 길로 일로 매진하는 것도 좋은 삶이지만 우리의 인생이 꼭 그리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무엇을 할 것인가를 끊임없이 걱정하고 불안해하는 청춘이 더 많다. 지금 당장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 하더라도 너무 실망할 필요가 없다. 살면서 찾으면 된다.

두 번째, 변하지 않는 것은 변함없이 우리를 지켜준다는 점이다. 우리는 변하는 것에만 신경 쓰고 변하지 않는 것은 잊어버린다. 아무리 세상이 변하고 새로운 직업이 명멸한다고 해도 인간이 멸망하지 않는 한 변하지 않아야 할, 아니 변하지 않는 중요한 것들이 있다. 다른 사람의 마음의 공감해 주는 일, 남의 어려움을 배려해 주는 일. 자신이 처한 상황 또는 자기 문제의 본질을 이해하는 통찰의 힘을 기르는 일 등이 그것이다. 미래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런 ‘인간다움’이다. 

인간다움의 기본은 공감이다. 다른 사람의 처지를 보고 상대의 느낌과 생각을 이해하며 수용해 주는 일은 너와 나를 행복하게 해준다. 아이를 강하게 키우는 것보다 공감을 해주면서 키우는 일이 우선이다. 아이가 넘어져서 울고 있을 때 "괜찮아, 일어나!"라고 말해주는 것보다 "저런, 많이 아팠겠네."라고 공감해 주어야 한다. 아이가 아프다고 할 때 “별거 아니야.”라고 말하기보다는 "아이고 우리 누구가 아프다니 엄마 마음이 더 아프네." 하고 말해주어야 한다. 이러한 경험이 쌓이면 다른 사람과 더불어 세상을 살아갈 때 큰 힘이 된다.

한 번은 길거리에서 한 젊은 여성이 나를 따라오더니 슬그머니 반짇고리를 하나 내밀었다. “안 사요.” 나도 모르게 불쑥 그렇게 말했다. 그게 아니라 내 치마의 뒷단이 뜯어져 있단다. 그것으로 꿰매라고 했다. 나는 부끄러워서 얼굴이 화닥거렸다. 많이 미안했지만 그 사람의 배려로 한동안이 행복했다. 만일 그 상황에서 나를 돕는답시고 “아줌마, 치맛단 뜯어졌어요!” 하고 크게 알려주었다면 분명 ‘맞는’ 말이지만 그의 눈치 없음에 상처를 받았을 것이 틀림없다. 누군가의 배려는 누군가를 살린다.

인공지능 시대에 어울리는 인재가 되기 위해서는 변화하는 것을 따라가는 공부도 중요하지만, 그럴수록 더 잊지 않아야 할 것은 늘 간직해야 할 따뜻한 인성이다. 정신없이 변하는 세상이어서인지 변하지 않는 것의 소중함이 더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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