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명의 어른도 알려주지 않았다.
우리는 다 같이 무너지고 있다.
엄마도, 아빠도 우리와 함께 무너지고있다.
기성세대가 알려주었던 기준과 사실이 우리 세대에는 아주 보기좋게 빗나가고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 앞을 막고 선 예기치못한 이 장벽 앞에 힘 한번 써보지 못하고 우두커니, 있다.
한국사능력자격증, 컴퓨터활용능력자격증, MOS자격증, 직무관련 자격증, 각종 공인어학시험점수와 제2외국어 점수, 이젠그 경쟁률마저도 하늘을 찌르는 대기업 인턴 경험 다수, 직무관련 아르바이트 및 교육이수 경험, 대외 수상경력, .. 회사의 입맛에 맞는 자소서.
울고싶다. 몇 회사실무경험을 제외하면. 내가 해온 이 짓거리들은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회사에게도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기업 입사시 1차 서류전형을 통과하고나면 2차 관문으로 인적성테스트를 거친다. 인적성은 거의 수능과 흡사하다. 풀이 방법을 익힌 후 주어진 시간 내에 문제를 아주 빠르게 풀어야한다. "아주 빠르게"풀기 때문에 그 과정을 거친 후에는 머리를 배불릴 어떠한 영양도 . 남지 않는다.
인적성 수리영역에서 꽤 나오는 소금물 농도계산법. 회사 업무에 소금물 농도를 구하는 공식이 필요하진 않다. 되려 상사와 어떤식의 대화를 나누어야하는지. 이런용도의 문서는 어떤 느낌으로 작성해야 하는지. 식사자리에서는 어떤 얘기를 나누는게 좋을지. 상사의 특성에 따라 내가 어떻게 반응해야하는지... 이런점들이 더 큰 난관이다. 진정 어려운 문제다.
모든 직장생활에서 사람대하는 법이 어렵다고들 하면서 왜 입사할 때는 책에 코 박고 공부만 해오라고 하는건지.
모두가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 모두가.
그래 후보자가 너무 많아서 시간과 자본 절약 차원에서 거치는 필터링 단계라고 한다면..
데일카네기의 인간관계론을 읽고 그것을 조직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것이. 한국회사들에는 더 실용적인듯 하다.
손자의 손자병법을 읽고 그것을 비즈니스에 적용할 플랜을 짜게 하는것이 더 지속가능한 듯 하다.
고등학교 3년 간. 한국 국사와 근현대사는 자다가 누가 물어도 벌떡 일어나 답할 수 있을 정도로 열심히 '공부'했다. 그 '공부'가 내게 진정한 역사 공부의 방법이라고 인식되지는 않았지만. 우리나라의 교육시스템이 요구하는 기준에서는 최상의 스코어를 낼 수 있는, 그들이 원하는'공부'를 했다. 그리고 그들이 말했던 좋은 대학으로 가는 수능이라는 무시무시한 관문에서 최고점을 얻었다. 그리고 괜찮은 대학을 왔다.
하지만 사회는 그 때 배운 한국사를 다시 자격증이라는 이름으로 요구했다.
이미 6년 전 수능을 치른 나는 안다. 수능을 포함한 이 자격증 시험들은 역사인식을 제대로 심어주는 데 큰 도움이 안된다는 것을. 그저 끝없이 암기하다 시험치고 돌아서면 잊혀질 뿐이며 소녀상이 철거되는 역사적인 순간에 우리는 어떠한 도움도 발휘할 수 없다는 것을.
나를 포함한 청년들은 치열한 고등학교 수능 생활을 인내와 끈기로 견뎌내고, 우수한 대학교에 입학했다. 고3시절은 지옥이었다. 친구들과 보낸 행복한 순간도 많았지만 교실이라는 공간 안에서 하루 15시간 동안 갇혀있는 것은 지옥이었다. 그리고 의미 없는 공부를 형벌처럼 되풀이했다.
그것을 이겨내고 대학에 가면 모든것이 해결되리라 얘기하던 선생들의 말과 가르침은 모두 보기좋게 빗나가고 말았다. 좋은대학 가면 잘 된다고 하나같이 입을 모아 얘기하던 어른들도 이제는 입을 꾹 다물고만 계신다. 그들의 탓은 아니다. 그들을 모두 믿게하고 따르게 만든 더 큰 사회적 구조의 문제다. 그보다는 너무 빠르게 변화하는 기술과 세상의 문제다.
그러게 왜 인문계를 갔느냐고 질타한다면,
그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우리는 그 곳에서 '좋은 대학을 가는 것' 외에 다른 것은 배우지 못했다.
이런 생각이 든다.
수능이 희한하고 쓸 데 없는 제도라는 것을 알지만 그것을 통과하고 나만 탈출해 나왔다. 뒤에 남은 후배들은, 다음 세대들은 그 비합리적인 감옥 속에 여전히 남겨놓은 채 우리만 탈출했다. 모두가 그것을 빠져나올 생각만 했지 다음세대를 위해 그 고통을 줄일 궁리를 해보진 않았다. 그것을 묵과한 것에 대한 벌인 것일까.
취업에 성공한 사람들도, 취업을 준비하는 사람도. 비합리의 굴레에서 살고있다.
사실 외교부라는, 어찌보면 가장 폐쇄적인 곳에서 조직생활을 시작해보니
하루하루를 포기하지않고 유지해가는 모두가,
모든 직장인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긴하지만,
절대 다수가 힘듦을 넘어 또다시 힘듦으로 걸어가는듯한 지금의 우리의 모습이
처음부터 고장나있는 부분을 제대로 손보지 않고 나만 몰래 빠져나와 안도한데서 기인한 것이라는 생각을 지울수가 없다.
그래. 내가 고칠 수 있는 부분은 아니다.
허나 나와 다수가 묵과한 것이
또 나와 그들의 자식에게
덫처럼 작용할 수 있을것 같다.
그럼에도 나는 완전한 해결책을 제시해줄 수 없는 존재이지만.
야생에서는 목숨걸고 자신의 먹이를 구해야하는 짐승들보다
우리가 조금은 더 나은 운명이라고 자위라도 해야하는걸까.
지금 하고있는 것들이 사실은 목숨걸고 사냥터에 나가는 짐승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