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검은 것은 거두지 말라
한 뱃사공이 배를 타고 강을 건너가는데 갑자기 큰물이 지더니 아이가 하나 떠내려 왔다. 뱃사공은 얼른 아이를 건져냈다. 그런데 좀 있다가 노루가 한 마리 또 떠내려 왔다. 뱃사공은 노루도 건져 배 위에 올려놓았다. 또 좀 가다 보니 이번엔 구렁이가 하나 배에 텅 하고 감겼다. 뱃사공은 구렁이도 건져 주었다. 뭍에 다다라 노루는 산으로 가버리고, 구렁이도 어디로 갔는지 가버렸는데, 아이는 어느 집 아이인지 알 수도 없고 어찌할 수 없어서 뱃사공이 키우게 되었다. 아이가 제법 자랐을 때 뱃사공이 하루는 산에 나무하러 갔다. 뱃사공이 지게에 나뭇짐을 얹고 있는데 어디서 갑자기 노루가 펄쩍 뛰어 오더니 저쪽 예전에 집이 있던 자리에서 담 사이 땅을 자꾸 발로 후비고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었다. 뱃사공이 이상해서 그쪽으로 가 보니 솥뚜껑 꼭지가 삐죽이 나와 있었다. 노루는 어느새 멀리 가 버리고, 뱃사공이 그것을 파 보니 금은보화가 한 솥 가득 들어 있었다. 예전에 그곳에 살던 장자가 무슨 병란에 쫓겨 가서 집안이 멸하였는데 그때 남겨져 있던 것이었다. 노루가 예전에 뱃사공이 자신을 살려준 은혜를 갚으려고 그 곳을 알려준 것이다. 노루 덕분에 뱃사공이 부자가 되어 잘살게 되었는데, 뱃사공이 키우던 아이는 뱃사공의 재물에 욕심이 생겨, 뱃사공이 도둑질을 했다고 관가에 고발을 했다. 뱃사공이 옥에 갇혀 처벌 받을 날만 기다리고 있는데, 어디서 큰 구렁이가 슬슬 오더니 뱃사공의 허벅지를 콱 깨물었다. 뱃사공의 허벅지는 곧 무섭게 퉁퉁 부어올랐다. 그런데 잠시 후에 구렁이가 이번엔 어떤 잎을 물고 오더니 허벅지에 놓아 주었다. 그러자 금세 상처가 감쪽같이 아물었다. 그 지방 현감에게 과년한 딸이 있었는데, 구렁이는 밤에 자고 있던 현감의 딸을 꽉 깨물어버렸다. 현감의 딸은 곧 몸이 짚동같이 붓고 백약이 무효한 지경이 되었다. 뱃사공은 그 소식을 듣고 한번 보게 해달라고 하였다. 현감은 옥에 갇혀 있는 사람이면 어떠냐면서 딸을 고쳐만 주면 형제같이 지내겠다고 하였다. 뱃사공은 구렁이가 갖다 주었던 잎을 가져가서 딸의 상처에 놓아 주었다. 그러자 죽어가던 딸이 살아났고, 현감은 평생 은혜를 갚아도 못 당한다며 뱃사공을 풀어주고 후하게 대접해 주었다. [한국구비문학대계] 7-9, 845-847면, 예안면 설화23, 소용 없는 인간 구제
나무도령 이야기에서 인간 구제 부분만 따로 떨어져 나온 것 같은 이야기에요. 개미나 돼지나 노루나 구렁이처럼 하잘것없는 짐승들도 은혜를 알고 갚으려고 하는데, 머리 검은 인간은 제 욕심만 차리지요. 이런 이야기들을 통해서 머리 검은 것은 거두지 말라, 그래봐야 소용없다, 이런 말들이 떠돌게 된 것 같습니다. 뱃사공이 아이나 노루, 구렁이를 배 위로 끌어올릴 때, 이들을 구해주면 나중에 내가 복을 받게 되겠지, 혹은 착한 일 해서 복을 많이 받아야지, 이런 생각을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것은 거의 자동적 행위였고, 뒤의 결말이나 보상 같은 것은 떠올리지 않은 것입니다. 아이를 거두어 함께 살게 되었을 때에도 마찬가지지요. 오갈 데 없는 생명을 구하는 데에는 아무런 이유나 목적이 개입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에 감응하여 노루와 구렁이는 뱃사공을 도왔던 것이고요.
세상이 험하다 보니 길거리에 다니는 모든 사람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보는 인식이 팽배합니다. 어느 순간 내가 공격당할지도 모른다거나 잘못 손 내밀었다가 되레 내가 가해자로 몰릴지도 모른다는 의심과 불안에 떨며 어느 누구에게도 선뜻 손을 내밀지 못하지요. 술 취해 길바닥에 죽은 듯 쓰러져 있는 사람들을 볼 때, 지하철 개찰구에서 뭔가 잘 안 되는지 쩔쩔매는 어르신을 볼 때, 길을 물어오거나 무거운 짐을 들고 끙끙거리며 계단을 오르내리는 사람들을 볼 때 잠깐 시선이 머물렀다가도 금세 몸이 따르지 못하는 것은 다 그런 의심스런 마음이 있기 때문일 겁니다.